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로 떠난 정약전은 강진의 동생과는 달리 세상을 위한 자신의 뜻이 담긴 글을 남기지 않았다.
자신이 그 뜻을 펼치면 남은 가족마저도 위태로웠기 때문이다.
그는 임금과 백성이 하나가 되는 세상을 꿈꿨다.
신분이 필요치 않은 세상. 백성이 부당함을 당하지 않고 편하게 사는 세상.
유배지까지 먼 길을 오면서 그의 마음에 든 상념은 넘실대는 파도처럼 찰랑댔을 것이다.
남은 가족에 대한 염려, 죽은 형과 동료들에 대한 애상.
앞으로 살게 될 섬에 대한 두려움 등..
그런 그가 흑산에서 창대라는 명민한 청년을 만나게 되면서 수족水族에 대해 연구하고 해양 생물 백과사전에 해당하는 책을 남기게 된다. 이것이 '자산어보'다.
책명을 ‘자산어보’라고 명명한 데 대하여 정약전은 자서의 서두에서 말하기를, ‘자(玆)’는 흑이라는 뜻도 지니고 있으므로 자산은 곧 흑산과 같은 말이나, 흑산이라는 이름은 음침하고 어두워 두려운 데다가 가족에게 편지를 보낼 때마다 흑산 대신에 자산이라고 일컬었기 때문에 자산이라는 말을 제명에 사용하게 되었다고 해명하고 있다. 한국민족문화 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순후한 그의 성품이 느껴진다.
영화에서는 창대라는 청년에 집중하면서 이야기에 살을 붙였다.
창대가 잡아오는 어류들은 그에게 끊임없는 호기심을 불러일으켰다.
면밀히 관찰하고 기록하여 그는 먼 미래의 후손들에게 실질적인 도움을 주고자 했을 것이다.
자산어보는 정약전의 갑작스런 죽음으로 유실될뻔했는데, 그간 편지로 형이 쓴 글에 대해 응원을 마다않던 동생 정약용이 제자 이청을 흑산으로 보내어 글을 가져오게 하였으니, 이 어류사전 '자산어보'는 정약전과 정창대, 그리고 이청의 노력과 동생의 애정으로 현재까지 보전되었다고 할 수 있겠다.
정약전은 경직된 성리학 사회에서 실학자로서 백성들에게 실질적인 도움이 되고 삶에 보탬이 되고자 했다. 서학(천주학)을 접한 죄로 유배를 오게 됐지만 이미 그의 사상과 지혜는 세상이 품을 수 없는 경지에 이르렀다. 그의 품은 마음과 사람을 대하는 태도에서 애민 정신이 느껴졌다.
영화를 보고 나니 이번엔 흑산도에 가보고 싶다. 홍어를 좋아하는 건 아니지만 흑산에 가면 홍어도 한 접시 먹어보고, 정약전 선생의 자취도 느껴보고, 그가 만든 서당인 복성재도 둘러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