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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winter flush Nov 23. 2024

영화] 패스트 라이브즈

삶과 그리움과 사랑과 인생.

패스트 라이브즈.

'전생'이라는 뜻을 가진 제목이지만 영화는 전생에 관한 이야기는 아니었다.

한 생을 살며 동시에 여러 생을 사는듯한 느낌을 받은 감독이 실제 경험을 바탕으로 시나리오를 쓰며 붙인 제목이라는 글을 잡지 어디선가 읽었다. 미셸 송이라는 젊은 감독인데, 알고 보니 영화 '넘버 3' 송능한 감독의 딸이었다. 영화를 보고 난 느낌이 좋아 이런저런 기사들을 찾아보다 보니 시간의 흐름에 여러 사연들이 딸려 올라오듯 나의 시간마저 과거로부터의 기억을 거슬러 시간여행을 하게 된다.

아늑한 조명 아래 단발머리 동양 여자를 사이에 두고 세 사람이 대화를 나누고 있다. 아니, 서양 남자는 그 대화에 끼지 못하고 어색한, 때론 난감한 미소를 띠며 자리를 채우고 있을 뿐이다. 한국말로 나누는 대화에 끼지 못하는 그의 정체에 대한 호기심 어린 시선을 통해 과연 이 세 인물에 엮인 인연의 고리에 대한 궁금증을 자극하며 영화는 시작된다.

초등학교 동창인 나영과 해성. 서로의 첫사랑인지 풋사랑인지 모를 애틋함을 남기고 열두 살의 이들은 나영의 이민으로 각자 자신이 속한 세계로 나뉘며 헤어지게 되지만 십이 년 후 나영은 SNS를 통해 해성이 자신을 찾는다는 걸 알고 연락이 닿는다. 만나지는 못하지만 지난 시간의 그리움은 그들의 마음을 더욱 끈끈하게 이어주지만 자신의 세계가 흐트러지는 느낌을 지울 수 없던 나영은 다시 틈을 만들어 거리를 벌리면서 두 사람의 세계는 또다시 각자의 삶으로 수렴된다. 그 사이 나영은 결혼을 하고 또다시 십 이년의 시간이 흐른다. 만약 십 이년 전 해성이 나영을 찾아 뉴욕에 왔더라면 어떻게 되었을까? 운명의 지도는 다르게 그려졌을까? 그런 아슬아슬한 마음은 나영의 남편인 아서의 마음을 신경 쓰이게 만들었다. 해성은 인생에 후회를 남기고 싶지 않아서였는지 나영을 찾아 뉴욕을 방문하게되고, 어릴 적 함께 했던 시간의 무늬를 다시 찾으려는 듯 거스른 시간의 흔적을 대화로 채우며 뉴욕의 이곳저곳을 배회하듯 관광을 하지만 마지막 남편 아서와 함께 나란히 앉은 재즈바에서의 그 어색한 기류는 보는 이도 함께 겪어내야 무엇처럼 편치 않았다. 서로 다른 감정의 색을 안고 안온한 조명아래 차분히 앉은 세 사람. 나이가 이만큼 들어서일까? 두 남녀의 애틋함과 그리움과 터져 나오지 못하게 억누르는 사랑의 감정에 포커스가 맞춰지지 않고, 나영의 곁에서 노심초사하며 소외된 감정으로 작아진 아서의 마음자리를 자꾸 들여다보게 된다. 해성이 택시를 타고 떠난 후 집 앞 계단에 쭈그려 앉아있던 아서가 나영을 감싸 안고 집으로 올라가는 장면이 긴 여운을 남긴다. 지키고 싶은 사랑, 그 뒷모습이 바로 인생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교차된 마음과 어긋난 만남도 인연이고, 그렇게 평생 마음에 그리움이 남아 애틋한 마음이 머문다면 그 또한 행복한 기억이겠지만 정말 중요한 인연은 지금 내 곁에 있는 사람이 아닐까. '이루어질 수 없었던'이 아니라 '이루어진'이 사랑. 내가 정성을 쏟고 가꿔나가야 하는 자리는 지금 이 자리. 나영은 그걸 알기에 마음을 휘젓는 감정의 동요를 잠재우며 아서와 나란히 걷는다. 이 영화가 아름다운 이유다.


삶은 각자의 자리에서 태풍이 몰려오고 광풍이 치고 밀려드는 파도에 휩쓸려 갈듯 아슬아슬 한 순간도 많지만 그 자리를 함께 헤쳐 나가는 힘을 키우는 것이 결국 사랑인 것이다. 


                                                                                                     [사진출처 : 네이버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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