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까멜리에 Apr 02. 2019

#1. 여행의 준비와 시작

[2018 낭만제주] 제주로 여행을 준비하는 시간 그리고 여행의 첫날



올여름휴가도 제주다


" 곳으로 여행을 가야만 제대로 된 휴가를 즐기는 걸까?"

휴가날짜는 점점 다가오는데 아무것도 정해 놓은 것이 없었다. 게다가 가고 싶은 곳도 하고 싶은 것도 떠오르지 않았고 무엇을 계획하고 꼼꼼히 찾아볼 열정도 없었다. 그저 조용한 곳에서 쉬고 싶을 뿐이었다.

하지만 요즘 내 또래들은 대부분 해외로 여름휴가를 많이들 가는데, 이번에도 해외를 가지 않으면 제대로 된 휴가를 보낸 것 같지도 않을 것 같고 제대로 즐기지 못하는 사람으로 전락해버릴 것만 같은 느낌이었다. 


어떤 이는 일찍이 해외로 가는 비행기 편을 티켓팅하고 여행을 계획하고 기다리는 순간을 즐기지만, 해외여행을 많이 다니지 않은 탓에 우리는 그런 것들에 능숙하지 못하여 그런지 크게 흥미를 느끼지 못하는 것 같다.

혹자는 이른 우리를 보고 게으르기 때문에 인생의 즐거움을 제대로 즐기지 못하는 사람이라고 할 수도 있을 것이다. 나 또한 나 자신을 그런 사람으로 생각했었고, 그런 생각에서 조금이나마 벗어나는데 꽤 오랜 시간이 걸렸기 때문이다. 하지만 크게 흥미가 끌리지 않는 것에 시간과 에너지를 쏟고 싶지 않을 뿐이다. 언제가 가보고 싶은 곳이 생긴다면 열심히 알아보겠지만 말이다.


남편 또한 제주 여행만을 고집하는 내가 답답해서일까, 이번 여름휴가는 해외로 가보자고 제안했다. 그리 내키지는 않았지만 각종 사이트를 통해 동남아에 있는 괜찮아 보이는 휴양지에 가기로 결정하고, 결제할 순간만을 남겨두었다.


 “긴 시간과 많은 돈을 내고 가는데, 과연 이번 휴가가 만족스러울까?” 
아무리 생각해봐도 만족스러운 여행이 될 것 같지는 않았다. 우선, 우리가 간절히 가고 싶었던 곳이 아니라 인터넷을 통해 억지로 찾아낸 곳이라는 점, 국내에 비하면 긴 여행시간과 그 나라의 습하고 더운 기후, 과감한 음식에 대한 도전이 얼마나 나를 즐겁게 할 수 있을지 의문스러웠다.
'여행=쉶'이라는 정의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나인데, 일상의 평범함을 느리게 즐기기를 좋아하는 나의 성격 탓에 썩 내키지 않았다.


“우리 그냥 제주도로 갈까?” 
휴가를 2주 정도 앞두고 남편이 내게 물었다. 어쩌면 남편의 입에서 이 얘기가 먼저 나오기만을 기다렸기에, 남편의 제안이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었다. 대신 이번 휴가는 각자 몇 가지씩 하고 싶은 것들을 정해서 제대로 즐기고 오자고 제안했다. 남편은 서핑 강습을 받아보고 싶다고 하는데, 썩 내키지는 않았지만 흔쾌히 승낙했고, 나는 서쪽에 있는 재즈바에서 공연을 보고 싶다고 했다.


그렇게 우리의 휴가지는 올해도 제주다. 그리웠던 제주!



여행 첫날, 그 설렘과 편안함에 대하여


여행을 가기 전에 책과 영화 그리고 음악을 든든히 챙겨가는 버릇이 있기에, 그날도 어김없이 공항 서점에 들러 책을 고르기 시작했다. 주로 여행지에서는 평소에 잘 읽지 않는 감성적인 에세이 읽기를 좋아하기에, 이번 여행을 위해 에쿠니 가오리의 ‘냉정과 열정사이’를 집어 들었다.


비행기에 탑승하여 창가에 자리를 잡았다. 비행기 안에서는 최대한 창가에 앉아 창 밖 보기를 좋아한다. 자그마하게 보이는 그곳이 어디이고 나는 지금 어디까지 와있는지 유추하기를 좋아한다. 그러다 창 밖 너머로 뜨거운 햇살이 쏟아지기 시작하면 기분 좋음에 스르르 눈이 감긴다. 눈을 감고 빛을 느끼는 그 느낌이 너무 좋다. 내 감상이 부서질까 봐 기내에서 제공하는 음료도 마다한 채. 


그렇게 한 시간이 지났을까, 저 멀리 제주도가 보인다. 비행기 안에는 제주에 도착했고 그곳의 날씨는 어떻다는 멘트가 나오는데, 이 순간이 가장 설렌다. 내가 좋아하는 곳에 막 도착했다는 순간.


공항에 도착한 뒤 빌린 차를 찾고 목적지를 향해 달렸다. 시내 곳곳에 심어져 있는 야자나무, 돌하르방, 눈 앞에 펼쳐지는 드넓은 벌판과 해안도로를 달릴 때 내 얼굴을 적시는 바다내음 덕분에 내가 제주에 있음을 실감했다.


잠깐의 휴식을 취한 뒤 유명하다는 카페에 들렀는데 어수선한 분위기에 금방 그곳을 나왔고, 카페 뒤에 위치한 어느 포구의 한 펜치에 앉았다. 카페를 찾는 사람만이 간간히 보이는, 지나가는 사람도 잘 없는 아주 작은 포구였다. 8월의 더운 기운과 습하고 짠 바닷바람에 짜증이 날 법도 한데, 온몸이 땀으로 젖는 기분이 마냥 좋기만 했다. 벤치에 앉아 준비해 온 책을 읽고 있으니 나도 책도 소금물로 뒤덮이는 기분이었지만 이 순간을 놓치고 싶지 않았기에 벤치에 앉아 꿋꿋이 한자 한 자 읽어 내려가기 시작했다. 책을 가져온 게 하나뿐이라 최대한 아껴 읽으려 노력했다.


책 위로 퍼지는 햇살도, 옆에서 들리는 어느 부부의 노랫소리도 모든 것이 간지럽도록 좋았던 날이었다. 도심 속 일상에서는 무례하다고 짜증부터 낼 법한 일들이었지만, 자연이 주는 여유로움 안에서는 모든 것이 멜로디였고 하모니였다. 이어폰으로 음악 듣기를 좋아하는 나인데, 자연의 소리(사람들의 대화 소리, 파도소리) 그리고 온도의 냄새에 집중하고자 했다. 벤치에 앉아 선잠에 빠지기도 했고, 소나기를 피하기 위해 차 안에서 밖을 바라보기도 했다. 


여느 때와 같이 근처에서 평범한 저녁을 먹고 숙소로 돌아와 맥주 한 캔에 첫날의 여행을 정리했다. 여행의 첫째 날이 지나가고 있었다.



창 밖으로 보이는 구름과 빛. 눈을 감아도 그 따스함을 느낄 수 있다



숙소로 가는 해안도로. 제주에 와 있음을 실감하게 해 준다



어느 포구에 있던 할머니. 곱디곱다



포구에 앉아 습한 기운과 함께 책을 읽어 내려가기 시작한다


매거진의 이전글 #5. 편안했던 세화리의 느낌을 추억하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