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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정은 Dec 17. 2022

경이로운 푸른 소설 <우리가 세상을 이해하길 멈출 때>

양자역학을 다룬 이렇게 재미있는 소설이라니

 그는 20년 넘게 자신의 꿈을 기록하여 꿈꾸는 자의 본질을 이해할 수 있었다. 꿈꾸는 자는 다름 아닌 하느님이다.

―  <우리가 세상을 이해하길 멈출 때>,  벵하민 라바투트 지음



 푸른색 신비한 표지의 끌리는 제목, <우리가 세상을 이해하길 멈출 때>라는 소설을 집어들었다. 작가는 벵하민 라바투트로 현재 산티아고에 살고 있다고 한다. 요즘은 종종 생략되곤 하는 작가의 사진이 실려있는데, 날카로운 눈빛이 범상치 않다. 형식도 독특한 이 소설은 픽션과 논픽션이 절묘하게 어우러져 있는데, 뒷표지에 실린 물리학자 김상욱 박사님께서는 '양자역학 이야기에 뿌려진 엄청난 양념 덕분에 나의 물리 영웅들이 바로 눈앞에서 이야기하는 착각에 빠졌다'고 한다. 




 김상욱 박사님께는 그랬을 것이다. 양자역학이며 물리를 조금도 모르는 나는 엄청난 양념이 뿌려져있는지 어떤지 전혀 몰랐고, 그저 흥미진진하고 재미있어서 넘기는 페이지가 아까웠고 어디부터가 픽션이고 논픽션인지 구분하지 못해서 작가가 전달하는 생생한 역사서를 읽는 것만 같았다. 




 이 책은 말하자면 연작 소설이다. 총 5개의 서로 연결되는 짧은 이야기가(그중 <우리가 세상을 이해하길 멈출 때>가 아주 길다) 이어진다. 그중 첫 이야기는 <프러시안블루>다. 프러시안블루는 나치 지도자 헤르만 괴링의 손톱과 발톱이 새빨갛게 물든 것에서부터 시작해서 그 쪽빛과 독의 기원까지 거슬러올라간다. 작가가 들려주는 이야기 한 줄 한 줄이 너무나 생생하고 흥미진진해서 나는 파도를 타다가 어느 순간 깊은 바다까지 흘러들었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아차리는 것과 같이 내 현 위치와 출발점을 잊은 채 정신없이 페이지를 넘기게 되었다.




 이 책을 읽는 내내 작가가 전달하는 그 시대에 빨려들어가 함께 전쟁을 겪고, 홀로 방 안에서 미치거나 길거리를 배회하는 것 같은 착각에 빠질 수 있었던 것은 그만큼 호소력이 짙은 문장력과 스토리텔링 기술을 가지고 있기 때문인 것도 있겠지만, 진리를 탐구하려는 인물들의 광적인 열정이 나에게도 옮아왔기 때문일 것이다. 나는 이 소설 덕분에 양자역학에 한 발짝 가까워졌겠지만, 당연하게도 여전히 이해는 전혀 하지 못하고 있을 테다. 본래 모르는 사람은 자신이 무엇을 모르는지도 모르는 법이니까. 하지만 덮어놓고 모른다고 말하던 예전과는 분명 달라졌다. 나도 물리학에 흥미를 가질 수 있는 사람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 어떻게 그러지 않겠는가? 여기 등장하는 위대한 정신들은 비범한 삶을 격변의 시대에 살아냈다.




 책을 읽으며 우리의 이해 범주 너머에 있는 진리에 대하여, 그리고 여전히 우주의 원리에 대해 조금도 모르는 인류와 깨어있는 것을 잊어버린 우리들의 감당하기 어려운 혐오와 무지에 대하여 생각했다. 우주는 무엇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이 신비 속에서 무감한 인류에게는 어떤 가능성이 남아있을까? 어떻게 해야 진리에 한 발짝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을까? 그 진리란 알게 되면 돌이킬 수 없는 그런 위험천만한 것일까, 우리의 상식 밖에 있는 것일까? 우리는 얼마나 모르고 있으며, 언젠가는 알게 될 희망이 있기는 할까? 현 시대의 무지몽매함을 미래의 인류는 비웃게 될까? 물리학, 철학, 수학을 전공한 다양한 사람들과 수다를 떨면 너무 재미있을 것 같은 그런 책이다. <지대넓얕> 같은 프로그램이 필요하다(정확히는 갈증이 난다).




 이 소설이 담고 있는 메세지며 주제를 모두 차치하고서라도, 순전히 재미있기 때문에 이 소설을 추천하고 싶다. 게다가 후루룩, 그냥 넘겨 읽는 책이 아니기에 자기 전 조금씩 읽고 자는 '베드타임 스토리'로도 안성맞춤이다. 조금 뇌를 쓰다 보면 눈을 감고 자고 싶어진다. 물론 뒷페이지가 궁금해서 피로를 꾹 참고 계속 더 읽다가 자는 부작용이 있긴 하지만. 겨울과도 잘 어울리는 이 소설을 눈이 많이 오는 이 계절에 읽기를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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