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로드 모네는 무엇을 그리려고 했을까
한 때 로모카메라가 유행이었던 적이 있다. 당시 디지털카메라가 대세였음에도 로모카메라를 이용하는 마니아층이 적지 않았다. 로모카메라는 여전히 필름을 사용하는 데다가, 노출강도를 수동으로 조절해야 해야 하는 불편함이 있었지만 오히려 이런 점이 더 매력적이었다.
디지털카메라처럼 수차례 촬영 버튼을 눌러 마음에 안 드는 사진을 마음대로 삭제해 나갈 수도 없다. 로모 카메라는 찍은 필름을 현상을 하여야 비로소 어떻게 사물이 찍혔는지 알 수 있다. 나는 생일날 촛불이 밝혀진 케이크와 그 주변을 둘러싼 가족들의 모습을 로모 카메라에 담았다. 나중에 필름을 현상해보았더니, 케이크 위의 촛불이 엿가락처럼 길게 늘어져 광선처럼 보였다. 노출이 많이 된 거라고 했다. 망쳐버린 사진 같았지만, 난 오히려 촛불이 그 모양을 바꾸며 춤추는 것처럼 생명력 있게 느껴졌다.
'순간'이란 단어는 가슴을 헛헛하게 만든다. 예컨대, 싱그러운 봄을 알리며 바람에 휘날리는 벚꽃은 아름답다. 이내 벚꽃은 추락하고, 길을 지나는 사람들은 그 위를 짓이기며 밟고 지나간다. 또 파스텔 색의 바다에 태양 빛이 내리면 파도가 눈부시게 부서지고, 일렁이는 미파는 물비늘을 만들어낸다. 하지만 바다 위로 먹구름이 지나가며 해를 가리면 언제 그랬냐는 듯 바다는 짙은 쪽빛으로 금세 바뀐다.
영원한 것은 없었다. 세상의 모든 것은 조금씩 변하며 소멸했다. 그것도 모자라 남아있는 기억조차도 희미해졌다. 지금 이 순간의 기억을 영원히 간직할 수는 없을까?
이른 아침 바다의 풍경을 담았다. 태양이 먼바다에서 조금씩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이제 곧 서서히 어둠은 물러나게 될 것이며, 희미한 해는 높이 솟아오르며 뜨겁게 빛날 것이다. '인상, 해돋이'이라는 제목이 붙여진 이 그림은 클로드 모네가 르아브르 항구의 모습을 그린 것이다. 클로드 모네는 이른 아침에 항구로 나와 솟아나는 해의 모습을 그리면서 어떤 생각을 했을까? 사라지는 것에 대한 아쉬움과 미련이 있진 않았을까? 모네가 바라보는 이 장면을 캔버스에 담고 생명력을 불어넣기 위해서는 빛에 의해 변화하는 사물을 자세히 관찰해야 했다.
이 그림은 ‘우산을 쓴 여인’이라는 작품이다. 여기에 등장하는 여성과 꼬마 아이는 모네가 젊은 시절 모든 것을 포기할 정도로 사랑했던 아내 카미유 동시외와 아들 장이다. 이 그림을 계속 바라보면 행복했던 어느 날을 추억하는 영화의 한 장면처럼 생동감 있게 다가온다. 그날의 햇볕과 바람마저 느껴진다. 산들산들한 바람에 그녀의 머리카락이 날리고,드레스가 나풀거린다. 양산 사이로 보이는 그녀의 사랑스러운 눈빛이 남편을 향한다. 이 여인은 4년 뒤 둘째를 출산하면서 사망한다.
모네는 잊혀가는 것들에 대한 아쉬움이 늘 있었던 것 같다. 사물을 유심히 관찰하다 보면 지금까지 살면서 보지 못했던 것을 발견하기도 한다. 그의 말년에는 지베르니에 있는 자택 정원에서 이십여 년 동안 수련을 무수히 그렸지만, 매 순간 수련은 다른 빛깔과 모양을 하고 있었다. 그 변화를 놓치기 싫었던 모네의 마음이 느껴진다. 백내장이 걸려 시력까지 상실하면서 그가 붓을 놓지 않은 것은 지금 이 순간에 대한 강한 애정이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