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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초록지붕 B사감 Feb 14. 2024

신자, 냉담자, 그리고 아무것도 아닌 자

엄마따라 성당가기

작년 성탄전야는 엄마의 생일이라 가족이 오랜만에 다시 뭉쳤다. 아이가 무사히 취업하게 되니 모든 일이 순조롭게만 느껴지는 한해의 끝이었다. 만나는 사람마다 축하의 인사를 건넴과 동시에 이제 아무런 걱정도 없지 않냐는 부러운 마음도 전했다. 너무 무사태평하고 무탈한 날들이지만 마냥 이런 날들이 계속되지 않을 테니 걱정이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배부른 소리에 지나지 않을까 싶어서, 그러다 안 좋은 일이 보란 듯이 생길까 봐 두려워서 말을 아꼈다.


아이는 눈이 많이 내린 화이트 크리스마스에 할머니와 함께 미사에 참석하러 나섰다. 아파트 공사장이 집 앞에 갑자기 생기는 바람에 성당까지 가는 길은 멀어졌지만, 눈이 내린 겨울 밤길을 할머니와 오손도손 걸어가 주니 조금 마음이 놓였다. 세례를 받은 지 어언 10년이 지났지만, 이제는 철저한 냉담자가 된 아이가 무슨 바람이 불어 성탄 미사에 참석했는지는 알 수 없다. 다행히 신부님의 강론은 귀에 쏙쏙 들어왔고 말씀의 내용도 좋았다며 오랜만에 성당에 다녀온 느낌을 전해주었다.


할머니는 헌금은 하더라도 영성체를 모시는 일은 하면 안 된다며 아이를 말렸다고 한다. 오랜 기간 냉담자로 있었으니, 고해성사를 거쳐야 한다는 원칙을 내세운 모양이다. 돌아오는 길에 할머니는 너희 엄마가 세례를 받는다면 참 좋겠다며, 그런데 만만찮은 상대라 설득이 쉽지 않다고 말했단다. 친가 쪽 가족 15명 중에 비신자, 즉 세례를 받지 않은 자는 언니네 가족 3명과 삐사감과 제부, 이렇게 5명뿐이다. 게다가 시가 쪽도 삐사감을 제외한 모든 가족이 세례를 받았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친가에서 세례를 받은 사람 중에 주일을 지키는 진정한 신자는 엄마뿐이고 시가에서는 시어머니만 주일을 지키고 있다.


남편과 아이는 중국 체류 중에 세례를 받았다. 세례를 받기 전 교리 공부가 엄격하고 철저한 한국성당에 비해 해외에 파견된 성당에서의 교리 공부는 다소 수월하다고 한다. 10살짜리 아이는 일요일마다 아빠랑 성당에 가서 짧은 강론을 듣고 또래 아이들-학교에서 이미 만나던 한국 아이들-과 간단한 교리문답 공부를 하더니 세례명을 무엇으로 할 것인지 고민하다가 덜컥 세례를 받아버렸다. 대부와 대모는 회사의 상사 부부가 맡아주었고 다른 집처럼 부부나 가족이 아닌 부녀가 함께 세례를 받게 되었다.


당시 중국에 있던 한국 성당은 중국인들의 특이한 집단거주지 이층에 자리 잡고 있었고 시설은 열악했다. 가운데를 공동시설로 두고 사방을 둘러싼 건물의 한쪽을 임차하여 주일미사를 보았다. 미사가 끝나고 계단을 내려오면 공동우물에서 생활을 이어가는 중국인들이 보였다. 미사는 한국에서보다 짧았고 신부님은 항상 얼굴이 불콰하게 취한 것처럼 붉게 달아올라 있었다. 뭔가 근접할 수 없는 아우라보다는 친밀한 이웃 같던 신부님은 연말 장기 자랑에서도 가장 빛나는 기량을 보여주는 유쾌하고 발랄한 사람이었다.


비록 신자는 아니지만 일요일이면 가끔 남편과 아이를 따라 성당으로 향했다. 미사를 보고 주변에 앉은 형제자매에게 축복의 인사를 나누고 집으로 돌아왔다. 왠지 모르지만, 모태신앙처럼 꾸준히 기독교 신자인 남편은 오랫동안 개신교에 발을 담그더니 갑자기 카톨릭 신자가 되었다. 좀처럼 교화되지 않는 마누라 대신 아이와 동반 세례를 받으며 만족스러워했다.


