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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초록지붕 B사감 Feb 21. 2024

가난 대전

니가 와인 맛을 알아?

야, 넌 그래도 매일 계란 먹으면서 자랐잖아.
그건 집에서 닭을 키워서 그랬던 거지, 그거 말고는 아무것도 없었어.
난 도시락 반찬으로 계란프라이 싸갈 때 말고는 어렸을 때 별로 먹은 기억이 없어. 그래서 지금 요 모양 요 꼴로 크질 않았지.
그래도 너희 집은 아버지가 안정적인 수입이 있었잖아. 우리집은 아버지가 줄곧 아파서 병치레만 하다가 국민학교때 돌아가셔서 엄마가 겨우 일해서 입에 풀칠하고 살았다고....
우리집은 말이야…. 우리집은 말이지….


가난 대전이 또 시작되었다. 잊을만하면 한 번씩 남편과 누가 누가 더 가난했나 대결을 벌인다. 아이는 이제 그만해라, 지겹다는 불평도 없이 또 시작했다는 듯한 표정으로 무심하게 자리만 지키고 있다. 처음에 둘이 옥신각신하는 모습을 보거나, 엄마가 어렸을 때는 말이지 라며 시작하는 이야기를 들려주면 하나하나에 놀라면서 반응하거나 종잡을 수 없다는 표정이었다. 아이가 여섯 살 때 캐노피 공주 침대를 가지고 싶다며 소원 카드에 적은 것을 보고 엄마가 어려서는 이라는 말로 시작되는 훈계를 또 했었다. 그때만 해도 아이는 측은하다는 표정을 지으며 진지하게 그럼 침대는 언제 샀어? 냉장고는? 세탁기는? 자장면 처음 먹어본 건 언제야? 라며 도대체 어떤 시절을 살아낸 거냐는 듯한 질문을 퍼부었다.


감나무와 사과나무가 지천이던 시골 동네에서 어린 시절을 보낸 남편은 조금은 상품성이 떨어지는 과일을 원 없이 먹으며 자랐고, 텃밭과 닭장을 품고 있는 집에서 살았다. 그 덕에 계란만은 부족하지 않게 먹었다고 한다. 가난했지만 어느 면에서는 나름 풍족했다고 할 수 있겠다. 결혼을 약속하고 인사를 하러 처음 시가를 방문했을 때 친가 부모님이 좋아하시던 홍시를 바구니에 예쁘게 담아서 갔던 일을 생각하면 아직도 아찔하다. 홍시에서 곶감까지 지천으로 널려있던 동네에서 살던 시가 식구들에게 꽃바구니처럼 곱게 담겨있던 홍시 한 바구니는 하나도 반가운 선물이 아니었다.


그에 반해 삐사감은 애매한 중소도시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다. 자기 땅이 한 뻠도 없는 도시인으로 살다 보니 모든 것을 시장에서 구해야 했고 그를 위해 아빠는 돈을 벌었다. 넉넉함보다는 아끼고 남겨서 내일을 준비하는 것이 인간의 도리라고 생각했던 부모님 덕분에 일절 여유는 없었다. 아빠가 술에 취해 돌아온 어느 날 언니는 심부름으로 계란을 사러 가게에 갔다. 야물지 못했던 국민학생 첫째는 계란 두 개를 들고 집으로 돌아오다가 대문턱에 걸려 넘어졌고 귀하디귀한 계란은 바닥으로 떨어져 산산이 부서졌다. 당시를 떠올리며 이야기를 들려주던 엄마의 얼굴에는 웃음과 함께 낱개로 몇 개씩 사서 먹던 계란을 아까워했던 마음이 드러났다.




