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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콩장수 Apr 02. 2020

누군가 조언을 요청한다면,

사실 위로받고 싶은 거랍니다.


사회에서 알게 된 동생 찰스는 고민이 있을 때면 내게 연락을 하곤 했다.  같은 백수 입장이라 마음이 편해서인지, 굳이 안 해도 되는 속 이야기까지 속속들이 했다. 찰스는 일주일 중 이틀을 마트에서 일한다. 주로 카트 정리나 매장 입구에서 안내를 서는 일이다.  실장이 일하러 오라고 미리 연락을 주면 그제야 일하러 나가곤 했는데, 두 주째 아직 연락이 없다는 것이다. 자신이 잘린 것 같다며 불안해했다. 그렇게 지난주는 일없이 한 주를 보냈다고 했다. 그러더니 음악을 전공했던 찰스는 마트 일을 때려치우고 자기가 좋아하는 작곡을 업(業)으로 삼겠다고 했다.


찰스의 작곡 실력을 알고 있는 나로서는 현실적인 조언과 위로 사이에서 갈등을 했다.  어릴 적 내 모습을 떠올려본다. 현실감각이 없는 데다 부정적으로 세상을 바라보았던 내게 누군가 조언을 해줄 때면 괜히 삐딱하게 쳐다보았던 기억이 난다. 이런 나에 비하면  찰스는 착한 동생이라 내가 어떤 조언을 한다고 해도 삐딱하게 바라볼 그가 아니었다. 하지만 조언은 가끔씩 상처가 되기도 한다는 사실을 떠올렸다. 게다가 내 조언이 반드시 옳다고도 할 수 없으니 찰스 스스로 답을 얻어갔으면 했다. 결국 나는 현실적인 조언을 하는 것을 포기했다.  찰스가 직접 경험하며 깨달아가길 바랬고, 그 깨달음의 과정을 통해 찰스가 더 성숙해지리라는 믿음도 있었다. 결국 나는 응원을 하며 지켜보는 게 최선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그러고 보니 자존감이 무너져 내리는 그 기분, 너무나 잘 알 것 같았다. 오랫동안 묻어두었던 기억을 떠올려본다.




나는 스무 살 때 B치킨 프랜차이즈 가맹점에서 아르바이트를 했다. 태어나 처음 해보는 아르바이트였고, 스스로 돈을 벌 수 있다는 생각에 나 스스로가 대견하고 뿌듯하게 느껴졌다. 주로 치킨 주문이 들어오면 숙성된 생닭을 조각내고, 튀김옷을 입히고, 기름통에 빠뜨려 약 11분 동안 기다렸다가 종이상자에 포장을 하는 일이었다.


어느 정도 일이 익숙해질 무렵, 그날은 유난히 주문이 많이 들어왔다. 주인아저씨와 배달 아르바이트생은 연거푸 오토바이를 타고 배달을 나갔다. 매장 안에는 나 밖에 없었고, 그때 따르릉 전화벨이 울렸다. 주로 닭을 튀기기만 해서 전화응대를 해 볼 기회가 없었던 나는 떨리는 가슴을 부여잡고 수화기를 들었다.


 "감사합니다. B 치킨입니다~"


어색하게 멘트를 날리고, 주문을 받기 시작했다. 수화기 음질은 고르지 못했다. 더군다나 고객이 주소를 너무 빨리 말해서 알아들을 수 없었다. 고향을 떠나 타지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는 지라 지명이 익숙하지 못한 탓도 있었다. 다시 불러달라고 말하고서도 또다시 알아듣지 못했다. 한번 더 물어보면 짜증 낼 것 같아서 "알겠다"하고 전화를 끊었다.


사고를 쳤다. 발음 나는 대로 적었더니, 이런 주소는 존재하지 않았다. 결국 배달은 제대로 이루어지지 못했고, 사장님은 고객에게 연신 죄송하다고 했다.


"저희 아르바이트 생이 일을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죄송합니다."


잘렸다. 잘리면서 미안했고, 나 자신이 미웠다.




