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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정은 Jan 01. 2023

겨울에 읽는 한여름의 로맨스소설

<우리의 열번째 여름>, 에밀리 헨리 지음

왜냐하면 이 책은 우리가 가는 장소보다는 그곳으로 가는 길에 만나는 사람들에 관한 책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무엇보다 이 책은 머무르는 사람들, 집이 되어주는 이들에 관한 책이다.

― <우리의 열번째 여름>의 저자, 에밀리 헨리


 직장생활이 5년차에 접어드니 한 달씩 휴가를 떠나는 다른 나라들의 관행이 이렇게 부러울 수가 없다. 한 달을 쉬기 위해서 직장을 그만두고 싶은 욕구가 목구멍까지 차올랐다. 작년에만 코로나19를 두 번 걸려 일주일간의 격리를 두 번했는데, 일주일은 턱없이 짧은 시간이었다.


 

 자랑스럽지는 않지만 난 로맨스소설을 꽤 좋아한다. 그냥 로맨스소설이 아니라― 그러니까 미모의 남녀가 우연히 눈을 마주치고 믿을 수 없을만큼 서로에게 이끌려서 미친 사랑에 빠져 오만 난리법석을 떠는 그런 소설이 아니라, 각자의 성격과 신체, 영혼의 결함이 서로에게서 안식처를 얻어 비로소 온전히 숨쉬게 되는 그런 소설 말이다. 서로가 있어서 세상이 좀더 아름다워지진 않아도 적어도 살만해지는 그런 이야기. 그런 사랑에는 시간이 걸린다. 그리고 그런 사랑에는 자기 자신을 마주하는 과정도 필수적이다. 스스로 견딜 수 없고 초라하고 가끔은 도망치게 만드는 나 자신. 결국 나의 사랑은 나를 닮기 때문이다.




 <우리의 열번째 여름>은 내가 좋아하는 그런 로맨스소설이다. 우리나라에는 2022년 6월 초판되었는데, 번역의 시차가 있으니 뉴스위크, 오프라 윈프리 북클럽이 선정한 '올해 가장 기대되는 책'이라고 한다. 그 올해가 언제인지는 정확히 몰라도 꽤 믿을만한 이야기이다. 꽤 좋은 사랑 이야기니까. 이 소설을 쓴 에밀리 헨리는 영미권에서 '청소년과 성인 모두를 위한 사랑과 가족 이야기' 잘 쓰는 유명한 소설가이다. 북날개에 의하면 그렇고, 내가 알기로는 로맨틱코메디로 핫한 대가이다.



 책 내용은 제목 그대로다. 대학교에서 만나 서로 친해진, 서로 너무 다른 알렉스와 파피는 매년 여름 휴가를 함께 떠나는데, 2년 전 크로아티아에서의 '사건'으로 데면데면해졌다가 삶과 직장에 권태기가 온 파피가 용기를 내어 알렉스에게 연락을 하고, 2년만에 처음으로 다시 여름 휴가를 함께 떠나면서 겪게 되는 이야기이다. 이 여름 휴가가 그동안의 휴가에서 주지 않았던 새로운 기회를 안겨다줄까, 무엇이 달라질 수 있을까?



 알렉스는 규칙적이고 수줍음이 많다. 홀아비 밑에서 동생들의 가장 역할을 하느라 책임감이 막중한데, 얼른 정착해서 결혼하고 아이를 낳고 싶어한다. 반면 작은 체구의 파피는 엄청나게 외향적이고 정열적인 사람으로 늘 눈에 확 뛰는 의상을 입는데, 대학을 중퇴한 이후에 세계 여기저기를 여행하여 기사를 쓰는 에디터가 직업이다. 이렇게 서로 다른 두 사람은 우연한 계기로 가까워지는데, 함께 있을 때 이상하게 서로 편안해진다는 것을 알아차린다. 그렇게 한 번 떠나게 된 여름 휴가는 연이는 10년의 여름으로 이어지고, 둘만의 추억을 쌓아간다. 물론, 결정적인 사건이 있기 전까지는 문제가 없다.




 둘 다 재벌도 아니고 돈 문제로 고심도 하고 여러 제약에 부딪히는게 현실적이어서 훨씬 마음에 들었고, 또 현실의 사람들처럼 콤플렉스와 자기 혐오로 고군분투하는 이들이라―책 말미에는 두 사람 다 심리상담을 받게 된다― 더욱 사랑스러웠다. 난 땅에 발붙이고 사는 현실의 인물들이 나올 때가 좋은데, 그렇다고 소설 속의 사건들 또한 지극히 현실적이라 네이트판을 보는 건지 소설을 보는 건지 머리를 지끈지끈하게 아프게 하는 건 딱 싫어한다. 다행히 <우리의 열번째 여름> 속 사건들은 충분히 환상적이고 신선해서 마치 대리 여름 휴가를 지켜보는 느낌이었다. 1월 1일, 나는 벌써 여름 휴가가 몹시 기다려진다(실은 슬슬계획하고 있다). 




 서로가 서로의 집인 사람들의 사랑 이야기가 읽고 싶은 이들에게 이 책을 추천한다. 사실 요즘 이렇게 적당히 가볍고 재밌는 로멘틱코메디 장르에 꽂혀있다. 영화로는 <17 어게인>, <브링잇온>, <프린세스다이어리2>을 봤고, 아마존프라임에서 <내가 예뻐진 그 여름>을 보고있다. 책으로는 <당신의 완벽한 1년>을 읽고 있고. 실은 가리지 않고 뭐든 많이 읽으려고 노력하고 있다. 그동안 소설을 너무 안 읽다버릇했는데, 요즘은 심하다싶을 만큼 소설에 목마르다. 많이 읽고 많이 쓰는 1년이 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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