검은 더께가 앉은 세면대에 침대는 무너지고 비가 새는 방 안에서 지낸다. 게다가 한 끼도 제대로 못 먹고 노동에 시달리지만, 웡카는 맑고 해사한 얼굴이 항상 활기차다. (적어도 손톱 밑이라도 거뭇해야 리얼리즘이 살지 않을지 라는 생각이 영화의 몰입을 방해했지만) 여관에서 단 하루를 머무를 돈은 없지만 초콜릿을 가득 만들어내는 재료는 어디에선가 자유자재로 충당해 내는 그의 생활은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이 태반이지만 마법의 힘이라고 해두자. 마법이 들쭉날쭉 작용한다는 의구심도 지울 수 없지만, 이 영화를, 웡카를 끝까지 지켜보려면 모든 의심은 접어두어야만 한다.


사계절 농사를 지으며 흙에서 얻어낸 생명들로 세상 건강해 보이는 음식을 뚝딱 만들어 혼자서 혹은 친구와 잔잔하고 소소하게 나누며 살아간다. 리틀 포레스트의 주인공은 찌는 듯한 태양 아래에서의 농사일도, 눈이 무릎까지 차오르는 한겨울 시골 생활도 거뜬히 해낸다. 좌절하는 눈빛보다는 주저함 없이 움직이는 손과 발은 부지런하다. 매연과 인파, 소음으로 가득한, 바쁨과 피곤으로 점철된 도시에서는 상상할 수 없는 고요함과 풍족함이 시골 생활을 동경하게 한다.


지난날의 가난을 떠올리며 남보다 '우월했던 빈곤'을 자랑하고 이를 전시해서 이기려는 심리는 무엇이었을까. 우리의 가난 대전에서는 고작 먹거리가 부족했다거나 일찍 부모와 사별해서 겪은 열악했던 환경을 내세웠지만, 전쟁 세대나 거슬러 올라가서 식민지 시대 사람들은 그보다 더한 극한의 빈곤을 떠올리며 가소롭다며 코웃음칠 수도 있겠다. 절대적 빈곤으로 대다수가 가난했던 시절의 사람들은 옆집 사람이나 아는 친구들까지도 모두 가난해서 조금은 마음이 편했을까? 비교 대상이 모두 가난하면 우리는 가난을 덜 느낄까?


가난을 구성하는 요건은 무엇일까. 웡카와 혜원은 가난해도 가난해 보이지 않았다. 너무나 영화의 세계라서, 그들이 어두운 날에도 눈부시게 빛나는 티모시와 김태리라서 가난이 보이지 않았을까. 아주 많이 그랬을 가능성도 인정해야겠지만, 웡카와 혜원은 그들의 세계에서 가난으로 인한 절망감보다는 지금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에 집중했다고 믿고 싶다. 그래서 영화는 한없이 픽션이지만, 한 가닥 가늘지만, 옹골진 희망을 가능하게 만든다. 가난해도 자신만의 삶을 찾을 수 있다면, 그것이 돈으로 살 수 없는 어떤 것들로 이루어진다면 누구보다도 안전하게 빈곤에서 탈출할 수도 있겠다는 믿음과 희망을.


조금 값이 많이 나가는 와인을 선물 받아 고이 모셔두었다가 개봉하여 마시던 날, 이 정도 맛이면 저렴하면서도 맛난 걸로 몇 개 더 사겠다며 값만큼의 맛은 아니라는 박한 평가를 누군가가 했다. 비싼 것의 가치를 알만한 입이 아니라며, 고급스러움을 제대로 배우지 못한 탓이라며, 그래서 어려서부터의 생활 습관은 어쩔 수 없다는 대거리가 오가다가 버릇처럼 과거로 돌아갔다. 다시 한번 가난 대전이 시작된 것이다. 우리는 또다시 감, 사과, 계란을 거쳐 아버지의 병환, 안정된 수입, 절약을 주제로 한참을 씹어대다가 몸도 마음도 편한 대로 제멋대로 건강하게 사는 게 최고라는 이상한 결론에 도달했다. 그 사이 아이는 자기 방으로 사라졌다.  

 

사진출처: https://www.metmuseum.org/art/collection/search/452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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