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골(粉骨) 없는 쇄신(碎身) 중인 국가대표팀, 이게 무슨 의미가 있나.
어제인 10월 30일 월요일. 한국 국가대표 A팀 신태용 감독은 11월 10일 수원에서 열릴 콜롬비아, 그리고 14일 울산에서 열릴 세르비아와의 평가전에 나설 23명의 명단을 공개했다. 축구협회의 배임(횡령) 문제와 기술위원회의 무능함, 신태용 감독의 감독 자질 논란과 더불어 히딩크 감독 선임 문제까지 조용한 날 없는 국가대표팀. 이번에도 대중들은 납득이 되지 않는 신태용 감독 자칭 '최정예'라는 선수명단을 보고 신태용 감독의 선수 선발 역량에, 그리고 쇄신을 말하며 고개 숙였던 축구협회에 대한 의구심을 품을 수밖에 없게 되었다.
◆ 공격수(2명) : 이정협(부산 아이파크), 이근호(강원FC)
◆ 미드필더(10명) : 기성용(스완지시티), 손흥민(토트넘 홋스퍼), 구자철(FC 아우크스부르크), 권창훈(디종 FCO), 정우영(충칭 리판), 이창민(제주 유나이티드), 이재성(전북 현대), 이명주, 주세종(이상 FC 서울), 염기훈(수원 삼성)
◆ 수비수(8명) : 장현수(FC 도쿄), 권경원(텐진 취안젠), 김영권(광저우 에버그란데), 정승현(사간 도스), 김진수, 최철순(이상 전북 현대), 고요한(FC 서울), 김민우(수원 삼성)
◆ 골키퍼(3명) : 김진현(세레소 오사카), 김승규(빗셀 고베), 조현우(대구 FC)
1. 골 못 넣는 2부리거 공격수 이정협
또 다시 2부리거 이정협이 발탁되었다. 이런 상황이 현재 심각한 공격수 기근을 뜻한다고 말하는 사람들도 많지만, 그렇다고 공격수 풀이 아주 없는 것은 아니다. 현재 한국 2부리그인 K리그 챌린지 소속 부산 아이파크에서 뛰고 있으며 지금까지 25경기 9골을 기록하는 중이다. 하지만 기량이 더 뛰어난 선수들이 뛰는 K리그 클래식(1부리그)에서 2부리거인 이정협(9골)보다 득점이 많은 국내 선수는 양동현(포항, 18골), 주민규(상주, 15골), 김신욱(전북, 10골)이 있고 심지어 같은 2부리그에서는 정원진(경남)이 10골로 이정협보다 많은 골을 넣는 중이다. 하지만 양동현, 주민규, 김신욱, 정원진 모두 대표팀에 뽑히지 못했고, 이정협과 이근호(강원, 7골)이라는 골 잘 못넣는 공격수 2명이 이름을 올렸다.
이정협을 국가대표로 발탁한 것은 前 국가대표 감독인 울리 슈틸리케 감독. 그는 상무에서 뛰는 이정협의 강한 전방 압박에 매료되어 본인의 부임 초기 펼쳤던 수비 축구의 일환으로 활용했고, 어느 정도 성과를 보긴 했다. 하지만 아시안컵 이후 강한 공격 축구를 필요로 했던 대표팀에서 이정협은 골 못 넣는 공격수로 여론이 좋지 못했고, 심지어 2부리그에서도 득점력이 부족한 공격수로 분류, 결국 대표팀에서 하차한다.
한국 국가대표팀은 최근 5경기 2무 3패 5득점 10실점이라는 처참한 성적을 기록 중이다. 무득점 경기가 2경기 있을 만큼 공격력에 대한 불씨를 더 지펴야 하는 이 시점에서 골 못 넣는 스트라이커 이정협, 그리고 이근호의 발탁은 새로운 얼굴을 찾겠다는 신태용 감독 스스로의 말을 어기는 처사로 보인다. 또한, 현재 유럽 상위 리그인 프랑스에서 출전하고 있는 석현준, 그리고 국내에서 득점 상위권에 이름을 올리는 양동현과 주민규는 왜 외면하게 되었는지도 납득이 가질 않는다. 특히 양동현의 경우 신태용 감독이 전술상 자기 스타일과 맞지 않다고 해서 뽑지 않았는데, 이런 평가전에서 테스트라도 해보는 과정이 필요하지 않았을까? 현재 이정협이 9골을 넣었지만 그건 2부리그고, 1부리그에서 더 많은 골을 기록한 선수들이 즐비한데도 검증조차 거부한 신태용 감독의 의중이 참 궁금하다. 최정예 멤버만 뽑았다는데.
2. 장현수-김영권 대체자는 도대체 언제?
