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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winter flush Dec 23. 2023

임윤찬의 크레센도

반 클라이번, 그리고 라흐마니노프


지난 6월 '반 클라이번 국제 피아노 콩쿠르' 소식은 그해 여름 내내 나를 감동시키고 흥분하게 만들었다.

18세 청년의 기량이라고는 믿기 힘들 정도의 실력과 내공이 깊은 울림을 주었기 때문이다.

반 클라이번은 1958년 구소련에서 열린 제1회 차이콥스키 국제 콩쿠르의 우승자이며, 그의 이름을 딴 콩쿠르가 1962년 미국에서 시작되었다. 냉전의 한복판이었던 시기였음을 감안할 때 미국인이었던 그가 구소련에서 압도적인 찬사를 받으며 우승을 한 것은 세계적인 이슈가 된 하나의 사건이었다. 이 일은 미국을 음악 강국으로 만드는데 일조하기도 했는데 반 클라이번이 연주했던 라흐마니노프 피아노 협주곡 3번은 당시 유명한 피아니스트조차 결코 쉽게 소화해 낼 수 있는 곡이 아니었다. 연주하기 까다롭기로 유명한 곡이었음에도 그의 해석은 탁월했고, 테크닉 역시 훌륭했다. 그의 이름을 딴 콩쿠르가 탄생할 만큼 명성을 얻게 한 곡이기도 하다. 이번 콩쿠르에서도 결선 곡으로 이 작품을 선택한 피아니스트가 세 명이었는데, 그중 독보적으로 훌륭한 연주를 해 준 임윤찬의 연주에 세계가 주목했고, 오케스트라 단원들과 지휘자 역시 놀라게 만들었다.  51개국 388명의 연주자가 지원을 해 그중 30명 만이 예심에 올랐다.(이 중 4명이 한국인이라는 사실 또한 놀라운 일이다). 예심에서부터 준준결선과 준결선, 그리고 결선의 마지막 과정을 거치는 고된 연주 일정을 무리 없이 통과한 임윤찬. 사실 4년마다 열리는 이 콩쿠르가 코로나로 한 해 뒤로 미뤄졌기에 임윤찬 군은 콩쿠르에 참가할 수 있었다. 한 해 전만 하더라도 신청할 수 없는 나이였기에 하마터면 콩쿠르 자체에 나가지 못할 뻔했다는 것이다. 그는 힘들고 긴 과정을 나이답지 않은 차분함과 흔들림 없는 모습으로 임해 더욱 관심을 모으게 만들었는데, 특히 준결선에서 연주한 리스트의 초절 기교 연습곡 전곡(약 65분)은 나를 완전히 사로잡았다! 지난여름 내내 이 연주 영상을 보고 또 보고..' 저 사람은 청중도 심사위원도 의식하지 않은 채 피아노와 하나가 되어 몰입하고 있구나.' 리스트의 영혼 속으로 들어가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 만큼 빛나게 아름다운 연주였다. 예심에 오른 서른 명의 연주자는 전부 세계 최정상급의 피아니스트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연주는 달랐다. 귀로 들리는 것이 아니라 바로 심장으로 연결된 것처럼 가슴으로 온몸으로 선율과 리듬이 내  안으로 스며들어 왔다. 1시간 정도의 시간을 꼼짝없이 붙들리게 했던 그의 연주. 그 연주를 반복해서 몇 번을 들었는지 모른다. 그리고 이어진 감동은 결선 작품 라흐마니노프의 피아노 협주곡 3번으로 이어졌다. 마린 알솝의 지휘로 협연한 그의 연주는 오케스트라와 하나가 되어 더한 감동을 주었는데 제단에 제물을 바치듯 자신의 전부를 음 하나하나에 실어 혼신의 힘을 다해 곡을 완성시키는 모습은 눈물이 나게 만들었다. 그 눈물은 진실한 그의 태도 때문이었던 것 같다. 음악을 대하는 그의 진심과 순수하고 맑은 영혼이 느껴졌기에 말이다. 곡의 해석과 테크닉과 사람됨이 모두 갖추어진 연주자를 만나는 건 흔치 않은 일이다. 매우 귀한 연주자를 만났다! 그의 선율이 내게 그걸 말해 주었다. 그의 연주를 보고 들으며 마음이 정화되는 느낌마저 들었는데 이런 기회가 어디 쉬운 일일까..


영화<크레센도>포스터


이날의 감동이 다큐멘터리 영화로 나온다 해서 극장을 찾았다. 임윤찬 만의 이야기는 아니어서 조금 아쉬움이 남긴 했지만 전반적인 콩쿠르 진행과 그때의 현장 분위기를 알 수 있어서 좋기도 했다. 그날의 감동을 스크린을 통해 보고 듣는 즐거움도 꽤 컸는데 결선 곡의 연주가 끝나고 오케스트라 단원들이 윤찬 군을 향해 건넨 인사말들 속에서 그의 연주가 함께 호흡했던 연주자들의 마음을 크게 감동시켰음을 알 수 있었다. 음악이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다고 생각하는 열여덟 청년이 그 아름다움을 자신이 잘 재현해 내는 것 또한 사명이라는 이야기를 할 때는 그의 진지함과 진실함을 엿볼 수 있었다. 하늘에 있는 음악가들을 위해 연주한다는 그. 그 마음이 선율과 리듬에 실려 향기처럼 피어올라 그곳까지 닿을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 사람의 마음이 가진 진실한 태도가 세계 클래식 음악팬들을 사로잡았다.

단테의 신곡을 여러 출판사의 번역본을 구해 모두 읽어서 유일하게 전체를 외우다시피한 책이라는 그의 인터뷰 내용을 듣고, 난 지난여름 단테의 신곡을 꺼내 읽기도 하였다. 그의 스승인 손민수 피아니스트의 영상을 찾아보고, 스승의 스승인 러셀 셔먼까지 찾아 검색하는 나의 열정은 지난여름의 더위마저 잊게 만들었고, 오래 잊고 지냈던 애증의 악기인 피아노를 향한 그리움의 불씨마저 안겨 주었다. 너무 오래 잊고 지내서 내 어린 시절 삶의 반을 차지했었다는 사실마저 가물 했었는데 말이다.  지난여름의 감동은 이번 겨울 스크린에서 부활해 다시 내 심장을 뜨겁게 만든다.


임윤찬 군의 리스트 초절기교 전곡을 다시 꺼내 들어야겠다.

그 생각만으로도 행복한 겨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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