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시간 엄마를 돌봐주시는 보호사님은 한 달에 한 번 3일간의 휴가를 쓰시는데, 그 시간에 맞춰 언니와 나는 3일의 휴가를 반씩 나눠 각자 엄마와의 1박 2일을 보내게 되었고, 이젠 루틴으로 자리 잡혀 가고 있다. 단조로운 엄마의 하루지만 그 안에서 생기는 변화가 반가운 요즘이다. 두 달 전 신경과 진료를 볼 당시만 해도 시설(요양원 등)에 들어가셔도 무리가 아닐 시점일 수 있다고 의사가 조심스레 운을 띄었었는데 당시 보호사님께서 "요양원에 들어가면 이제 끝이에요."라는 한마디가 마음을 어지럽혔고, 뒤이어 자신이 좀 더 해 볼 수 있을 것 같다는 보호사님의 의지는 한줄기 빛과도 같았다. 만약 더는 케어가 힘들겠다고 했다면 바로 요양원을 알아보고 엄마를 시설에 보내드릴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당시 매일 누워만 계시는 엄마에게 욕창이 생기기 시작했고 음식은 거의 드시지 않고 거부하던 때였다. 서맥의 수치 정도가 염려스럽다는 방문의사의 한마디는 치매가 오기 전부터 지병이던 심장병이 깊어질까 식구들의 불안 수위를 높였지만 이도 시설에 들어간다고 상황이 좋아질까 하는 데는 의문이 있었고, 엄마 입장에서 생각해 보자니 역시나 편안한 내 집이 가장 좋을 거라는 판단에 시설로 가는 결정은 당분간 보류하기로 하였다. 일단 식사량을 늘리는 것이 최대 숙제였는데, 우윳빛이 도는 고영양 수액의 횟수를 늘리자 신기하게도 엄마의 입맛이 조금씩 돌아오기 시작했다. 엄마가 식욕이 생기고 식사량이 늘어간다는 보호사님의 문자는 식구들 모두에게 기쁜 소식이 되었고, 그날 이후로 보호사님은 밥숟가락 떨어지자마자 무조건 신발을 신겨 복도를 걷게 하기 시작하였다. 식후 매일 조금씩 걷는 습관을 기적처럼 만들고부터는 기대하기 힘들었던 엄마의 일상에 변화가 보이기 시작했다. 엄마의 눈에 예전의 총기가 다시 살아나기 시작한 것이다. 엄마와 일상적인 대화를 나누기가 어려웠었는데 평소 엄마의 말습관이 나오고 늘 해주던 말들(걱정과 안부의 말들)을 들으며 잠시 떨어져 있던 엄마를 다시 만난 듯 반갑고 감격스러웠다. 일상의 기적이란 이런 게 아닐까. 여전히 기운은 없고 누워 있는 시간이 더 길긴 하지만 잘 드시고, 조금씩 걷고, 눈 맞추며 이야기할 수 있는 이 순간들이 조금 더 길고 오래 지속되기를 간절히 바랄 뿐이다.
평생을 남에게 싫은 소리, 큰소리 한 번 내지 않고 살아오신 소녀 같은 엄마.
알츠하이머성 치매도 조용하게 찾아와 주변 누구에게도 큰 어려움을 주지 않으시는 것 같다. 사랑을 많이 베풀고 사신 덕에 엄마 인생에서 가장 힘든 시기, 많은 이로부터 사랑을 받고 계시는 건 아닐까. 엄마를 '엄마'라고 부르며 살갑게 대하시는 보호사님의 모습을 보며 마치 큰 언니 같다는 생각이 들 때도 있고, 이 또한 엄마의 복이란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