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관종기질이 부족한 걸까
‘글을 쓰는 사람은 태생이 관종이다'
최근 재미있게 읽고 있는 강원국 선생님의 ‘글쓰기’에 관한 연재. 첫번째 글의 제목이다.
일에만 매몰되지 않고, 정신건강을 위해 딴짓도 하면서 살겠다고 거창하게 ‘딴짓 선언’ 을 한 지 석달이 지났다. 야심차게 연 <브런치>에 그동안 쓴 글은? 단 두 편이다. 관종 기질이 부족한 탓일까.
따지고 보면 나는 ‘글쓰기’를 직업의 일부로 하고 있는 사람이다. 이런 직업을 택한 걸로 봐서, ‘태생이 관종’이란 말에서 자유롭지 않을진대, 왜 이렇게 글쓰는 게 힘든 걸까.
지난 석 달 동안 바쁜 일과를 핑계 삼았다. 잠깐 여유가 생겼을 때도 '다른 일을 생각할 때가 아니'라며이유를 찾았다. 하긴 그도 완전히 생판 핑계만은 아닌 것이 바쁘긴 했다. 4년 만에 돌아온 보도국에 적응하기 위해 몸과 마음을 ‘보도’ 모드로 다시 맞춰넣어야 했고, 법조팀에 온 뒤에는 소위 ‘검찰 문법’에 적응할 새도 없이 이명박 전 대통령 구속 등 밀려드는 이슈 속에서 허덕였다. 다시 ‘저녁과 주말이 없는 삶’이 시작됐다. 쉬는 날에는 밀린 잠을 잤다. 노쇠한 몸은 시름시름 앓고 있다.
침대에 모로 누워 틈틈이 SNS에 올라온 지인들의 글을 읽었다. 담담한 일상의 기록, 재미있는 관찰, 그리고 날카로운 통찰력이 보이는 글까지. 다들 어쩜 이렇게 글을 잘 쓸까 감탄했다. 새로운 장소와 일을 찾아나서는 사람들의 사진, 그에 달린 짧은 글도 보았다. 그런 일을 하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참 대단하단 생각이 들었지만, 그걸 그 때 그 때 SNS 계정에 올려두는 부지런함에 더 감탄했다.
‘아, 나도 밀린 글을 써야하는데’ 압박이 밀려왔다. 하지만 곧 ‘오늘은 피곤하니까, 다음 기회에’ 라며 위안 삼았다. 그러는 사이, ‘요리 여행’이란 글감은 유효기간 도과를 앞두고 있고, 나의 삶은 관성에 몸을 맡기고 있다. 다시 ‘일’만 남았다. 딴짓 선언이 무색해지는 순간이다.
사실 글쓰기를 회피한 건 ‘관종 기질이 부족해서’도, ‘바빠서’도 아니다. 답은 자신이 잘 알고 있다. 게을러서다. 자책 시동이 슬슬 걸릴 때쯤, 강 선생님의 글이 나를 위로한다.
뇌는 글쓰기를 반기지 않는다. (중략) 그래서 글을 쓰려고 마음먹으면 쓰기 싫은, 쓰지 않아도 되는 이유가 서너 가지 등장한다. 마감이 아직 이틀 남았다든가, 어제 술을 많이 마셨으니 오늘은 글쓰기에 적절하지 않다든가 하는 것은 뇌의 작용이다.
글쓰기는 습관이다. 습관을 들이면 글쓰기가 편하다. 습관은 무의식이 만든다. 내 무의식에는 술 먹는 습관이 내장되어 있다. 평소 술을 꾸준히 마셔온 결과다. 습관은 강력한 유혹이다. 의지는 습관에 항복한다.
3주 만에 쉬는 주말이다. ‘다음 기회에’라는 말이 더 이상 허용될 수 없는 선까지 온 것 같아 감기로 골골대는 몸을 일으켜 꾸역꾸역 집 근처 카페에 아이패드를 들고 나와 앉았다. 길만 하나 건너면 이렇게 예쁜 카페들이 즐비한지 이번 주말에서야 처음 알았다. 커피를 한 잔 마시고 정신을 차려 글을 쓰기 시작한다. 지난 주에 적어놓은 제목만 네댓개다. 매일 커피를 안 마시면 잠이 안 깬 기분이 드는 것처럼 글 쓰는 일도 습관화 할 수는 없을까...생각해본다.
아, 그런데 벌써 피곤이 밀려온다. 집에 가서 누워야 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