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
winter flush
Nov 13. 2024
'알고 있다'는 확신만큼 위험한 생각이 없는 것 같다. '다 안다'는 확고한 믿음은 생각의 방향을 고집스럽게 끌고 가 자기만의 신념으로 굳혀지고 그 좁은 세상이 전부인양 더 알고자 하는 마음을 막을뿐더러 알고 있는 그것을 알려줘야 한다는, 그러니까 가르치려는 본능을 막지 못하고 봇물처럼 터트리며 오히려 그 무지를 드러낸다. 많이 알고 깊이를 갖출수록 더 겸허해지는 법이다. 자신의 앎이 주는 반짝이는 희열로 마치 모든 것을 다 깨달은 사람처럼 의기충전하여 목소리를 높이는 대신 드러낼 말을 고르고 다듬으며 들을 이에게 허락을 구하듯 조심스레 말을 밀어낼 때 귀에 담길 그 말은 또렷한 인상을 남긴다. 이런 말엔 잘 말려 개킨 수건에서 나는 햇볕 냄새처럼 순항 향이 배어있다. 말의 주인이 품은 순하고 맑은 마음이 은은하게 스며있기 때문이다. 그런 이의 말에는 '안다'는 확신이나 자기 고집이 배어있지 않다. 자신이 모를 수도 있다는 조심성과 겸손이 공손함으로 배어나 길지 않은 말에도 큰 울림이 닿아 오래 머문다. 이런 말의 힘이 내 안에 내재되어 있다면 다행이지만 쉽지 않은 일이기에 자고로 이런 말을 하는 이들을 내 가까이에 두는 지혜가 필요하다. 말은 전염력이 강하기에 어떤 말을 자주 접하느냐의 문제는 내 안에 어떤 고요를 축적하느냐의 문제와 관련이 깊다. 소란함과 부정의 정서로 내면의 그릇을 가득 채우고 싶은 사람은 없을 것이다. 매우 활달한 외향적인 성격의 소유자라 해도 내면의 안식처만큼은 고요를 향하고 또한 그래야 하기에 내면 그릇에 담긴 것들이 무엇인지를 점검하는 일은 삶의 중요한 숙제인 것이다. 잠시 떠올려보자. 자주 접하는 지인들과의 대화는 어떠한가? 그들과 나누는 말의 순도純度를 측정할 수 있다면 과연 함께 나눈 대화의 품격은 어느 정도 일까? 누군가에게 닿을 내 말을 점검해 볼 시간의 필요, 안에서 터져 나오는 소리를 감시하는 내 말의 검역관이 되어 말에 실린 뾰족한 가시를 걸러낼 수 있도록 잠시 머물 시간의 필요, 거칠고 투박한 돌덩이가 섬세한 조각가의 손에서 수천번의 손길로 다듬어지듯 세상밖으로 튀어나올 말을 다듬고 가다듬어 누군가의 마음에 순하게 닿을 수 있도록 늘 조심할 시간의 필요를 느낀다. 그런 말에는 자기 고집이나 편향된 시선이 머물지 않는다. 놀이동산 앞에서 신이 난 아이의 마음처럼 그런 마음자리의 바탕은 맑고 순하다. 그런 기운에 물들 수 있도록 내 마음의 각도를 맞추는 연습을 하자. '안다'는 착각에 취해 비틀거리지 않도록, 가다듬어야 할 곳은 자신이 바라보는 곳이 아닌 바라보는 자, 즉 자신임을 잊지 말아야 할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