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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winter flush Mar 11. 2020

윤희에게..

비가 오는 날엔 영화를 찾게 됩니다.

오래된 습관 이지요.

이른 아침..

촉촉하게 세상이 젖어드는 이른 창밖의 풍경은 시작이 아닌  하루가 저무는 풍경처럼 느껴집니다.

평소보다 낮고 짙은 하늘..

비에 젖은 도로를 가르는 자동차 소리는 고요함에 아늑함마저 얹어 주네요.

비가 내리는 풍경은 아무리 봐도 질리지가 않습니다.

모든 게 맑게 씻겨 내려가는 풍경을 가만히 바라보다 보면 몇 겹 싸두었던 마음에도 물기가 스며듭니다.

창밖으로 향하던 시선을 거두고 茶를 우립니다.

책을 펼쳐보지만 평소처럼 책이 잘 읽히지가 않네요.

음악도 귀에 성가십니다.

집중이 되지 않는 이유는 '비' 때문입니다.

비가 오는 날에 영화를 보는 이유입니다.

어떤 내용인지 모르는 영화 한 편을 고릅니다.

눈에 덮인 하얀 마을을 윤희의 짙푸른 의상처럼 푸르게 표현한 이 한 장의 사진이 다른 영화를 볼 수 없게 만드네요.

모녀가 떠나는 겨울 여행.

그 여행의 시작은 어떻게 된 걸까요?

지치고 외롭고 힘들어 보이는 그녀의 삶에 '행복'이란 감정은 스며들 곳이 없어 보입니다.

맞지 않는 옷을 입고 어색해 하는 사람처럼 자기 인생을 그렇게 소진해 가는 여인입니다.

그런 그녀의 마음에도 비워둔 방이 하나 있음을 한 통의 편지가 알려줍니다.

쥰..

그녀의 첫사랑.

열지 않고 비워 둔 그 방에 숨긴 사랑입니다.

간직한 사랑은 그 안에서 바래지 않았습니다.

쥰.. 그녀의 강인함과 편안함과 안정감.

윤희는 그 안에서 쉴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제게 사랑은 쉴 수 있는 편안함이죠. 

그래서 쥰이 주는 그런 편안함이 윤희의 사랑으로 느껴지네요.

멋진 두 여인의 깊은 마음이,

그녀들의 마음에 품은 오래 간직한 그 사랑이 아름다웠습니다.

많이 아픈 사랑이지만

서로에게 상처가 될까 마주치지 못하는 마음

그리고 부치지 못한 편지..

꿈에서 볼 수밖에 없는 그 사랑이 빛이 나네요.

그 빛은 서로를 존중하는 마음 때문이겠죠.

아무것도 원하지 않는 마음.

쉽지 않은 마음입니다.

둘의 만남은 윤희의 삶을 바꿔놓습니다.

사랑의 힘입니다.

이제야 맞는 옷을 찾아 입은 사람처럼 자기 삶에 당당해지려 하네요.

나를 옭아맸던 부모, 형제로부터 떠납니다.

딸과 함께 새로운 시간을 살아내려고 힘을 냅니다.

자신의 꿈도 생기지요.

이력서를 쓰는 엄마의 모습을 흐뭇하게 바라보는 딸.

엄마보다 더 엄마 같은 딸입니다. 

엄마를 향한 딸의 마음이 크고 깊네요.

눈 덮인 오타루 마을로의 짧은 여행은 윤희를 살게 만들었습니다.

자기 삶을 살아가게 말이지요.

이 사랑을 사람들은 어떻게 이야기할까요?

사람이 사람을 좋아하는데 어떤 선이 있는 건 아니니까요..


[사진:네이버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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