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 가깝고도 먼..
가족이라는 개념을 정형화시키고 싶지 않은 고집을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영화 몇 편만 보아도 알 수가 있다. 그의 영화에서 '가족'은 평범을 비껴간 소위 일반적이지 않은 형태로 그려지고, 그 틈새 존재하는 마음의 상처와 슬픔을 보듬어 연고를 바르듯 새살이 돋게 만드는 치유의 힘을 보여준다.
[걸어도 걸어도]는 비교적 그의 초기 작품에 속한다.
장남 준페이의 기일에 맞춰 식구들이 하나 둘 부모님 댁에 모이면서 영화가 시작되는데, 분주하게 음식을 만드는 엄마 토시코(키키 키린)의 연기가 영화 전체의 흐름을 아우르듯 단연 눈에 띄었다. 상냥함과 친절한 미소 뒤에 감춰진 현실적이고도 뾰족하게 자리한 내면 풍경. "고르고 고른 게 하필 중고라니" 아들 달린 과부를 둘째 며느리로 맞은 토시코가 딸에게 건네는 말이다. 그러나 토시코는 마음에 차지 않는 며느리가 도착하자 달려 나가 무릎을 꿇고 미소로 인사하며 맞이한다. 산책을 하며 아들에게 넌지시 어떻게 될지 모르니 아이 갖는 건 생각해 보라는 둥, 아들의 잠옷은 챙기면서도 의붓손자에게는 무관심하고, 살갑게 며느리를 대하면서도 넘어오지 못할 선 하나를 또렷이 그으며 거리를 유지한다. 장남 준페이의 희생으로 생명을 건진 요시오의 방문에도 호의와 따뜻한 미소로 반기지만 그 속내는 차갑고 냉정하기 이를 데 없다.
가족이라는 하나의 울타리.
료타(둘째 아들)는 부모님 집을 향해 가면서도 당일로 돌아올 구실을 만드느라 바쁘다. 자신을 탐탁지 않아 하는 아버지와 대면하는 일도, 실직 상태인 자신의 모습을 감추는 일도 모두 내키지 않는 일이다. 뚱뚱하고 변변한 직업도 갖지 못한, 무능해 보이는 요시오(장남 준페이는 이 요시오를 바다에서 구하고 목숨을 잃었다)를 향한 가족들의 시선이 마치 자신을 향한 시선처럼 느끼는 료타의 처지는 부모님댁 낡은 욕실의 깨진 타일 처럼 초라하다.
동네 편의점에서 물건을 사고 비닐봉지 들고 다니는 것조차 자기 체면에 거스르는 일이라 여기며 살아온 아버지 쿄헤이. 가업(동네의원 의사)을 이어나갈 의지가 없는 둘째 아들이 탐탁지 않고, 새며느리도 반기지 않지만 의붓손자에게 의사의 꿈을 심어주는 장면에선 한없이 다정하다.
[블루라이트 요코하마] 음악을 들으며 쏟아내는 토시코의 비밀. 가슴 한편에 그늘로 자리했을 남편의 외도를 식구들 앞에서 자연스레 흘리지만 가족 중 그 이야기를 크게 신경 쓰는 이는 없어 보이고, 모두가 제각각 자신의 무게만큼의 삶을 지고 견디며 하나의 울타리 안에 무신경한 사람들처럼 얽혀있다.
이들이 하나로 동그랗게 모여 마음껏 즐거워한 행복한 순간은 토시코가 만든 옥수수튀김을 먹을 때다. 이끌리듯 고소한 냄새는 무뚝뚝한 아버지마저 방에서 나오게 만들고, 각자 다른 내면의 풍경도 음식 앞에서는 경계가 없어 보인다.
하나로 모였던 가족들이 자신들의 세계로 흩어져 돌아가는 풍경속엔 이미 좀 더 멀어진 원가족과의 거리가 드러나고 다음 설을 기대하는 부모님과 다음 설엔 안와도 되겠지 하는 자식의 마음이 교차되어 씁쓸하더라.
가장 가까우면서도 먼 사람들의 집합이며 내 추억의 원시성을 공유하는 애증의 모체인 원가족.
속내를 드러내기 어려우면서도 가장 내밀한 것까지 공유하고 싶은 슬픈 관계 속에서 우린 끊임없이 사랑을 싹튀우려 부단히 노력하는 존재들인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