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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Uno Dec 20. 2020

시는 시시하다고 생각했었다

고등학교 때까지는 시를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예의 없는 문학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뜻이 함축되어 있고 해석에 따라 결과가 달라진다니, 이렇게 무례한 문학이 또 있을까. 또 어렸을 때는 시는 반드시 짧아야 한다는 편견이 있었다. 그 짧은 분량으로 자신이 하고 싶은 말을 하고, 해석을 모두 독자에게 떠넘긴다. 어린 내게는 용납될 수 없는 문학이었다. 때문에 스스로도 소설을 주로 읽고 썼다. 그러나 지금은 종종 시를 읽고, 영감이 떠오를 때는 쓰기도 한다. 시의 맛을 알게 된 건, 순전히 자존심 때문이었다.

고등학생 때는 작가가 되고 싶었지만, 당시 우리 학교는 인문계 중에서도 공부를 꽤 하는 학교였다. 글을 쓴다고 야간자율학습을 빼주는 학교가 아니었다. 그런데 2학년이 되니 문학 동아리에 가입할 수 있었다. 나는 합법적으로 소설을 쓸 수 있다는 사실에 들떴다. 그러나 담당 선생님은 해당 동아리는 소설을 취급하지 않는다고 했다. 이름은 문학 동아리였지만, 사실상 시를 쓰고 서평하는 동아리였다. 

소설을 쓸 수 없다니. 나는 그 말만 듣고 동아리에 가입하지 않으려고 했다. 그런데 선생님이 내 자존심을 자극했다. 매주 일주일에 한 편씩 시를 써야 하며, 서평도 빠지면 안 된다고 했다. 학기 말에는 시집을 낼 예정이니 성실하게 활동해야 한다고도 강조했다. 마치 제대로 활동하지 않을 것이라면 가입하지 말라는 말처럼 들렸다. 그 말이 이상하게 기분이 상했다. 프로 작가를 목표로 하던 나다. 매일 소설을 쓰고 서평을 하던 나다. 고작 고등학교 동아리 활동을 따라가지 못할 리가 없었다.

그렇게 반강제적으로 시를 쓰기 시작했다. 억지로 쓰려니 재미있게 써지지 않았다. 그때까지만 해도 시의 형식에 굉장히 민감했었다. 반드시 짧아야 하며, 무조건 운율을 지켜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도 그럴 것이 학교에서 그렇게 가르치지 않는가. 운율, 함축 등 나는 학교에서 시를 배웠다. 그런데 그런 것들을 다 지키려니 쓰기가 너무 어려웠다. 그냥 내 마음대로 쓰기 시작했다. 운율도 함축도 버린 채 느낌이 가는대로 썼다. 짧은 분량으로는 내 얘기를 다 담을 수 없기에, 내가 쓴 시는 대부분 길다. 산문시라는 장르가 있다는 사실은 제법 나중에 알았다.

나는 그렇게 시의 매력에 빠졌다. 친구들의 시를 쓰고 서평하는 재미를 깨달았으며, 친구들의 평가를 받는 게 즐거웠다. 칭찬은 당연히 기분 좋으며, 비판도 기분 좋게 받아 들였다. 추후 시집에 좋은 시를 실기 위해서는 당연히 해야 하는 활동이었다. 그렇게 한 학기 동안 시를 썼으며, 친구들의 모든 시가 모여 한 편의 시집이 나왔다. 내 글이 책으로 인쇄된 건 처음이었기에 굉장히 감회가 새로웠다. 그 후로 시는 내 인생에서 빼놓을 수 없는 존재가 되었다.

인연이란 참 희한하다. 고등학교 1학년 때까지, 나는 절대 시를 쓰지 않을 줄 알았다. 이렇게 예의없는 문학이 뭐가 좋다는지 몰랐다. 내가 담당 선생님의 도발에 넘어가지만 않았더라도, 어쩌면 평생 시의 매력을 모르고 살았을지도 모른다. 지금은 그 선생님께 굉장히 감사드리고 있다. 요즘은 오히려 긴 글을 쓸 시간이 나지 않을 때는, 시를 쓰곤 한다. 물론 분량이 작다고 대충 쓴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시를 직접 써 보고 나니, 그 짧은 내용에 모든 이야기를 담아야 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걸 알고 나니 굉장히 매력적인 문학이었다.

고등학교 2학년 때의 짧은 한 순간이 나와 시를 만나게 했다. 만일 내가 ‘절대 시를 쓰지 않을 거야’라는 태도를 버리지 않았다면, 내 문학 활동의 범위는 굉장히 좁았을 테다. 영감도 굉장히 제한적으로 얻었을 테다. 그러나 고집을 버리자 새로운 세상이 펼쳐졌다. 계기가 어떻든 자신의 생각을 내려놓으니, 시의 진정한 매력을 알게 되었다. 우리는 종종 자신의 인생이 풀리지 않는다고 원망한다. 하지만 인생은 엄연히 나의 선택이다. 지금의 결과에 불만이 있다면, 나의 선택에 문제가 있었을지도 모른다. 어쩌면 지금 필요한 건 고집이 아니라 유연함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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