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려웠던 첫 직장에서의 퇴사
퇴사를 결심하고 실행에 옮기는 과정에서 겪게 되는 심리에 대하여 궁금하신 분이 많은 것 같다. 만약 첫 직장이라면 퇴사는 엄청난 용기가 필요하다. 나도 그랬다. 우여곡절 끝에 첫 직장을 퇴사한 사람으로서 내가 겪은 심리에 관하여 이제부터 이야기해 보고자 한다.
회사를 그만두고 싶다는 생각이 들 때, 두려움과 처음 마주하게 된다. 일을 하다가 화나도 바로 사표를 제출하지 못하는 것은 바로 이 두려움 때문일 거다. 알파고가 이세돌 9단과 바둑을 둘 때 자신이 연산할 수 있는 모든 경우의 수를 총동원했듯이, 나 역시 머릿속으로 퇴사 후에 일어날 수 있는 여러 시나리오를 한 번에 상상했다. 머리 나쁜 내가 알파고처럼 정확한 계산을 해낼 일은 만무했고, 이내 머리가 복잡해지면서 아파 오기 시작했다. 온몸에서 기운이 빠져나가는 것 같았다. 에라 모르겠다. 그러곤 방바닥에 쓰러지듯 엎드려 누웠다.
바닥에 누운 채로 한참을 있다가, 얼마 전 회사 선배의 말을 떠올렸다. 회사는 전쟁터지만 회사 밖은 지옥이라며, 회사를 나간다면 머지않아 후회하게 될 것이라고 했다. 퇴사를 향한 내 의지를 꺾는 말이기에 고개를 좌우로 흔들며 애써 털어내려고 노력했다.
"어차피 그 선배도 직접 겪은 일이 아니잖아. 먼저 퇴사한 어느 누군가의 구슬픈 실패담이 사람들의 입을 타고 지금 나한테 전해온 것일 뿐이야.”
내 머릿속은 어느새 전쟁터가 되어가고 있었다. 퇴사를 꿈꾸는 게릴라들과 그것은 잘못된 선택이라는 비장한 신념을 가진 방위군이 멘털의 성(城)을 지키기 위해 서로 팽팽히 맞서고 있었다. 내 생각도 이리로 갔다 저리로 갔다를 반복했다. 아직 퇴사에 대한 의지가 약한 탓이었다. 퇴사 의지를 강하고 견고하게 만들어줄 든든한 지지 세력이 필요했다. 외부세력의 도움을 받아 협공을 해야 멘털의 성을 함락시킬 수 있을 것이다. 작가가 이야기 소재를 찾아 헤매듯 퇴사자의 생생한 이야기를 듣기 위해 블로그를 방문하고, 퇴사와 관련된 책도 사서 보기도 했다. 조언 대부분은 신중한 판단을 전제하며, 충분한 준비가 되었을 때 떠나라는 것이었다. 이 조언에 따르면 나는 아직 퇴사를 하면 안 되는 사람이었다. 직장과 집을 오가며 아등바등 살다 보니 준비된 것이 없었고 , 준비할 자신도 없었다. 어쩌란 말인가! 더 갈피를 못 잡을 것 같았다. '이젠 스스로 판단을 해야 한다. 정신 차려!' 마음속으로 외쳤다. 그러기 위해서는 지금 내 안에 두려움이 뭔지, 그 실체를 먼저 확인해야만 했다. 나를 괴롭히는 두려움을 정면으로 똑똑히 바라봐야 했다.
'어쩌면 내가 바라보는 두려움이 허상일지도 몰라. 플라톤이 비유한 동굴 속 죄수처럼, 나는 족쇄에 묶인 채 눈 앞에서 실체가 아닌 그림자를 보며 두려움에 떨고 있는 것일지도 몰라'
내 안의 두려움은 가만있지 않고 반격하며 이렇게 속삭였다.
