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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초록지붕 B사감 Jan 30. 2024

세상 제일 건강한 먹거리

김밥이 좋아서

도서관에 들러 책을 빌리고, 과일가게에서 딸기를, 자주 가는 김밥집에서 기본 김밥 두 줄을 사는 일은 30분이면 끝났다. 걸어서 다시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한눈팔지 않는다면 한 시간이면 바깥 외출이 끝나버리는 조금은 쓸쓸한 산책을 꽤 오랫동안 반복하고 있다. 워낙 단출한 가족인데 그나마 최근 들어 각각 자신의 삶터로 떠났다가 주말이면 집으로 모이는, 헤쳐모여를 반복하다 보니 생활은 단순해지고 식사를 준비하는 일은 지극히 간단해졌다.


1인을 위한 식사를 준비하기란 간단한 듯 간단하지 않다. 생각해 보면 꽤 버겁다. 국이나 찌개를 제대로 끓여놓으면 며칠 동안 냉장고를 들락날락하면서 몇 끼에 걸쳐 먹어야 없어졌다. 혼자 먹기 위한 반찬을 마련하는 일이 ‘굳이’ 하는 일이 되더니 새 밥을 짓는 일도 어느새 ‘굳이’ 하는 일이 되어버렸다. 그러다가 싱크대 깊숙이 안쪽에 있는, 절전을 위해 빼놓은 인덕션 코드를 연결하는 일마저 굳이 하고 싶지 않은 일이 되어버렸다.


집에서 혼자 밥을 먹는 일이란, 유통기한이 임박한 냉동식품을 소진하는 일이고, 대접에 밥과 반찬을 전부 때려 넣은 후 싱크대에 서서 먹는 일이기도 했다. 맥주에 감자칩을 곁들여 후식까지 먹어 치우고도 남는 긴 밤시간을 지루해할지언정 혼자만을 위한 약간의 시간과 정성을 기울이는 밥상을 차리는 일은 점점 대단한 일이 되어갔다.


그러다가 입안이 패이고 일어날 때 한두 번 눈앞이 캄캄하고 어질해지면 김밥을 찾았다. 우영우처럼 재료가 모두 드러나 있는 음식이라 좋아하는 것은 아니다. 그저 다양한 야채-그래봤자 단무지, 시금치, 당근, 우엉 정도-와 계란, 김, 쌀, 참기름과 깨까지 들어간 김밥이 하루 권장 영양소를 모두 품고 돌돌 말려있는 것처럼 느껴지기 때문이었다. <영화 올드보이>의 한대수는 타의로 군만두를 먹어야 했지만, 누군가는 알량한 이유로 자발적으로 김밥을 장복하고 있다. 가계부를 쓰다보면 자주 보이는 ㅇㅇ김밥. 사천 원 혹은 팔천 원이라는 메모를 발견하면 조금은 헛헛하지만 나름 뿌듯하기도 했다.


깻잎 조림, 감자조림, 콩나물무침, 두부조림, 미역줄기볶음, 무생채 그리고 장부침개 … 중고등 시절 도시락은 주로 이런 반찬들로 채워졌다. 가끔 불고기, 계란프라이와 포일에 싼 김이 더해지는 정도. 엄마는 매일 도시락 예닐곱 개를 싸야 했고 여러 가지 반찬으로 구색을 갖춘 도시락을 싸기에는 할 일이 너무 많았다. 아빠부터 우리 형제들은 반찬 하나로 도시락을 먹는 일도 있었지만, 불평한 기억은 없다. 미역 줄기를 며칠 연속 먹기도 하고 감자조림만 내리 삼사일을 먹기도 했다.


한때 장부침개를 너무 좋아해서 주말이면 직접 만들어 먹기도 했는데 그걸 본 엄마가 도시락 반찬으로 싸주기 시작했다. 지금이라면 절대 선택하지 않았을 탄수화물 더하기 탄수화물 식단, 엄마는 좋아하는 음식을 싸준다는 생각에 꽤 오랜 시간 동안 별다른 야채 없이 고추장만 풀어 만든 장부침을 도시락 반찬으로 싸주었고 이내 물려버렸지만 대놓고 말하지 못했던 것 같다.