감독들은 장현수에게 보이지 않는 실력이 있다고 믿는 것일까. 장현수는 국가대표팀 감독들의 양아들이라고 여겨질 정도로 매번 승선한다. 지난 올림픽 대표팀에서 장현수는 센터백으로 준수한 활약을 했었는데, A팀에서는 수비수로서 필요한 '안정성'이라는 키워드를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위태로운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심지어 울리 슈틸리케 前 국가대표 감독은 우측 풀백이 없으니까 장현수를 그 자리에 세워서 엄청난 질타를 받았고, 신태용 감독은 변형 백3 전술에서 장현수 시프트라는 괴상한 한 수를 두더니 러시아-모로코전 참패를 당하고 말았다. 공수 조율, 강력한 수비력 이런 역량들을 찾아볼 수 없는 장현수. 국가대표의 수준에 미달된 선수들을 대체할 자원이 그나마 96년생의 어린 김민재였는데, 그나마 부상을 당하니 장현수가 또 다시 선발에 오를 확률은 100%. 그것도 콜롬비아-세르비아 두 경기 모두. 중앙 수비수의 인력난에 시달려서 그동안 국가대표 감독들이 검증을 다녔는데, 건진 건 없이 3년 동안 장현수-김영권 정도의 수비수였고, 초보 감독 김남일이 중국에 건너가 권경원이라는 뉴페이스를 데려왔는데 권경원이 선발출장한 러시아전에서는 4실점. 도대체 홍명보 후계자는 15년동안 실종된 것인가.
김영권도 마찬가지다. 김영권은 전 풋살 국가대표 출신으로 수비수지만 발 밑 기술이 좋아서 현대축구에 맞는 빌드업 능력을 가진 희귀한 센터백으로 가치가 높아 광저우 에버그란데로 이적했다. 발 밑 기술이 좋고 패싱이 괜찮지만 수비수인데도 수비를 못한다. 역량 부족의 두 선수를 대체할 센터백이 K리그에 그렇게 없다면 그것은 우리나라 국가대표의 현재와 미래가 정말 없다는 의미다. 수비에서 중심을 잡아야 할 베테랑 선수들이 96년생 김민재가 빠지니까 2경기 7실점을 하는 광경을 목격했지 않는가. 이번 명단에도 그것에 대한 해답을 못 찾고 숙제를 차일 피일 미루는 신태용 감독의 모습이 보인다. 아주 뻔히.
3. 이동국 강제 은퇴
지난 이란-우즈벡전 샤워를 하지 않고 귀가해도 될 정도로 잔디만 살짝 밟았던 이동국은 이번에 아예 명단에서 빠졌다. 왜 빠졌냐는 질문에 신태용 감독은 "이젠 이동국을 아름답게 놓아줘야할 때"라는 괴상한 답변을 한다. 득점을 못했을 때 욕을 많이 먹을까봐 그랬다고 한다. 하지만 상식적인 국가대표의 의미란, 나이에 상관없이 실력으로 뽑고 뽑히는 자리다. 이동국은 40세에 가까운 나이에도 1부리그에서 제한된 출전 기회 속 8득점을 하는 등(현재 뽑힌 이근호보다 많이 넣음) 꽤 쏠쏠한 활약 중이다. 사실 신태용 감독은 부임 직후 직면한 월드컴 아시아 지역 최종예선 통과라는 숙제 해결과 동시에 그동안 슈틸리케 감독이 이동국을 안 썼으니 다시 썼으면 하는 대중들의 여론에 밀려 이동국을 발탁했었다. 원치 않는 발탁 후 모양새는 내야겠으니 신 감독은 이동국에게 3분, 10분 출전 등 제한된 기회를 줬고, 그 속에서 아무것도 하지 못한 이동국은 그렇게 경기를 마쳐야 했다.
최근 전북현대의 최강희 감독은 올 시즌 후 은퇴를 시사한 이동국에게 재고를 고려할 정도로 그의 활용 가치는 충분하다는 건 사실이고, 현재 이동국보다 나은 젊은 공격수를 찾는게 더 어려운 현실이다. 그리고 스스로도 아직 국가대표 은퇴를 언급하지 않았는데, 감독이 현재 활약 중인 선수에게, 심지어 지난 주말 자신의 통산 200골을 기록하며 건재를 과시하며 국가대표 재승선에 열을 올리는 그 선수를 대상으로 아름답게 놓아준다는 겉포장을 하며 사실상 다시는 뽑지 않겠다는 말을 한다. 그리고 뽑은 선수는? 2부리거 이정협이다.
4. 축구협회
축구협회는 여전히 도망다니고 있다. 그리고 자신들이 받을 욕을 신태용 감독에게 돌리고 있다. 사람들은 이번2연전에서 무관중 운동을 준비하고 있을 정도다. 이런 적은 처음이다. 히딩크 후광에 가린 그 후의 숱한 감독들도 이러한 외면을 받은 적이 없었다.