"귀하의 뛰어난 역량에도 불구하고... "
[칭찬같이 들리지만 나를 농락하며 자존감에 스크래치를 내는 기분 나쁜 첫 문장]


대학 졸업을 앞두고 마지막 학기가 되면 구직 활동을 할 때였다. 당시 D포털의 유명한 취업정보 카페에 들락날락 거리며 채용 공고를 자주 확인했다. 어느 회사에 들어가야겠다는 목표보다는 일단 취업하고 보자라는 식으로 어림잡아 100곳 이상은 지원을 했다.


연달아 날아든 서류전형 불합격 통지에 시무룩해졌다. 그러다가 운 좋게 서류전형 합격이라는 소식이 전해질 때면 금세 기분이 좋아져 방방 뛰었다. 면접 날짜가 잡히자 지원한 회사 정보를 수집하고 예상 질문을 뽑았다. 당시 나는 사람들 앞에 서면 심한 울렁증이 생겨 고민이었다. 자기소개만이라도 당황하지 않고 제대로 말할 수 있도록 수차례 연습했다.


면접 당일이 되었다. 전날 다린 와이셔츠 입고, 넥타이를 가까스로 맸다. 머리에 젤을 바르고 , 질이 덜든 딱딱한 구두를 신고 지하철로 이동했다. 빠른 걸음으로 바쁘게 출근하는 사람들이 참 멋있어 보였다. 나도 이들처럼 폼나게 출근하는 샐러리맨이 될 수 있겠구나 했다. 드디어 면접을 볼 회사에 도착했다. 예상 시간보다 빨리 도착했다. 회사 안에서 기다리면 긴장할 것 같아 바로 들어가지 않고 주변을 서성거리며 입 주변 근육을 풀면서 자기소개 멘트를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이내 숨을 크게 들이마시고 회사 입구로 당당한 척 걸어 들어갔다. 그곳에서는 나보다 일찍 도착한 지원자들이 정자세로 초조하게 앉아있었다. 서로 인사도 없이 자리를 지켰고 침묵만이 흘렀다. 회사 관계자가 호명을 하고 기본적인 면접 예절과 착석 방법에 대해서 알려주었다.


“다음 조 들어가세요”


줄지어 면접실로 들어갔다. 심각한 표정으로 앉아있는 면접관들이 우리 얼굴을 한번 훑더니 자기소개를 하라고 한다. 나는 외워왔던 자기소개 멘트를 읊었다. 평소보다 목소리를 크게 낸 데다 강약 조절에 실패해서 군대 이등병의 신고식처럼 어색했고, 심지어 외워온 멘트도 제대로 못하고 버벅대며 꼬이기 시작했다. 머리가 하얘졌고, 붉어진 얼굴에 어색한 미소를 띤 채 나의 면접은 끝이 났다. 망했구나 생각했다.


역시나 떨어졌다. 인력 시장에서 나를 팔기 위해 이토록 애를 쓰는 내가 안쓰러웠고, 내가 그다지 쓸모없는 인간이라는 것을 재확인하니 한없이 작아졌다. 이런 경험을 몇 차례 거듭했고, 내 자존감은 점점 바닥을 향해 갔다. 그냥 내가 쓸모없고 형편없는 사람처럼 느껴졌다. 불합격 통보를 받고 힘이 빠져 누웠던 그 날은 떠올리기 싫은 기억 중의 하나이다.




자존감이 바닥을 기었던 기억은 직장을 얻고 나서 점차 희미해졌다.  개구리 올챙이 적  생각 못 한다고,  나는 원래부터 당당했다고 착각했다. 어쩌면 잊어버리기보다는 그날의 고통스러운 기억을 애써 외면했는지도 모른다. 세월이 흘러 그 날의 기억은 잊혔고, 상처도 어느 정도 아물어졌지만 흉터는 여전히 남아있었다.   찰스에겐 마치 내가 뭐라도 된 마냥 현실적인 조언을 하려고 했던 내가 부끄러웠다. 사실 찰스와 나는 비슷한 유리 멘털을 가진 똑같은 입장이었다.


찰스는 애써 태연한 척했지만 자존감은 이미 다칠 대로 다쳐있었다. 어쩌면 찰스는 이미 알고 있을지도 모른다. 자신의 생각이 터무니없고 공허하단 것을 알면서도, 그렇게라도 해야 한없이 무너져 내리는 자존감을 지킬 수 있을 거라고.  찰스는 그저 위로를 받고 싶었을 텐데 말이다.  그냥 이 말 한마디 들으려고.


"힘내라. 잘할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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