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받는 연습이 필요한 이유
얼마 전에 금쪽 상담소에 모니카가 나왔다. 그녀의 고민은 “일을 즐길 수가 없다”는 것이었다. 그녀는 성취지향적인 사람으로서 일을 할 때 긴장이 많이 되고 불안함을 느끼며 본인과 함께 일하는 동료들을 책임져야 한다는 생각이 강했다. 그녀에게 사랑은 책임을 지는 것이기 때문에 타인과 친밀해지고 가까워지는 것이 점점 부담스럽고 거리를 두게 된다고 했다. 그녀가 이런 생각을 가지게 된 이유는 그녀의 어머니가 가족을 위해 고생과 희생을 많이 하셨기 때문에 사랑이란 자신의 것을 희생하면서 누군가를 도와주어야 하는 것으로 자리를 잡았던 것이다. 그녀는 어머니에게 받은 사랑보다 그 이상의 것을 해주고 싶은데 그러지 못해서 늘 어머니께 죄송한 마음에 괴로워했다. 그런 그녀에게 오박사 님은 사랑은 책임을 져주는 것이 아니라 “마음을 나누는 것”이라고 했다.
나에게도 사랑은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는 것”이었다. 나라는 사람이 누군가에게 유익이 되어야만 사랑받을 수 있다는 기브 앤 테이크적인 생각이 내 머릿속에 박여 있었던 것이다. 그러다 보니 내가 그들에게 도움이 되지 못한다고 생각이 들면 ‘미안한 감정’이 들고 더 나아가 ‘저 사람이 나를 싫어할 것 같다’는 생각까지 번졌다. 늘 타인을 위해 시간, 돈과 에너지를 쓰다 보니 나 자신에 대한 것은 우선순위에서 밀려나 있었다. 그래서 어느 순간부터는 누군가에게 사랑 주면 줄수록 내가 피해를 본다는 생각이 들어서 사람들에게 관심과 사랑을 주는 것에 인색해져 버렸다.
내가 이런 생각을 가지게 데에는 어머니의 영향이 크다. 우리 어머니는 늘 본인보다는 가족이 우선이었다. 내가 어렸을 때 어머니를 보면서 든 생각은 대개 어머니들이란 자신을 희생하고 봉사하는 것이구나 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늘 어머니를 볼 때마다 내가 들었던 마음은 미안함, 죄책감, 죄송함이었다.
모니카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자식으로서 부모님의 사랑을 다 갚을 수 있을까? 아니, 꼭 갚아야만 하는 것일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나라는 유교사상이 깊은 나라이고 부모님을 공경하고 사랑하고 효를 다하는 것이 중요한 가치관이다 보니 내가 이런 생각을 하는 것조차 뭔가 죄스러운 마음이 들고 불효자 같은 마음이 들기도 하다. 하지만 이 괴로움을 해결하기 위해서 나는 이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져야만 했다. 부모는 자식을 낳았기 때문에 자식을 위해 사랑하고 헌신하는 것이 어찌 보면 타당하고 합당하다. 그렇다면 반대로 자식이 부모를 사랑해야 하는 이유는 무엇이란 말인가?
하지만 이내 이런 질문 자체가 의미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애초에 사랑은 그 어떤 조건도, 이유도 없기 때문이다. 나는 누군가에게 사랑을 주는 것만 익숙할 뿐, 받는 법은 배우지 못했다. 그래서 받으면 꼭 돌려줘야 한다는 부담감 때문에 사랑을 받는 데에 반드시 “이유”가 필요했던 것이다. 내가 나를 보면 전혀 사랑스럽지 않고 사랑받을만한 구석이 하나도 없어 보인다. 그래서 누군가 나에게 호의나 호감을 표현하면 오히려 그 사람을 의심했다. 나에게 사랑받는 것은 전혀 당연한 것이 아니었다. 어렸을 때도 성적을 잘 받아서 부모님을 기쁘게 해드리고 싶었다. 인간은 누구나 불완전한 존재이기에 부모님과 나 사이의 애착관계에도 당연히 그 결핍이 있었다.
그래서 나에게 어려웠던 것이 “신의 사랑”이었다. 신은 인간을 사랑해서 예수님을 이 땅에 보내서 십자가의 피로 희생했다는 것. 그건 정말 감사한 것이고 모든 걸 다 바쳐도 갚을 길 없는 은혜와 사랑이지만 어느 순간부터 그것이 감사하다기보다는 부담스러웠다. 내가 아무리 열심을 다해도 그것을 갚을 수 없다는 것을 알기에 그저 무력감만 들었다. 사실 갚고 싶지 않았을 수도 있다.
부모가 자식을 사랑하는 게 당연한 것처럼 신에게 받은 사랑을 꼭 갚지 않아도 되는 건가? 그래도 되는 건가? 내가 은혜도 모르는 배은망덕한 존재가 되는 것은 아닐까 불안했다. 날씨 좋은 어느 날, 옥상에 올라가서 따스한 햇살을 받으며 가만히 쉬고 있었다. 바람이 솔솔 불어온다. 바람에 나뭇가지가 흔들리고 새들이 지저귄다. 햇빛도, 공기도, 자연은 아무런 대가를 바라지 않고도 꾸준히 나에게 생명을 베풀어주고 있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렇다면 신에게 인간은 정말로 “그냥”, “단지”, “아무 이유도 없이”, “그저” 사랑을 받기 위해 태어난 존재라는 것인가? 잠시 멍해졌다. 한 번도 그런 생각을 해보지 않았기 때문이다.
엄마가 나를 사랑하는 것도 당연한 것이고, 신이 인간을 사랑하는 것도 당연한 것이라면 내가 꼭 무엇을 하지 않아도 되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면서 마음이 편안해졌다. 뭔가 들고 있던 책임감이라는 무거운 짐이 내려지면서 가볍고 자유로운 기분이 들고 행복했다. 오은영 박사님의 말처럼 사랑이 마음을 나누는 것이라면 사랑에는 그 어떤 것도 필요치 않은 것이다. 결국 나는 마음을 나누지 못해서 스스로 괴로웠던 것이다. 수용받지 못하고 인정받지 못할까 봐 두려워서. 사실 나는 몸만 컸지, 아직은 사랑받고 싶은 어린아이이다. 어린아이는 엄마한테 사랑받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한다. 그리고 어린이는 어른보다 훨씬 더 행복하다. 결국 어린아이처럼 솔직해져야 행복한 사람이 될 수 있지 않을까?
나도 사실은 사랑만 받고 싶다고!!
부모님에게도, 신에게도, 친구들에게도 궁극적으로는 사랑받는 게 당연한 사람이 되자. 익숙한 사람이 되자. 그리고 그들과 마음을 나눌 수 있는 사람이 되자는 것이 요즘 나의 목표이다. 지나가다가 거울을 보면서 한 번씩 나 자신에게 “너는 원래부터 사랑받으라고 태어난 존재라는 걸 잊지 마. 사랑받는걸 너무 두려워하지 마.”라고 나에게 위로를 건네고 파이팅을 외쳐본다. 나는 할 수 있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