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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산초랑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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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경진 Mar 22. 2023

문제는 단어가 아니라 뉘앙스야

“아줌마! 여기 개 갖고 오면 안 돼요.“


어제 산초와 체육공원으로 산책을 갔다가 어떤 아저씨에게서 이런 말을 들었다. 여러 생각이 들었는데, 가장 먼저 떠오른 건 ‘여기 강아지 출입 안 되는데 혹시 내가 잘못 알고 있나?’였다. (강아지들 잘만 다니는 곳이었음) 무슨 일이 생기든 ‘내가 잘못했나’를 먼저 생각하는 사람이라 그렇다. 그런데 그 자리를 빠져나와서도 꽤 길게 불쾌한 감정이 들길래 곰곰이 생각해 봤다. 나는 무엇에 버튼이 눌린 걸까.


모든 단어가 나를 자극했다. 아줌마, 개, 갖고 오면, 안 돼요. 마흔은 넘었으나 ‘아줌마’라는 호칭에는 아직 면역이 없었다. 산초가 개는 개인데 어쩐지 그 ‘개’라는 단어는 별로였다. ‘갖고 오면’의 대상은 물건이었고, ‘안 돼요’는 부정어였다. 틀린 단어는 아니지만, 다 싫었다. 결국은 태도와 뉘앙스 문제다. ‘아줌마’에 담긴 윽박지름, ‘개’와 ‘갖고 오면’에 담긴 동물 멸시, ‘안 돼요’에 담긴 거절. 그 순간 나와 산초는 환영받지 못한 존재였고, 부정적인 문장으로 주변의 시선을 끄는 게 싫었다. (실제로는 당시에 우리를 바라본 사람은 별로 없었지만, 부정적인 방법으로 주목받는 것을 극도로 꺼려하는 나는 얼른 그 자리에서 도망치고 싶었다)


나는 잘못도 안 했으면서 왜 늘 주눅이 드는 걸까. 매사에 대체로 그랬다. 스스로를 낮추는 일이 많고 그걸 미덕이라 믿고 살았다. 친구들과 ‘하녀병’이라고 말하며 자조적으로 웃기도 했지만 실제로 벗어나기란 쉽지 않았다. 강아지를 키우고서는 그런 태도가 더 강화된 것도 같았다. 나는 좋지만 누군가는 싫어할 수도 있으니 내가 더 신경 써야 한다는 생각. 아빠와 함께 귀촌한 엄마는 얼마 전 동네에서 풀어놓고 키운 개가 사람을 물었다며 나에게 파상풍 주사를 맞으라고 했었다. 그 일이 벌어진 후에는 산초를 예뻐하면서도 줄을 짧게 잡고 다니라거나 조심하라는 말을 종종 했다. 왜 동물이 있는 쪽이 더 그런 말을 들어야 하는 걸까. 나를 걱정해서라는 것도 실제로 그런 일이 일어난다는 것도 알지만, 어쩐지 속상한 기분이었다. 그런데 여전히 반박하지는 못했다.


우리 한번 잘해보자

나는 언제나 양가감정 속에서 혼란스럽다. ‘왜 이런 말을 들어야지?’와 ‘조심해야 되는 게 맞지’ 사이에서 길을 잃는다. 나의 이런 태도가 산초를 가두는 건 아닐까, 하는 마음도 있다. 그런데 나는 늘 내가 있어야 산초도 있다는 생각을 한다. 그러니 그냥 자극에 흔들리지 않는 내가 되는 게 가장 중요하다. 받아치진 못해도 상처는 받지 않는 사람이, 문장에 담긴

의도를 다 파악하려는 시도 대신 ‘그러려니’ 하는

마음을 갖는 사람이, 나의 바닥을 보아도 자책하지 않는 사람이, 그럼에도 곁에 있는 존재들을 소중히 여기는 사람이 되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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