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의 9.9.6 근태를 고발합니다.
오전 9시부터 오후 9시까지 주 6일 일하는 996 직장 문화는
누구에게나 ‘축복’이다
- 마윈
알리바바 그룹의 창업자 마윈이 남긴 어록은 중국 IT 플랫폼 회사의 근태 문화에 센세이션을 일으켰다. 996은 오전 9시부터 오후 9시까지 주 6일 일하는 근무 형태를 칭한다. 다른 산업에 비해 일손이 많이 필요하고, 24시간 모니터링이 요구되기 때문에 중국 내 IT 회사에서는 996 근태를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중국에서는 과로사와 관련된 크고 작은 사건들이 있었음에도 여전히 IT기업 종사자들은 적절한 수면 시간과 휴식 시간을 보장받지 못한 채 살아가고 있다.
이 악습은 춘절 연휴 기간인 2월 4일, 오래된 고름 마냥 터져버렸다. 중국판 유튜브인 비리비리 우한 지사에서 근무했던 직원이 과로사로 사망했기 때문이다. 해당 직원은 공휴일인 춘절 연휴에도 회사에 나와 일을 했을 정도로 고강도의 업무를 했지만, 비리비리에서는 회사와는 무관하다는 태도를 내비쳤다.
중국의 노동법상 법정 근로시간은 하루 8시간, 주당 40시간을 초과할 수 없다. 초과 근무 시간도 하루 최대 3시간, 월 36시간을 초과해서는 안 된다. 하지만 996근태를 지향하는 회사의 경우 주당 최소 60시간의 근무를 강요한다. 이런 상황에선 평균 2.275배 이상의 월급을 추가로 받아야 하지만, 대부분의 노동자가 ‘희생’과 ‘공동의 목표 달성’이라는 명목 하에 제대로 된 보수조차 받지 못하며 일하고 있다.
2016년 9월 광고 회사 ‘58同城’이 996 근태를 공식적으로 도입하겠다는 발표 후, 물밀 듯이 다른 IT기업에서도 996 근태를 도입했다. “공동의 비즈니스를 향해 진심으로 달려가는 사원들”의 정신인 마이마이(脉脉)를 강요하며, 중국 IT 업계에 996근태는 모든 기업의 가이드라인이 되기 시작했다.
하지만 유행도 잠시 장시간, 고강도 업무로 인해 ‘핀두어두어(拼多多)’ 에서는 연달아 2명의 직원이 목숨을 스스로 끊는 사고가 생겼다. 이런 불합리한 현실을 고발하기 위해 한 익명의 개발자가 해당 웹 사이트를 제작하였고 996 근태가 사회적으로 집중적인 관심을 받아야 한다는 의미의 ICU(Intensive Care Unit)를 합쳐 996.ICU 웹 사이트가 탄생하게 되었다.
2015년부터 악순환처럼 반복되는 과로사 문제로 기업들은 변화를 모색한다고 선언했지만, 현실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비리비리 직원의 죽음 후에도 여전히 비슷한 사례와 이야기들은 쏟아져 나오고 있다. 최근 텐센트 신입사원의 양심 고백을 통해 IT업계의 근태 문화는 변하지 않았고, 회사 임원들은 고강도 업무를 당연시하게 여긴다는 업계의 민낯이 밝혀지기도 했다. 실제로, 중국 심혈관계 건강과 질병 보고서 2020 《中国心血管健康与疾病报告2020》에 따르면, 최근 20년간 젊은 층의 사망 비중이 눈에 띄게 증가했고 장기간의 수면 부족, 불규칙한 생활 습관 등으로 과로 상태에 빠져 심장성 급사가 원인이었다고 한다.
노동자의 권익 보호에 관한 세부 사항이 명시되어있는 중국의 노동법 《中国人民共和国劳动法》은 총 13조 항으로 구성되어있다. 그중 4장 제 38조에 따르면, 기업은 노동자에게 최소한 주 1일 휴일을 보장해야 한다. 44조에 따르면, 연장 근무 시 근무시간 비의 150%를 지급해야 하고, 공휴일 및 대체 휴일 출근 시 근무시간 비의 200%를 지급해야 한다고 규정한다. 법정 휴일에 근무하게 된다면 근무시간 비의 300% 이상을 지급할 의무가 있다. 마지막 45조에는 근로자가 1년 이상 계속 근무했을 시 유급 휴가를 사용할 수 있다고 말한다. 실상은 그렇지 않지만, 법적으로는 이들의 권익을 충분히 보호해 줄 장치가 있다는 것이다.
