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사를 부모님께 알리지 못하는 딸의 속 사정
금쪽 상담소에 송민호가 나왔다. 어릴 때부터 자유분방하고 독립적인 성향이었지만 하고 싶은 것을 마음껏 해본 적이 없는 나는 아티스트의 삶을 동경해왔다. 위너의 송민호 역시 내가 부러워하는 사람 중에 하나다. 노래도 잘하고 개성도 강하고 심지어 그림까지 잘 그린다. 그런 송민호의 공황장애 고백은 조금 놀라우면서도 솔직한 용기에 고맙기도 했다.
그의 낯빛은 좋지 않았고 살도 많이 빠졌고 보이지 않는 두려움이 그를 감싸고 있는 것 같았다. 송민호는 솔로 음반과 예능 프로그램을 섭렵하며 최고의 주가를 올리던 그 시기에 가장 불행했다고 말했다. 카메라 불이 꺼지면 본인의 삶도 꺼질 것 같아서 촬영 중에 몰래 나와서 울기도 했다. 직장 일을 마치고 집에 와서 밥을 먹고 영화를 보면서 쉬는 평범한 일상이 본인에게 허용이 되지 않는다고 했다. 상담을 해보니 그 이유는 본인의 마음이 편안해지면 창조적인 영감이 사라질까 봐 두려웠기 때문이었다. 그런 송민호에게 오은영 박사님은 아무리 창조적인 활동을 하는 예술가라도 항상 예술적일 수는 없으며 휴식 시간도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패널 이윤지는 연기자로서 송민호와 비슷한 고민을 한 적이 있다며 본인의 마음이 편하면 슬픈 연기를 잘 소화하지 못해서 시청자들로부터 비난을 받을까 봐 행복한 감정을 갖는 게 두려웠던 적이 있다고 했다. 그때 이윤지는 대중의 평가보다 더 소중하고 의미 있는 가족과 가정이 있기에 행복을 잃지 않을 수 있었다고 말했다. 오박사 님은 송민호에게 본인의 삶에서 의미 있는 타인이 있는지 물었고 송민호는 그런 존재가 없다고 했다. 그는 경제적 가장으로서 가족을 책임져야 하는 상황에 있다 보니 본인이 편하게 쉴 수 있는 둥지 같은 느낌이 아니라고 했다.
유홍균의 <자존감 수업>이라는 책에서는 자존감의 세 가지 요소가 자기 안정감, 자기 조절감, 자기 효능감이라고 한다. 자기 안정감은 내 인생이 안전하게 잘 유지되고 있는가에 대한 감정으로서 전쟁, 전염병이나 범죄에 대한 공포는 자기 안정감에 방해 요소가 된다. 두 번째로 자기 조절감은 본인의 선택으로 인생을 살아가고 싶은 욕구를 말한다. 누구나 자신의 인생을 자기가 원하는 대로 살고 싶어 하는 본능이 있으나 어릴 때에는 부모에 의해 자기 조절 감이 억압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마지막으로 자아효능감은 어떤 일을 성공적으로 수행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고 믿는 신념이다. 본인이 얼마나 쓸모 있는 사람인가에 대한 생각으로 성취경험이 많을수록 이 이 부분은 올라간다.
송민호에게 음악을 만들고 그림을 그려서 본인의 재능을 펼치는 것이 자기 효능감의 영역이라면 적절한 휴식을 취하는 것이 자기 조절감의 영역에 해당할 것이다.타인에게 받는 인정에는 한계가 있고 진정 행복하고 나다운 삶을 살기 위해서는 ‘자기 조절감’이 필수적인 요소이다. 그렇다면 자기 조절감은 어떻게 올릴 수 있을까? 오박사님은 심리적 안정감을 줄 수 있는 가족이나 혹은 그에 준하는 의미 있는 타인이 필요하다고 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인간관계를 통해서 삶의 의미를 찾는다. 하지만 송민호처럼 가족에게조차 마음 둘 곳이 없는 사람은 어떻게 해야 할까?
부모님께 이해받지 못할까 봐 솔직하게 퇴사를 밝히지 못한 나의 상황도 송민호와 다를 바 없다. 뭐가 그렇게 무서웠던 걸까. 어느 순간 부모님과 나는 가장 어색한 사이가 되어버렸다. 며칠 전 아빠가 나에게 물었다.
“너는 취미가 뭐니? 좋아하는 것도 없니?”
부모님이 이해해주지 않아도 괜찮은 내가 되고 싶다. 아니, 사실은 엄마의 품이 그립다고 말하고 싶다. 힘들 때는 힘들다고, 회사 다니기 싫을 때는 잠시 쉬고 싶다고 말하고 싶다. 나는 몸은 다 큰 성인이지만 마음은 아직 엄마의 사랑이 그리운 어린 아이였다.
또 우리 육체의 아버지가 우리를 징계하여도 공경하였거든 하물며 모든 영의 아버지께 더욱 복종하여 살려하지 않겠느냐
히브리서 12:9
하지만 나에게는 영의 아버지인 하나님이 계시기에 이 결핍도 치유될 수 있으리라 본다.
그렇게 오늘도 난 비밀이 아주 많은 딸로 살아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