고등어, 꽁치와 같은 등푸른생선은 등껍질 색과 비린내 때문에 먹지 않았다. 분홍 소세지 부침과 케첩, 마요네즈는 느끼해서, 유제품은 자주 먹을 기회가 없었지만 먹기만 하면 설사해서 먹지 않았다. 스스로 가리는 음식도 있었지만 싸고 양이 많은 식재료 위주로 꾸려진 식단 탓에 다양한 음식을 접할 수 있는 기회는 어려서부터 차단되었다. 그래도 형제 중 제일 반찬 투정 없이 맛나게 잘 먹어 엉덩이가 토실한 게 보기 좋았다고 엄마는 증언한다. 형제 중에 제일 몸집이 작은 본인으로서는 믿기 힘든 말이지만…


그렇게 편협한? 식단에 질린 만도 한데 아직도 가장 선호하는 밥상은 (지금보다는 염분기를 조금 빼버린) 엄마의 밥상이다. 나물 서너 가지에 계절 김치, 현미가 조금 들어간 갓 지은 밥, 고등어조림이나 코다리조림이 항상 빠지지 않는 밥상이 가장 속이 편하다. 지금 기준으로는 조금 짜고(가끔은 놀랍도록 짜기도 하지만), 조미료도 드문드문 들어가서 감칠맛이 나는 엄마의 밥상.


엄마의 밥상은 생각보다 손이 많이 가는, 차리기 어려운 밥상이다. 나물을 다듬거나 불려서 삶아 무치는 일, 계절마다 오이, 열무김치를 담그는 일, 이 모두가 긴 시간과 수고로움이 따른다. 식사 시간에 맞춰 따듯한 밥을 해야한다는 원칙도 따르기 힘들기는 매한가지다. 길게는 일주일 치 밥을 해서 냉동고에 착착 싸두고 데워먹는 사람은 매 끼니 밥을 하는 엄마를 이해하기 힘들다. 냉동고에 있던 밥을 전자레인지에 돌리면 갓 지은 밥 같다고 소리높여 떠들어도 엄마는 그냥 씩 웃으며 매번 밥을 한다. 그것도 밥 먹는 시간에 딱 맞춰서.




오랜만에 양배추를 삶는다. 논우렁이살과 야채를 넣어 강된장을 만든다. 배추를 한 통 사서 배춧국을 끓이고 커다란 배춧잎은 소금에 살짝 절여 둔다. 두부를 길게 6조각을 내서 기름을 두르고 지진다. 계란을 서너 개 삶는다. 청상추와 오이를 씻어 먹기 편하게 자르고 올리브유와 발사믹을 뿌린다. 절인 배춧잎으로 배추전을 만든다. 검은콩과 흑미, 찹쌀현미를 넣고 밥을 짓는다. 모든 음식에 소금은 아끼도록 노력한다. 식탁에 제대로 앉아 접시에 예쁘게 담아 천천히 먹는다. 후식으로 원두를 갈아 모카포트에 끓어 마신다. 되도록 쿠키 같은 간식은 피하고 과일을 먹도록 한다.


가끔 위기가 찾아오는 느낌이면, 자글자글한 얼굴 주름이 흉물스럽게 느껴지면, OECD 평균수명 1위 국가라는 보도를 접할때면, 건강하게 늙고 싶어진다. 그래서 주로 주말이나 식구들이 모이는 날이 아니면 좀처럼 움직이지 않던 팔다리를 움직여 식사를 준비한다. 혼자만의 식사를 위해서 이런 밥상을 준비하는 일은 손꼽을 일이다. 그런 와중에도 효율을 중시하는 사람으로서 나중을 생각하면서 계란이나 양배추, 배춧국 등 모두 서너 끼는 먹을 만큼 충분히 해두었다. 언제 마음이 바뀌어 과자봉지를 하나 집어 들고 식사로 때우던가, 내심 염분기가 과하다고 생각하면서도 김밥을 영양식으로 둔갑시켜 몇 줄 사다 비축하게 될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그래도 김밥이 세상에서 가장 영양학적으로 우수한 최고의 음식이 되었으면, 게으름을 효율이라고 포장하면서 마음속으로 기원해 본다.


사진: https://instagram.com/js_vfinder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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