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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한 일상

하루키의 글쓰기와 달리기

by winter flush

집에서 걸어 3분이면 탄천이다. 몸을 움직이는데 인색했던 터라 이 혜택을 크게 누리지 못하다가 나이 드니 몸에서 보내는 신호에 못 이겨 자주 걷게 된다. 탄천을 걷다 보면 사계절의 선물을 온몸으로 받는다는 생각이 들곤 한다. 어느 계절 하나 아름답지 않은 풍경이 없다. 걷는 사람은 늘 많지만 얼마 전부터는 뛰는 사람들이 부쩍 늘었다. 러닝이 좋다는 소식이 여기저기서 들려오기 시작하는 것과 무관하지 않겠지만 걷는데도 인색했던 내가 가끔씩 뛰는 사람이 된 것만 봐도 러닝의 일상화라는 말이 실감된다. 뛰기 전과 뛰어본 경험의 차이는 컸다. 우리 몸은 뛰는데 적합하도록 세팅되어 있다는 걸 새삼 깨닫게 된다.(그렇다고 매일 뛰는 건 아니지만) 여하튼 달리는 기억이 내 몸에 새겨지고 있다는 사실만큼은 뿌듯한 일이다.

무라카미 하루키는 서른이 되는 즈음 야구장 잔디밭에 누워 맥주를 홀짝이며 시합을 보다 날아오는 야구공을 바라보며 문득 소설을 써야겠다는 생각을 품었고 그날로부터 글을 쓰기 시작해 평생 글 쓰는 사람이 되었다. 당시 운영하던 재즈카페를 접고 본격적으로 글을 쓰면서 그야말로 '쓰는 사람'이 된 이후 줄담배와 불어나는 체중을 감당하기 어려워 뛰기로 결심하게 되었고, 그날 이후 지금까지 쉼 없이 달리고 있다. 달려야겠단 마음을 먹은 그 해가 1983년이다. 이후 공식적으로 그가 마라톤에 참가한 기록이 30회가 넘는다. 스위치를 끄지 않는 한 계속해서 작동하는 기계처럼 그의 글쓰기와 달리기는 꾸준하다. 마치 관성의 법칙처럼 멈추는 방법을 잊은 사람처럼 말이다. 루틴대로 사는 그의 삶이 상상하기 어려운 '위대한 일상'이라는 생각마저 든다.

하루키처럼 치열하게 쌓아 올린 꾸준함이 있을까? 나에겐 그것이 무얼까? 삶을 돌아보니 가늘지만 꾸준함으로 이어오는 좋은 습관 하나는 독서다. 책만큼은 삶의 일부가 되어 이젠 뗄 수 없는 관계가 되었지만 '읽기' 만큼, 아니 그보다 더 좋은 것이 '쓰는' 것인데 무슨 연유에선지 쓰는 일은 관성처럼 습관이 되질 않는다. 아끼느라 못 입고 버리게 되는 옷처럼 내게 글쓰기가 그렇게 되는 건 아닐까. 세월과 함께 몸에 붙는 군살처럼 쓸데없는 습관들이 삶에 불어나 정작 집중해야 할 일들을 밀어낸다. 좋아하는 글을 꾸준히 쓰지 못한다는 건 어쩜 삶의 게으름, 그것의 다른 이름인지도 모르겠다. 바쁜 일상, 그 이면을 들여다보며 무엇을 취하고 무엇을 버릴 것인지를 좀 더 걸러내야겠단 다짐을 해보는 토요일 아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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