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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winter flush Apr 29. 2023

이미 일어난 기적

진짜 일어날지도 몰라 기적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영화는 빼놓지 않고 봤다고 생각했는데 놓친 영화가 있었다.

일곱 명의 천사 같은 아이들의 마음이 푸르게 투영되어 빛이 되어 반짝이던 영화.

아이들 마음이 하나같이 기적이다. 


부모의 이혼으로 동생 류와 형 코이치는 따로 떨어져 산다.

류는 인디음악을 하는 아빠와 북쪽의 후쿠오카에서, 코이치는 남쪽의 가고시마 외가댁에서 엄마와 산다.

떨어진 거리만큼 멀게 느껴지는 코이치의 마음은 하루하루 쌓여가는 사쿠라지마 화산재처럼 그늘져 있다.

네 식구가 함께 모여 사는 날이 올 수 있을까?

하루라도 빨리 화산재로 얼룩진 도시 가고시마에서 탈출하려면, 네 식구가 하나로 이어져 모여 살 수 있으려면 화산이 터져버리는 일밖엔 없을 거라는 코이치의 생각이 쓰리다. 화산이 터질 정도는 돼야 가능한 일이라면 일상에선 꿈도 꿀 수 없는 불가능한 일일 테니까. 


양 방향의 고속열차가 마주치는 순간 기적이 일어난다고 믿는 아이들. 

그 순간, 그 장소에서 벌어질 기적을 위해 아이들은 돈을 모으고, 치밀한 계획을 세우고, 조퇴까지 감행해 결국 열차의 교차지역인 구마모토로 향한다.

우여곡절 끝에 기적이 일어날 장소를 찾아내고, 열차가 교차되는 순간 목이 터져라 자신의 소원을 쏟아내는 아이들. 죽은 강아지 마블이 살아나게 해 달라는 아이, 그림을 더 잘 그리고 싶은 아이, 배우가 되게 해 달라는 아이, 빨리 달리고 싶은 아이, 아빠가 하는 일이 다 잘되게 해 달라는 아이들의 마음이 폭죽처럼 터져 나올 땐 보는 내 마음도 간절해지더라. 그러나 정작 그곳에 갈 계획을 세우고 누구보다 간절히 기적을 바랐던 코이치는 그 순간 아무 말도 하지 못한다. 화산이 폭발하면 누군가의 희생이 따를 거라는 생각은 양심의 문을 외면하지 못했다.  여러 가지 생각이 겹겹이 휘감기는 그 짧은 순간의 코이치 표정에서 기적을 만난다. 


아이들만 빛난 건 아니다. 가루칸떡 장인이었던 외할아버지의 숨은 마음이 내 마음을 파고들었다. 집으로 되돌아온 딸과 손주를 위해 뭐라도 다시 해봐야겠다는 마음에 불이 지펴지고, 떠난 딸 대신 닮은 손녀 같은 아이와 친구들을 재워준 노부부의 동그란 마음은 아이들을 향한 온기의 손짓이다.  

영화 속 수많은 우연.. 

고레에다 감독의 따스한 시선은 이런 우연에서 반짝인다. 

'우리 인생의 진정한 감독은 우연'이라 말한 파스칼 메르시어의 소설 속 한 문장처럼, 간절히 원하면 그 길에서 만나는 모든 것이 빛이 되어 길을 밝혀주는 우연의 감동이 이 영화의 진짜 '기적'이 아닐는지.


일상, 

매 순간 기적이 일어나지만 누구도 그걸 기적이라 여기지 못할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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