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초를 입양하기까지 수많은 우여곡절 속에서 곁을 지켜준 친구가 있다. 반려동물 입양을 진지하게 의논한 것도, 혜향이와 직접 만나도록 자리를 마련해준 것도 그 친구다. 일에 대한 이야기로만 가득한 카톡방에서 언제부터 혜향이 얘기를 본격적으로 했지? 싶어서 봤더니 12월 11일이었다. 이렇게 썼다.
"제주 탠져린즈 귀여워서 어쩔ㅜㅠ"
초반에는 산초와 창석이(구. 황금향)를 제대로 구분하지 못했다. 둘은 비슷한 털 색에 닮은 듯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산초와 창석이만 구분 못한 게 아니라, 풋귤과 영귤, 나요(구. 금귤)도 누가 누군지 정확히 몰랐다. 동물을 가까이해본 경험이 없으니, 이 애가 그 애 같고 그 애가 이 애 같은 시간들이었다. 내가 디테일에 약한 사람이라는 것을 다시 알게 된 것도 아이들을 구분하지 못해서였다.
그러다 친구에게 보내는 사진들이 다 같은 아이고, 그게 천혜향이라는 것을 알게 됐다. 묘하게 아련한 눈빛을 카메라에 발사하고 있는 몽실몽실한 애. 쟤는 대체 무슨 생각을 하기에 저런 눈빛으로 보는 걸까? 나는 깊은 눈을 가진 존재들에게 약하다. 고등학생 때 열광했던 아이돌이 그랬고, 상대 배역의 눈을 지그시 바라보며 말하는 캐릭터들에 끌렸다. 정작 나는 타인의 눈을 제대로 보지도 못하면서. 어느 날 갑자기 마음에 확 꽂히는 애가 올 거라고 했는데, 이런 걸 말하는 것이었나! 어쩌면 저 깊은 눈 속의 나를 보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