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연'이란 단어는 조금은 가볍고 책임의 무게가 느껴지지 않는, 그러니까 바람에 스치듯 뜻밖이라는 의미와 함께 다가온다. 예상치 못한 순간의 상황들이 빚어낸 시간들이 쌓여 새로운 가지가 뻗듯 길이 생기고, 그 길을 따라 우연한 순간은 연속적으로 펼쳐진다. 우연함 속에 형성된 관계의 망은 정교하게 엮인 거미줄처럼 '인연'의 그물이 형성되는데, 그러니까 인연이란 우연함이 짓는 집이면서 필연을 향하고, 모든 필연은 우연에서 시작된다고도 하겠다. 우연과 필연은 양극단에 마주 보고 선 상대 개념으로 느껴지지만 좀 더 들여다보면 순차적인 시간 안에 하나의 선으로 이어져 이 둘은 뗄 수 없는 관계성 안에 함께 속해있다.
돌연한 우연이 거대한 하나의 세계를 짓는 사이 마주하는 숱한 선택의 순간들. 이 순간들이야말로 내 삶에 뿌리를 내리는 과정이다. 선택은 다시 뻗을 가지의 방향을 정하기도 혹은 쌓은 시간의 흔적을 무너뜨리기도, 마치 나비효과의 위력처럼 돌풍을 일으키기도 하기에 때론 정교한 신중함을 요한다. 어긋한 생각으로 틀어진 길 위에 서 있다면, 뭔가 잘못 가고 있단 생각이 구름처럼 몰려온다면 그때의 선택이야말로 더없이 중요하다. 가는 걸음을 붙잡아 온 길로 되돌리는 용기를 발휘해야 할 때이고, 고요한 내면의 소리에 온 신경을 집중해 들어야 할 때인 것이다. 개울가 밑바닥에 가만히 서린 모래들을 손으로 휘저으면 탁한 물보라가 일듯이 무의식에 가라앉은 불안은 작은 소란에도 마음 이곳저곳을 휘저어 호우에 불어난 물처럼 급작스레 두려움의 몸을 부풀려 무엇이 옳은 방향인지 감각을 잃을 때가 있다. 이때 하는 선택은 바람직하지 않은 방향을 가리킬 때가 많다. 호흡을 가다듬고, 탁한 물이 다시 투명해질 때까지 기다리는 지혜는 인생의 매 순간 필요하다.
어찌 보면 삶은 공중에 매듭지어 엮은 외줄에 올라타 줄타기를 하듯 아슬아슬한 긴장감을 품고 있다. 균형을 잘 잡고 아래로 떨어지지 않기 위해선 우선 '나'를 믿어야 한다. 그 순간 타인을 의식했다간 흐트러진 집중으로 언제 떨어질지 모르니 말이다. 앞에 벌어진 문제나 상황을 보는 자신의 관점이 어느 곳을 향하고 있는지 점검해 볼 필요가 있다. 디자인할 자신의 삶을 누군가의 시선 때문에 방향을 틀고 있는 건 아닌지, 안에서 외치는 소리에 귀를 막고 외면하고 살아온 건 아닌지, 수많은 선택의 문 앞에서 내게 맞는 문을 두드리고 있는지 눈을 감고 가만히 내 안의 내게 물어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