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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Uno Dec 06. 2020

어쩌다 인생

인생은 내 맘대로 되지 않는다. 아무리 아침 일찍 출근을 한다고 하더라도, 지하철이 고장나면 꼼짝없이 지각을 하게 된다. 세상은 언제나 노력의 중요성을 말한다. 준비된 자가 기회를 잡는다고도 한다. 하지만 결국 모든 건 운이다. 준비된 자가 기회를 잡는다는 말은, 준비를 하더라도 기회가 오지 않을 수도 있다는 말이다. 최근 ‘적당히 미치자’라는 말을 인생의 모토로 삼고 있다. 인간은 누구나 공부가 인생의 전부라고 생각하는 시기를 지난다. 그러나 지금 자신의 인생을 돌아보자. 나는 목사가 되고 싶었지만, 지금은 마케터로 일하고 있다.

생각해보면 당연히 목사가 될 줄 알았다. 지금 와서 보면 강박이었을지도 모르겠다. 신학이 재미있었고, 앞에서 설교하는 것도 좋았다. 일단 재능이 있었다. 남들보다 이해가 빨랐고 응용도 잘 했다. 열심히 하면 좋은 목사가 될 수도 있다는 희망이 들었다. 희망은 순식간에 무너졌다. 하나 뿐인 어머니가 정신병원에 들어가시면서 가장의 책임을 져야 했다. 평일에는 회사를 다녔고, 주말에는 전도사 생활을 했다. 그러면서 크고 작은 교회의 부패들을 경험했고, 두 직업을 반 년 정도 병행하자 공황장애가 찾아왔다. 꿈을 이루기 위해 살아왔다고 자부했는데, 그 꿈이 몸을 조금씩 갉아먹고 있었다.

마케터가 되기로 한 건 아주 작은 대화에서였다. 사촌들과 대화를 나눴고, 앞으로 뭘 하고 싶은지 물었다. 나는 당장 하고 싶은 게 없어서 막막하다고 답했다. 그동안 생긴 건 글재주 하난데, 당장 이걸로 어떻게 먹고 사나 싶었다. 새로운 일을 배우자니 돈도 시간도 없었다. 그야말로 독 안에 든 쥐였다. 그러자 글을 잘 쓰면 마케터가 되는 건 어떠냐고 물었다. 전공자도 아닌데 괜찮겠냐고 물었고, 비전공자의 무기는 참신함이라는 답을 들었다. 전문지식이 없으니 뽑히지 않겠냐는 질문에는, 부족한 건 채우면 된다고 했다. 너무 어렵게 생각하지 말고 우선 이력서를 넣으라고 하셨고, 나를 필요로 하는 곳이 분명 있을 거라는 희망도 얻었다.

그 후로는 여기저기 이력서를 넣었다. 자기소개를 몇 번을 수정하고, 단 한 곳도 연락이 오지 않았다. 아무래도 보여줄 게 너무 없다는 생각이 들어서, 취업 카페에서 정보를 얻으려 했다. 검색창에 ‘마케터’라고 검색했고, 콘텐츠 마케터를 구한다는 게시글을 읽었다. 이제 막 시작하는 스타트업이었다. 당연히 붙을 거라고 생각하지 않았고, 어떤 정보든 얻자는 마음으로 면접을 봤다. 그런데 대표는 아무것도 없는 신입 마케터를 영입했다. 주말 근무를 강요하는 바람에 그만 두었지만, 그 때 만든 결과물로 금방 이직이 되었다.

누군가는 내게 전도사인데 어떻게 취업을 했냐고 묻는다. 그럴 때마다 뭐든지 어렵게 생각하면 어렵다고 답한다. 물론 이름을 대면 알 만한 회사도 아닌 작은 스타트업이다. 그러나 막막했던 인생이 조금은 풀리기 시작했다. 신학만 하던 멍청이를 누가 써줄까 했는데 생각보다 불러주는 곳이 많았다. 도전이란 말은 너무 거창해 보이지만, 사실 사소함에서 시작한다. 내가 무언가를 열심히 해서 기회를 얻었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그저 너무 어렵게 생각하는 걸 그만두기로 했다.

우리는 세상에게 ‘좋은 인생’에 대해 항상 들어 왔다. 좋은 대학교를 나와서 좋은 직장에 취직해야 한다. 돈을 많이 벌어서 화목한 가족을 이루어야 한다. 하지만 좋은 대학교에 가기 위해서는 상위 5%에 들어야 하며, 그 중에서 몇몇만이 좋은 직장에 취직한다. 그 중에 화목한 가정까지 이루는 사람은 몇이나 될까? 세상은 우리에게 너무나도 당연한 듯이 어려운 과제를 요구한다. 취준생들은 눈만 높다는 질타를 받지만, 그들의 눈을 높인 건 누구일까? 그렇다고 해서 기성세대를 탓하는 데 인생을 낭비할 순 없다.

결국 가능성을 열어두는 게 중요하다. ‘무슨 일이 있어도 신학을 해야지.’라는 생각에 갇혀 있었다면, 나는 지금의 삶을 살지 못했겠지. 나는 현재에 만족하고 있다. 회사생활이 즐겁진 않아도 적당하며, 취미생활을 가질 여유도 생겼다. 잘 해야겠다는 욕심을 내려놓으니, 일이 제법 풀리고 있다. ‘실전을 연습처럼’이라는 말이 있다. 괜히 긴장해서 힘이 들어갔다간, 실수해서 일을 그르치고 만다. 내가 할 수 있는 선택은 단 한 가지. 그저 오늘을 살 뿐이다. 스스로를 너무 규정하지도 옭아매지도 말자. 오늘을 열심히 사는 것만으로 내 삶은 분명 나아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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