'회사를 나간다면 나는 재취업도 힘들고 살아가는 것이 더욱 힘들어질 거야. 그러니 회사 안에서 힘이 닿는 데까지 버티고 버텨야 해. 난 홀로 설 수 있는 능력이 없어. 회사에서 나간다면 난 더 이상 아무것도 아니야.'
두려움의 목소리를 통해 그 실체를 분명히 알 수 있었다. 내 안의 두려움은 바로 낮은 자존감이었다.
나는 그랬다. 내 안의 부족한 부분을 직장을 통해 채우려고 했다. 열심히 공부했던 것도, 좋은 직장에 들어가려고 아등바등했던 것도 모두 다 초라한 나를 능력 있고 그럴듯한 사람으로 꾸미기 위해서였다. 그렇게 일자리를 얻고, 양복을 입으니 마치 사회의 중요한 구성원이 된 것처럼 멋져 보이기까지 했다. 그렇게 나의 부족함을 채워주는 첫 직장은 내 몸의 일부가 되었고, 점점 자라나 내 안에 깊숙이 뿌리를 내렸다. 부족한 자존감을 채워주는 듯했지만, 직장이 사라진다면 나는 다시 자존감이 부족한 사람으로 회귀하여야 한다.
난 어쩌다 이렇게 자존감 낮은 사람이 되어 버린 거니? 낮은 자존감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이미 거대하게 자라 버린 직장의 뿌리를 잘라내야 했다. 그리고 내 안에 이야기를 좀 더 귀 기울여야 했다.
이 과정에서 나는 직장의 의미를 다시 정의 내렸다. 직장을 아무리 미화하여도 돈을 벌기 위한 공간일 뿐이다. 내 노동에 대한 보상을 받으며 참고 일하는 장소일 뿐이다. 따라서 직장이란 수단이 될 뿐, 목적은 결코 될 수도 없고 되어서도 안된다.
그리곤 마음의 이야기를 듣기 위해 , 나 자신에게 몇 가지 질문을 던졌다. 질문 후에야 알게 되었지만, 행복하지 않다면 다른 질문은 무의미하다는 것을.
㉠ 나는 지금 이 일이 재밌는가? → 재미없다
㉡ 10년 뒤에도 똑같은 일을 할 것 같은가? →그렇다
㉢ 10년 뒤 내 모습은 멋있어 보이는가? → 아니다
㉣ 하고 싶은 일이 있는가? → 그렇다
㉤ 계획을 세웠는가? → 아니다
㉥잘할 수 있을 것 같은가? → 아니다
㉧ 나는 지금 행복한 가? -> 아니다
왜 굳이 행복하지 않은 일을 끝까지 붙잡으려고 그토록 안간힘을 쓸까. 퇴사의 명분은 나의 행복으로 충분했다. 행복하지 않다면 참을 이유가 없다. 사람은 행복해야 권리가 있으니까 말이다. 그렇게 나는 퇴사를 결심하게 되었다.
아직도 여전히 퇴사를 하느냐 마느냐의 기로에 선 채 많은 사람들이 고민한다. 우리가 살아가는 사회는 우리에게 열심히 살았는데, 더 열심히 살라고 한다. 힘들어 죽겠는데, 좀 더 힘내라고 한다. 내가 지금까지 어려움을 감당했던 것처럼 너도 마땅히 그것을 이겨내야 한다고 한다. 그냥 '고생 많았겠구나' 그 한마디면 되는데 말이다. 서로가 처한 상황이 다르고 정답도 없다. 직장 따위에 스트레스받지 말자. 일은 그냥 일일 뿐,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일이 싫으면 출근만 열심히 한채 그냥 월급 루팡으로 살아도 된다. 하다 하다 너무 힘들다 싶으면 그만두면 된다. 그렇게 한다고 누구도 욕하지 못한다. 우리에겐 행복할 권리가 있고, 일은 다시 구하면 되니까.
참고로, 퇴사를 해도 큰일이 일어나지 않는다. 회사 밖의 현실은 천국도 지옥도 아닌, 그냥 사람 사는 세상일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