중국의 중관촌 소프트웨어 타운, 미국의 실리콘밸리, 한국의 판교테크노밸리는 모두 각 국가에서 유명한 IT 기업들이 성장하고 있는 기술 특화 단지이다. 중관촌에는 레노보(Lenovo), 바이두(Baidu), 소후(Sohu) 등과 같은 중국 내 유명 IT 기업과 아이비엠(IBM), 구글(Google), 마이크로소프트(Microsoft) 등의 다국적 기업들이 함께 입주해있다. 근처에는 칭화대학교, 베이징대학교와 같은 명문 사학이 함께 있어 IT기업을 위한 최고의 성장 환경을 조성하였다. 한국의 실리콘밸리인 판교테크노밸리 역시 카카오, 엔씨소프트, SK 하이닉스 등 내로라하는 국내 IT업계 회사들이 입주해 있고, 그 시너지를 매년 키워가고 있다. 전 세계 IT 기업의 중심인 실리콘밸리는 수십 년간 IT 업계의 기업문화를 주도해왔고, 판교테크노밸리와 중관촌 소프트웨어 타운의 성장에도 크게 기여했다. ‘자율’과 ‘책임’을 최우선으로 동시에 최고의 효율을 얻을 수 있는 기업 문화를 알린 곳이자, 전 세계 IT 기업의 표준이 되는 곳이다.
하지만 실리콘 밸리의 기업 문화들이 전 세계로 퍼지면서, 자국의 문화에 맞게 해석이 바뀌다 보니 한편으로는 왜곡된 조직 문화가 생산되기도 했다. 한국은 최근 기업 내 경직성을 타파하기 위해 사내에서 영어 이름을 쓰는 경우가 많다. 경어를 쓰지 않고 모두 동일한 위치에서 함께 일을 하자는 의도지만, 실상은 이름 뒤 ‘님’과 같은 존칭 어미를 버리지 못해 제자리걸음이 되었다. 중국 역시 겉으로 보기에는 모든 사람의 의견을 수렴하고, 수평적인 기업 이미지를 추구하지만, 다른 어느 나라보다 치열하고 기업 간 점유율 경쟁이 심화된 사회 분위기가 굳어져 노동자에게도 고스란히 이어졌다. 벗어나고 싶지만, 대체될 수 있다는 불안감의 굴레에 갇혀 있기 때문에 자신을 속박하는 996 근태에도 순응하는 것이다.
‘이상적인 회사, 조직은 어딘가’라는 질문에 대한 대답은 모두 다를 것이다. 혹자는 돈을 많이 주고 일은 적게 시키는 회사를 선호할 것이고, 혹자는 일이 자신을 삼켜도 개인적 여건 때문에 이를 받아들이기도 할 것이다. 조직 문화에 대한 올바른 기준이 따로 존재하는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국가와 법령, 그리고 사회는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노동자를 보호해야 한다.
최근 떠오르는 노동 형태로 자신의 피와 살을 깎아 먹는 경직된 직장 문화에서 벗어나 자발적으로 긱 노동자(GIG Worker)가 되는 사람들이 있다. 긱 노동자 (GIG Worker)에서 긱(GIG)은 ‘필요한 타이밍에 임시방편으로 일하다’라는 뜻이다. 이들은 일과 직업에 대한 전통적인 가치관을 스스로 해체하고 워라밸(Work and Life Balance)의 균형을 찾고자 한다. 이들은 배달 플랫폼을 통해 단기적으로 이익을 얻거나 모바일 플랫폼상에서 프리랜서로 활동하며 월수입을 충당한다. 큰 수익을 얻을 때도 얻지 않을 때도 있지만, 자신의 라이프가 우선시되는 삶을 지향한다. 이런 사회적 움직임을 인지했는지 중국 정부에서도 알리바바(阿里巴巴)와 텐센트(騰迅·텅쉰)를 비롯한 중국의 11개 거대 기술기업에 긱 노동자(Gig Worker)의 권리 보호에 앞서 달라고 주문을 하기도 했다. 그리고, 텐센트 산하의 기업인 ‘라이트스피드 앤드 퀀텀 스튜디오’ 에서는 '건강의 날'로 지정된 매주 수요일을 제외하고 나머지 근무일에는 늦어도 오후 9시 전에 퇴근하는 규정을 발표하였다.
아직은 갈 길이 많아 보이지만 노동에 대한 올바른 사회적 분위기가 조성되고 중국 내 악습처럼 뿌리 깊게 내리박혀왔던 조직 문화를 바꿀 수 있는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 또한, 모든 형태의 노동자가 보호받을 수 있는 사회가 되길 바란다.
“더 이상의 희생자가 나오지 않게,
일이 나를 갉아먹지 않는 그런 사회가 되길 바란다.
변화가 없다면 더 나은 세상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