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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경진 Apr 01. 2022

개인주의자의 반려

지독한 개인주의자다. 나의 삶에 누군가를 깊게 들이지도, 당연하게 타인에게도 잘 다가가지 않는다. 못한다, 라고 쓰려다 않는다, 라고 쓴다. 예전엔 그저 낯을 가린다고만 생각해서 못하는 건 줄 알았다. 하지만 실은 오래도록 그런 상태를 선호해왔다. 그동안 들어온 “선배 주위에는 어떤 결계가 있다”라거나 “연애가 필요 없어 보여서 소개팅도 못 해주겠다” 같은 말들은 나의 이런 성향의 탓이 크다.


지난해 마흔이 되면서, 남은 40년도(더 짧기도 길기도 하겠지만) 이렇게 살 거라는 생각에 갑자기 아득해졌다. 지금까지의 삶이 후회된다거나, 너무 외롭다거나 그런 건 아니었다. 다만, 세계가 좁아도 너무 좁았다. 등산도 시작했고 여전히 혼자서 여행도 잘 다니지만, 나의 취향을 뛰어넘는 그 무언가는 절대 하지 않을 게 분명했다. 모든 걸 혼자 하는 것에 익숙해지다 보니 해소되지 않는 감정들은 쌓이다 못해 폭발할 지경이었다. 더 큰 문제는 사람들과 섞이질 못했다. 회사라도 다녔다면 적당한 균형감이 생겼을 텐데, 퇴사한 나는 5년 차 프리랜서였다.


어디든 혼자 다니느라 온통 풍경사진 뿐


이대로는 안 돼! 억지로라도 내가 안 할 것 같은 일을 하게 할 무언가가 필요해!


연애는 싫었다. 식물도 나쁘진 않았지만, 좀 더 능동적인 게 필요했다. 그때 떠오른 게 반려동물이었다. 하지만 ‘이런 생각으로 반려동물을 입양하는 게 맞나?’라는 고민이 같이 왔다. 이렇게까지 이기적일 수가 있나, 싶어서 선뜻 이야기를 꺼내지 못했을 때 한 친구가 “언니랑 똑같은 고민을 한 작가를 본 적이 있어”라며 책 한 권을 소개해줬다. 김신회 작가의 <가벼운 책임>이었다.


알리딘 중고서점에서 <가벼운 책임>을 들었는데!

“주체 못 할 만큼 넘치는 시간과 마음을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 막막했지만 사람에게는 기대고 싶지 않았다. 새로운 우정이나 연애도 고단하게 느껴졌다. 요네하라 마리의 책 <인간 수컷은 필요 없어>가 떠오르면서도 누군가 곁에 있으면 좋을 것 같았다. 사람 말고, 식물 말고, 나처럼 숨 쉬고 먹고 자고 소리 내는 생명 하나가.”


책을 읽는 내내 고개를 주억거리느라 정신이 없었다. 반려동물과 함께 살기로 마음먹고, 입양하기까지 온갖 감정의 소용돌이를 겪고, 소소한 행복을 찬찬히 기록한 책은 거의 나를 위한 바이블처럼 여겨졌다.


주변에서는 대체로 고양이를 추천했다. 잠깐이지만 함께 산 경험이 있고, 독립적인 나와 어울린다고 했다. 하지만 오래된 친구들은 대체로 강아지를 이야기했다. 그리고 이렇게 얘기해줬다. “더 사랑을 많이 나누면 좋겠어.” 휴, 너무 좋은 친구를 뒀네.


트위터에 올라오는 동물 사진들을 가까이 하기 시작했고, 포인핸드 앱에도 종종 들어갔다. 또 다른 친구는 복슬복슬한 강아지 사진들을 카톡방에 올려줬다. 귀엽다는 생각도 많이 했지만, 대체로는 마음 한켠이 불편했다. 안락사 위기에 놓인 아이들이 많은데도 더 마음에 드는 아이를 찾는다는 게, 보호소에 한

번도 가보지 않고 누워서 사진을 보고 있다는 게. 모순으로 가득한 나를 바라보는 게 가장 힘든 일이었다. 나는 왜 이렇게도 못난 인간인가.


산초를 만난 후에도 정도만 달라졌을 뿐, 이 마음은 대체로 유효하다. 개인주의자의 반려는 어쩌면 산초가 아니라 자책일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삶에 스며드는 기쁨들을 하나씩 알아가는 중이다. 얼마나 다행인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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