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소소생각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임소정 Aug 19. 2018

삶을 지탱하는 문장들

고 황현산 선생님을 추모하며


# 1.

퇴근을 하자마자 서점으로 향했다. 황현산 선생님의 산문집 <밤이 선생이다>를 집어 들었다. 이 날만큼은 이 책을 꼭 다시 읽어야 한다는 생각이었다. 몇 번째 구매였는지 모른다. 같은 책을 여러 번 샀지만, 어쩌다보니 당장 책장에서 꺼내 읽을 수 있는 건 없었다. 일주일 전의 일이다.

첫 책을 산 건 2013년 8월이었다. 여름휴가를 며칠 앞두고 서점에 들렀다. 평대를 둘러보던 중 익숙한 저자의 이름이 발길을 멈춰 세웠다. 조금씩 아껴 읽던 책을 비행기에 갖고 올랐는데, 앞좌석 주머니에 꽂아놓고 내려버렸다. 책을 끝까지 읽지 못하고 잃어버린 게 못내 아쉬웠지만, 누군가에게 좋은 선물이 됐을 거라 생각하기로 했다.

귀국 후 얼마 뒤에 두 번째 <밤이 선생이다>를 샀다. 그 때는 첫 장을 편 뒤 마지막 장까지 쉬지 않고 읽었다. 늘 그렇듯 책을 읽으며 밑줄도 치고 메모도 했는데, 이것저것 마음을 건드리는 것들이 많아 다른 책을 읽을 때보다 뭘 많이 적어놓았던 것 같다. 언제였는지 정확히 기억나진 않지만, 짧지도 길지도 않은 인생을 살면서 드물게 힘들다고 생각한 시기였다.

이 책은 그로부터도 몇 달 뒤, 좋아하는 선배께 빌려드렸다. 어느 여름날 밤이었던 것 같다. ‘집에 가는 길인데 잠깐 차나 한 잔 할까’ 하고 선배가 전화를 걸어왔다. 혼자 독립을 해 살 때였기에 괜찮으시면 들렀다 가시겠냐 했다. 우리는 차를 마시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 책장에 꽃힌 책들로 시선을 옮겼다. 책을 둘러보던 선배는 이 중 요즘 제일 좋아하는 책이 뭐냐고 물었다. 나는 <밤이 선생이다> 를 꺼내 보였다. 어떤 책이냐고 묻는 선배에게 ‘아름다운 문장에 위로를 받았다’고 했던가. 선배는 책을 빌려갈 수 있을까 물었고, 나는 그러시라고 했다. 보통은 새 책을 사서 선물하지, 누군가에게 책을 빌려주지 않는다. 책 곳곳에 내 느낌과 생각을 적어놓기 때문이다. 일기장을 빌려주는 느낌이라고 하면 비슷할 것 같다. 아무튼 그 날 나는 선뜻 책을 건넸다. 아무 말을 하지 않았어도 어느 새 슬며시 와닿은 선배의 마음 때문이었을까. 왠지, 선배에겐 나의 마음을 보여줘도 될 것 같다 생각했던 것도 같다. 언젠가 책을 돌려받게 된다면 그 때의 나는 어떤 마음이었는지 찬찬히 되짚어 보고 싶다. 그러고 나는 아마 다시, 같은 책을 선배에게 선물하겠지.

이후로도 나는 책을 선물할 때면 이 책을 골랐다. 주로 내가 생각할 때 마음에 위로가 필요할 것 같은 사람들에게 주었던 것 같다. 앞서 일주일 전 퇴근길에 샀다고 한 <밤이 선생이다>는 지난 주말, 턱을 다쳐 입원해있던 윤지나 양에게 가져다주었다. 그리고는 서점으로 발길을 돌려 몇 번째일지 모를 <밤이 선생이다>를 다시 집어 들고 집으로 왔다.

# 2.
처음 <밤이 선생이다>를 읽은 2013년, 그보다도 6년 전 이야기를 잠시 할까 한다.

졸업학기인 2005년 한참 언론사 입사를 준비하고 있던 중이었던 나는 우리학교 정치외교학과 명예교수이신 진덕규 선생님이 꾸려가시던 <현대 고전읽기 세미나>에 들어갔다. 기자 시험을 본다는 사람이 사회과학고전이라곤 제대로 읽은 게 없다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우리 학교 정치외교학과 학생들이 대부분인 가운데, 다른 과 학생은 나 하나, 그리고 유일하게 서울대에서 온 남학생이 하나 있었다.