지금 한국 축구는 죽어가고 있는게 맞다. 사람들은 그깟 공놀이 뭐 대수냐고 하겠지만, 지금은 우리나라 문화적 컨텐츠의 상당한 지분을 차지하는 만큼 지금 이 사태가 간과할 문제가 아니게 되어버렸다. 한국 국가대표 축구는 소위 "FC 코리아"라고 할 만큼 국민들을 하나로 뭉치게 하기도 하고 우리나라를 세계 곳곳에 알릴 만큼 국제적 영향력을 가진 대한민국의 대명사가 되어버렸다. 박지성으로 인해서 한국이 어디에 있는지도 모르는 많은 수의 영국 사람은 물론 유럽인들이 우리나라에 대해서 알게 되고, 언급하고, 궁금해하게 되었다. 축구는 더이상 초등학교 체육시간에 하는 단순한 공놀이가 아니다.
국민들의 격렬한 관심과 지지를 받는 국가대표는 지금 거지꼴이다. 최고의 사람을 뽑아 최고의 성적을 내서 최고의 박수를 받아야할, 국가를 대표하는 명예로운 이름 "국가대표"는 자기들 입맛에 맞는 사람을 뽑고, 지원금은 횡령하고, 스폰서 떨어지지 않으면 월드컵에 진출해서 3패해도 상관없는 집단이 되어버렸다.
사실 문제는 2014년 브라질 월드컵에서 출발한다. 브라질 월드컵을 앞두고 최종예선에서부터 감독 선임에 상당한 문제가 있었다. 최강희 전북현대 감독이 급하게 임시 지휘봉을 맡아 월드컵 본선에는 어떻게는 올려놓고, 제대로 된 문제 해결을 하지 못한 축구협회는 월드컵 1년 전에 홍명보 감독을 선임해버린다. 한 팀을 맡아 제대로 된 조직력을 가지는 데 걸리는 시간은 최소! 최소 6개월이라고 하는데, 그러한 시간을 제공받지 못한 홍명보 감독은 결국 자신이 겪어봐서 아는 선수(박주영 등..)로 팀을 꾸린다. 새로운 얼굴이나, 새로운 전술에 대한 연구는 시간이 없어서 못하고 그냥 안전하게 자신이 아는 선수 및 전술로 일관하다가 그렇게 좋지 못한 결과를 보게 된다.
그렇게 2014년 월드컵은 실패했다. 물론 감독 및 선수들의 문제도 있었다. 공항에서 호박엿도 맞았다. 그런데 문제는 축구협회가 해결해주지 않았다. 욕은 선수 및 감독이 먹고 구조적으로 문제가 있었던 축구협회의 감독 선임 과정, 지원 이런 것들은 다 숨겨져 버렸다.
이번에도 마찬가지다. 신태용 감독이 원하는 전술, 선수 발탁. 물론 다 존중해야하고 마음껏 하도록 지지해주는 마음 모두 인정. 하지만 그러기 위해서는 충분한 시간과 여유가 있어야 하는데, 축구협회는 이번에도 책임을 회피하고자(히딩크 사건 관련 등) 신태용을 내세워 욕받이를 시킨다. 그래서 위와 같은 문제들이 생기는 것이다.아는 선수만 뽑고, 대체자를 못 구하는 이런 사태. 심지어 코치도 제대로 선임을 못하는 중이며, 최고의 스태프를 갖춰야 할 대표팀에서 근무하는 코치는 지도자 경력 한 번도 없는 김남일과 차두리라니..
월드컵 때만 축구할 것인가? 그럼 그 사이에는 한국 축구는 매번 이렇게 병들어야 하는가. 겨우 반창고 붙여서 대회 나가면 그게 뭐가 의미가 있을까. 최근 정몽규 대한축구협회장은 위에서 언급한 책임론에서 회피한 채 성적에 대해서 사과하기만 했다. 하지만 지금 문제는 월드컵이 아니다. 히딩크 감독의 말을 우리나라에 적용하자면, 한국이 월드컵 못 나가는 건 문제가 아니다. 한국이 축구를 못하는 것 자체가 문제다. 월드컵 끝나면, 문제가 해결될까? 다음, 다다음 월드컵에도 똑같이 이 문제가 되풀이될 것이 뻔하다.
지금 심폐소생술이 필요한 국가대표팀에 놓여진 골든타임이 모두 소진되어 가고 있다. 그 뒤에는 어떤 전기 충격을 줘도 살아나지 못할 것이다. 쇄신은 말로 이뤄지는 것이 아니다. 괜히 쇄신이라는 말 앞에 분골(粉骨)이라는 말이 붙어 나올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