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 보츠와나
두 번째 국경을 넘었다. 남아공에서 만난 강대원과는 처음으로 넘는 국경이었다. 나미비아 입국심사장은 문전성시를 이뤘는데 보츠와나는 비교적 한가한 편이다. 보츠와나는 인구밀도가 현저히 낮고 마을과 마을 사이의 거리가 멀다. 무엇보다 야생동물의 보고라 불리는 나라이며 세계에서 가장 많은 코끼리가 서식하고 있는 나라 이기도하다. 남아공 그리고 나미비아를 여행하는 동안 만난 친구들에게 보츠와나를 횡단하겠다는 계획을 이야기를 할 때면 "차로 가도 위험한 곳"이라는 대답을 종종 들었고 "사자 밥"이라는 소리는 아주 자주 들었다.
REPUBLIC OF BOTSWANA가 적힌 간판을 보니 어쩐지 긴장감이 맴돈다. 또 다른 가슴 떨림이다.
뭐가 어찌 됐건 케냐를 가려면 이곳을 지나야 하니 별다른 도리가 없다. 그냥 가볼 뿐.
보츠와나 여행의 시작점에 서니 벌써 야생동물의 위협으로부터 심적 압박을 받게 된다. 남아공과 나미비아의 도로는 미약하게나마 도로 주변에 울타리 혹은 분리선이 있어 제법 보호받는 느낌이었다면
보츠와나는 숲 한가운데에 도로가 나 있는 것 같은 느낌이다. 언제 어디서 무엇이 튀어나와도 이상할 것 없어 보인다. 그나마 이래도 되나 싶을 정도로 길게 뻗어 있는 평지와 의외로 상태가 좋은 도로 덕에 위로가 된다. 그러나 중간중간 심하게 파손된 도로가 있기에 집중하고 자전거를 타지 않으면 위험할 수 있다.
얼마 가지 않아 동키와 양들이 보인다. 신기하게 우리를 쳐다보는 동키와 길 건너 어디론가 분주히 이동하는 양들. 아직까지는 겁쟁이 동키와 순둥이 양들만을 만나 여유롭다.
보츠와나 국경에 인접한 마을 찰스힐에 도착. 이곳에서 하루 쉬어간다. 캠핑할 수 있는 앞마당이 있는 적당한 집에 들어가 허락을 받았다. 집주인은 너무나 흔쾌히 수락해 주었고 그런 그의 친절에 감사했다.
그러나 반전은 있는 법. 캠핑 준비를 모두 마치고 마당을 내어준 집주인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는데 불쑥 돈을 요구하는 것이 아닌가. "그래 세상에 공짜는 없지..." 앞마당을 내어준 그의 행동을 멋대로 대가 없는 친절이라 생각한 나의 잘못이었음을 인정하고 몰려오는 배신감을 달랜다. 다시 텐트를 접고 움직이기에는 저물어 가는 해가 신경 쓰였다. 그렇다고 가진 플라(보츠와나 화폐)도 없었다. 여차저차 사정을 말하고 소정의 US달러를 건네며 하루 묵어가겠다 했다. 이왕 이렇게 된 거 집에 들어가 텐트를 치겠다는 것으로 합의를 하고 실내에서 하루를 보내기로 했다.
다음날. 부지런히 길을 나선다. 보츠와나에서는 특히나 적당한 시간에 자전거를 타는 것이 중요하다. 적당한 시간이란 너무 이른 시간도 아닌 그렇다고 너무 늦은 시간도 아닌, 어쨌거나 저쨌거나 상위 포식자 사자나 레오파드가 활동하지 않는 시간을 말한다. 다행히 오늘도 첫 만남은 겁쟁이 동키들이다.
보츠와나의 하늘은 티 없이 맑고 넓었다. 다만 이곳에서 생활하는 동물들의 변이 도로변에 널브러져 있어 피하지 못하면 청결치 못한 기분으로 라이딩을 해야 했기에 그 어느 나라보다 정신 집중하지 않으면 된통 당할 나라 이기도 했다.
우리는 부지런히 보츠와나를 달렸다. 점심 먹을 때에도 언제 나타날지 모를 동물들에 경계하며 밥을 먹어야 했지만 그 불안감도 잠시였다. 편안한 마음으로 여행하는데 특유의 안전불감증이 도움이 됐다.(그래도 언제나 주의!) 일명 자포자기 마인드가 된 우리는 어느덧 나타날 야생동물에 신경 쓰지 않을 수 있었다.
코끼리 발 크기로 뚫려 있는 도로에 걸려 강대원이 낙차 한 사고를 제외하고는 별 탈 없이 마운(Maun)에 도착할 수 있었다. 마운(Maun)은 오카방고 델타 투어를 위해 많은 관광객들이 베이스캠프로 찾는 곳이다.
마운(Maun) 시내에는 정체 모를 식물의 가시가 도로변 이곳저곳에 흩어져있어 타이어에 박히는 일이 빈번히 발생했다. 타이어 튜브에 패치를 때우는 일은 제법 시간과 에너지를 소비하는 일이지만 여러 번 때우다 보니 이 역시 점점 능숙해져 간다.
보츠와나는 District를 넘을 때마다 검문소가 있는데 우리는 이곳 직원들의 처소에서 하루 묵어가기도 했다. 검문소에서는 별다른 검사 없이 "미쳤어?"라고 한마디 듣는 것으로 검문을 대신한다.
보츠와나 여행 중반쯤 Makgadikgadi Pans 국립공원을 목전에 두고 강대원의 자전거 바퀴에 또 문제가 생겼다. 바퀴 림 파손... 남아공에서 일어난 문제가 또 발생했다. 해는 져가고... 지체할 시간이 없었다. 지나가는 적당한 차를 히치하이킹하여 강대원을 마운(Manu)으로 보냈고 연락 가능한 곳에서 서로의 안부를 묻기로 했다. 이렇게 또 다시 갑작스러운 이별하게 됐다.
히치하이킹하는데 시간을 오래 지체했다. 해가 지기 전 캠핑할 장소를 찾기 위해 부지런히 페달을 밟아야 했다. 다리에 힘이 잔뜩 들어간 상태로 열심히 페달을 굴리고 있는데 정대원이 갑작스럽게 브레이크를 잡고 멈춰 섰다. 바짝 뒤따르던 나는 정대원과 가볍게 충돌하며 겨우 멈춰 설 수 있었다.
"저... 저기"
정대원이 가리키는 손 끝을 따라가 고개를 올려다보니 거대한 어떤 것이 우리를 빤히 보고 있는 것이 아니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