세미나는 정해진 책을 읽고 쪽글을 써와 다른 사람들 앞에서 소리 내 읽는 식으로 진행이 됐다. 지금 생각해도 부끄럽지만, 처음 접하는 사회과학고전을 읽는 건 내겐 고역이었다. 소화를 제대로 못 한 채 쓴 쪽글이 제대로 일리 없었다. 나 빼고 다른 사람들은 모두 책의 내용을 이해하고, 자신의 시각대로 잘 소화한 것 같았다. 특히 이과생이었던 그 남학생의 글이 눈에 띄었다. 이후 어떤 계기였는지 모르겠지만, 우리는 친해지게 되었고, 서로에 대해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다. ‘어떻게 이과생이 그렇게 글을 잘 쓰나 (지금 보니 문과생이 글을 더 잘 쓰리라는 건 지독한 편견이지만) 문학이나 음악에 대한 지식은 어떻게 쌓게 되었나’ 뭐 그런 것들을 물었던 것도 같다. 좋지 않은 내 기억력 탓에 정확히 뭘 물었는지 기억이 나진 않지만, 돌아온 대답은 꽤나 인상적이어서 지금까지 남아있다. “나약한 나를 지탱해준 건, 아버지의 글이다.” 그의 아버지는 ‘문학평론가’라 했다. 아버지를 존경한다는 사람들은 있지만, 아버지의 글에 지탱해 살아왔다는 건 대체 어떤 느낌일까 궁금했다. 그 뒤로 그 남학생은 유학을 갔고, 나는 기자가 되었다. 한참동안 연락이 끊겼고, 간간이 소식을 건너 들었다. 그러던 중 나는 그가 말해준 그 ‘아버지’의 성함을 신문에서 언뜻언뜻 보았고, 한참 뒤인 2013년에서야 그 ‘아버지의 글’을 읽게 되었다. 책 마지막 장을 덮고 나서 나는 오래전 그 남학생의 말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이렇게 아름다운 글을 쓰는 분을 아버지로 두다니 부럽기까지 했던 것도 같다. 여운이 가시지 않아 오랜만에 용기를 내 짧은 이메일을 보냈다. ‘참 멋진 분’이시란 말과 함께 책의 한 구절을 덧붙였다.

# 3.
지난 8일 아침, 황현산 선생님의 소천 소식을 들었다. 퇴근 뒤 빈소로 향하는 길, 내 가방에는 몇 주 전 사서 한 챕터씩 아껴 읽어오던 선생님의 최신작 <사소한 부탁>이 들어있었다. 거의 10년 만에 얼굴을 본 남학생에게, 나는 눈빛으로 조용히 위로의 인사를 건넸다. 하지만 지금에 와 생각하면 그 위로는 나를 위한 것이기도 했다. 처음 선생님의 책을 서점에서 집어든 그 날 이후, ‘그 남학생의 삶을 지탱해 준 아버지의 글’은 나에게도 따뜻한 위로가 되었고, 어두운 길 위의 빛이 되었고, 그렇게 때로는 삶의 순간들을 지탱해주는 힘이 되었다. 수 년 전, 나는 그 남학생에게 ‘멋진 분’이란 말로 부러움을 표했지만, 이런 어른과 동시대를 살 수 있었다는 것, 그리고 그 글에 기댈 수 있었다는 건 나를 포함해 많은 사람에게 행운이었다.

많은 아름다운 문장들 중 내게 항상 큰 울림을 주는 몇 개를 옮겨 놓으며 이 쉽지 않았던 글을 마치기로 한다.

“어떤 사람에게는 눈앞의 보자기만한 시간이 현재지만 어떤 사람에게는 조선시대에 노비들이 당했던 고통도 현재다. 미학적이건 정치적이건 한 사람이 지닌 감수성의 질은 그 사람의 현재가 얼마나 두터우냐에 따라 가름될 것만 같다.”

“이 유례없는 경쟁의 사회에서 우리는 조금씩 지쳐 있다. 그렇더라도 마음이 무거워져야 할 때 그 무거운 마음을 나누어 짊어지는 것도 우리의 의무다. 엄마가 아이를 키우듯이, 나라 잃은 백성이 독립운동 하듯이.” _ <밤이 선생이다>

“한 지식 체계의 변두리에서는 지식이 낡은 경험을 식민화하지만, 오히려 중심부에서는 지식이 늘 겸손한 태도로 세상을 본다. 제가 무지 앞에 서 있을 뿐만 아니라 무지에 둘러싸여 있음을 자각하는 것이 공부하는 사람의 태도다.”

“평소에 염두에도 두지 않았던 이런 모순에 갑자기 의문이 생기는 순간을 나는 문학적 시간이라고 부른다. 문학적 시간은 대부분 개인의 삶과 연결되어 있기 마련이지만, 사회적 주제와 연결될 때 그것은 역사적 시간이 된다. 그것은 또한 미학적 시간이고 은혜의 시간이고 깨우침의 시간이다.” _ <사소한 부탁>

그곳에서는 부디, 아픔 없이 편히 쉬시기를.

매거진의 이전글 글쓰기 리즈시절은 어디로 갔나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