어느 날 오랜만에 성당에 놀러 가는 길에 대부 대모가 동승하게 되었다. 외곽에 위치한 성당까지 가는 데 30여 분의 시간이 걸렸고 그동안 간헐적인 대화가 이어졌다. 끊어질 듯 이어지는 대화 끝에 말이 거의 없던 대부가 말을 꺼냈다.

"엄마가 왜 성당에 같이 안나가? 집에서 뭐 하길래"

"그러게, 엄마가 애들이랑 같이 다니면 좋지. 다들 그러던데." 대모가 이렇게 말을 보탰다.


그렇다. 대부분의 가정에서 아빠와 아이의 조합은 좀처럼 찾기 힘들었다. 가족이 모두 뭉쳐서 다니던가, 엄마가 아이를 신앙의 길로 인도하는 일이 잦았다. 그러니 그런 말을 하는 것도 무리가 아닐지도 모르겠지만, 상사 부부가 아니었다면 뭐라고 대거리라도 하고 싶은 마음이 불쑥 올라왔다. 2열로 나눠진 차량의 앞뒤에 타고 있어 등지고 앞을 바라보고 있었으니 망정이지 얼굴을 마주하고 있었다면 썩은 억지웃음을 들켰을 것이다.


아이의 입학이 결정 나고 몇 달 지나지 않아 한 아이의 생일이 되어 처음으로 생일파티에 참석하게 되었다. 한국 엄마들은 아이들의 생일을 많은 친구와 그의 엄마까지 초대하여 성대하게 치렀다. 음식을 함께 장만하면서 엄마들도 자주 만나게 되었고 자연스럽게 친분이 생기는 만남의 장이 되었다. 긴 시간 동안 풍성하게 준비된 음식을 먹고 온갖 주제를 가지고 얘기를 나누다 먼저 자리를 떠나려는 순간, 두 명의 엄마가 인자하고 따듯한 웃음을 띠며 다가왔다.


"자매님, 성당에서 뵈어요. 성당에 자주 나오세요."


아차차, 지난주 남편이 가져다준 십자가 목걸이를 하고 간 것이 잘못이었다. 신부님이 성지에 다녀오면서 현지에서 사 온 나무 십자가 목걸이를 신도들에게 나눠주셨고 가볍고 단순한 문양의 목걸이가 허전한 목에 어울려 보였다. 무심결에 걸고 나간 십자가 목걸이를 보고 그들은 신자라고 착각을 한 모양이었다. 손을 홰홰 저으며 아니라고 부인하자,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을 지어 보였다. 또다시 변명 혹은 소명의 시간이 찾아왔다. 남편과 아이만 나가고 있다, 믿음이 생겨 자발적으로 나갈 수 있는 시간이 오기를 기다리고 있다 등등의 말을 빠르게 늘어놓고 어색하게 헤어졌다.


스텔라와 채드몬, 훌륭한 성인의 세례명을 가진 남편과 아이는 귀국 후 성당에 나가지 않고 있다. 흔히 말하는 냉담자이지만 그들은 버젓이 묵주반지를 끼고 있다. 냉담자도 아무것도 아닌 삐사감도 장미 문양이 선명한 묵주반지를 끼고 있다. 아버지는 '하상 바오로'를 '화상 바로오'로 기억할 만큼 자신의 세례명이 익숙하지 않고 시가의 아주버님은 세례식에서 으레 받게 되는 성물을 집 안에 걸어두지 않는다. 어머님의 성화에 못 이겨 세례를 받은 것인지 자연스레 냉담자가 된 것인지 연유를 알 수 없지만. 그에 반해 우리집에는 현관문 앞에 십자가 종, 방과 거실 선반에 성모상을 모시고 있다.


삐사감은 마음속에서 우러나온 믿음으로 주일을 지키고 자기 인생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을 신에게 귀결시키는 신자들의 생활 태도를 동경한다. 모든 것이 신의 뜻이라고 쉽게 수용하고 납득하는 듯 보이는, 말씀 안에서 맘속 갈등의 실마리를 찾고 고난을 헤쳐 나갈 힘을 얻는 삶이라면 기꺼이 신자의 길을 택하고 싶다. 그런 태도로 살 수 있다면 참으로 든든한 조력자 혹은 지원자와 함께 사는 일이 아닐지 짐작한다. 하지만 생각처럼 마음이 움직이지 않고 엄마의 소원대로, 다른 가정의 모습대로 믿음을 구겨 넣을 수는 없었다. 그래서 여러 문제와 결정의 순간마다 마구 흔들리며 간신히 다른 것들에 의지하며 견뎌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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