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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경진 May 18. 2021

튼튼해졌습니다

[22] 2021.05.18

면접을 봤다. 면접은 2006년 <매거진t> 들어갈 때 본 게 마지막이었고, 특히 다인 면접은 2004년 SBSi 때니까 16년 만이다. 해온 일이 문화 계통이라서였는지, 모두가 무채색 계열의 정장을 입은 면접장은 처음이었다. 지원자였을 때도, 심사관이었을 때도 보지 못했으니까. 그러니 초록색 꽃무늬 원피스에 카멜 린넨 재킷을 입은 사람은 튀기 마련이다. ‘문화’에 방점이 찍힌 사람과 ‘재단’에 초점을 둔 이의 차이 정도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준비해온 말을 술술 꺼내놓는 이와 관련 경험이 있는 이 사이에서 나는 좀처럼 지원한 곳과는 접점이 없는 사람이었다. 그런데 애써 이것도 할 수 있고 저것도 가능하다는 말을 하지 않았다. 해보지 않은 일은 그렇다고 인정했고 배우겠다고 했다. 내가 해온 경험을 바탕으로 할 수 있는 일을 찾겠다고 했다. 예전 같으면 뭐가 됐든 열심히 하겠다는 의욕을 마구 드러내거나 경쟁자의 말에 흔들리기도 했을 거다. 그런데 나는 그렇게 하지 않음으로써 편안해졌다. 내가 아닌 나는 얘기할 필요가 없었다. 솔직해지자는 다짐을 한 것도 아니었는데 솔직해졌다.


원하는 인재가 아닐 수도 있겠다. 물론 말을  다듬어서 했으면 좋았겠다는 아쉬움도 있다. 하지만 나는  면접으로 지금의 나를 봤다.  이상 애쓰지 않고,  중심을 지키고, 나를 믿는 나를. 지나간 것에 연연하지 않고, 자연스러운 흐름을 기다릴  알게  나를. 줄곧 얘기해왔던 ‘내가 나일 , 나를 믿을 이라는 문장을 지금 내가 체화하고 있음을, 그렇게나 되고 싶었던 인간에 가까워지고 있음을 알았다. 나도 모르는 사이 나는 튼튼해졌다. 반갑고 기쁜 일이다. 이렇게 스스로를 뿌듯하게 여긴 적도 드물다. 그러니 오늘은 치맥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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