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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원꾸미 Apr 14. 2022

딸 자취방에 들른 엄마를 바라보며 깨달은 한 가지

부모님으로부터 정서적으로 독립하기

나의 어머니는 사 남매 중에 장녀로 태어났다. 엄마는 동생들의 학비를 보태기 위해 고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직장을 다니셨다. 그러고 나서 아빠를 만나 콩깍지가 씐 상태에서 결혼을 하고 아빠를 따라 아무 친인척도 없는 낯선 곳에서 삶의 터전을 잡고 두 딸을 낳아 지금까지 키워오셨다. 아버지는 죽어도 남 밑에서는 일을 못하는 타입이라며 결혼 이후 지금까지 쭉 자영업을 해오셨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아빠가 벌이는 일들마다 실패를 거듭했고 IMF가 터지면서 우리는 많은 빚을 떠안았다.


아빠는 속상한 마음을 술에 많이 의지를 하셨고 결국 과음으로 인해 다음날에 가게 문을 열지 못하실 때가 많았다. 뒷수습은 엄마의 몫이었고 손님이 많아 일손이 부족할 땐 늘 나를 부르셨다. 내가 고등학생 때 엄마는 아빠와 다투신 이후 하루 동안 가출하신 적도 있었고 내 방에서 이불을 뒤집어쓰고 우신 적도 있었다. 그때 당시 나에게는 아빠에 대한 원망과 엄마를 도와드려야 한다는 미안함과 나 또한 챙김 받지 못해 서운한 감정들이 뒤섞여 있어서 엄마라는 분을 객관적으로 바라보지 못했다. 엄마도 엄마이기 이전에 한 명의 사람이라는 것을, 그리고 엄마를 이해하는 것이 나의 불안을 이해하는 데에 굉장히 중요한 부분이었다는 것을 말이다.


 그 이후로 시간이 흘러 나는 대학교를 졸업했고 직장 생활을 시작하면서 부모님으로부터 경제적 독립을 하고 자취를 시작했다. 이사 첫날, 엄마가 나의 자취방에 온 순간부터 엄청난 잔소리를 퍼부어댔다. “이건 이렇게 하고, 저건 저렇게 해야지.” 잔소리에 가장 신속하게 대응하는 방법은 실제로 그렇게 하지 않을지라도 알겠다고 대답하는 것이다. 그러던 중 엄마가 내가 화장실에 둔 노란 쓰레기통을 보며 이것은 주방 옆에 둬야 한다며 들고 나오셨다.

“엄마, 이건 내가 화장실에 둔 이유가 있어. 화장 지우고 나서 화장솜이랑 면봉 버릴 거야”

“아니야, 이거는 주방에 둬야 해”

“엄마, 여긴 내 집인데 엄마 마음대로 하는 게 어딨어? 내 마음대로 할 거야.”

라고 내가 말했지만 엄마는 내 말을 듣고 있지 않는 것 같았다. 단지 쓰레기통을 어디에 둬야 하나 하는 문제였지만 나는 이 일을 통해 엄청난 사실을 깨닫게 되었고 그것은 나를 이해하는데 가장 중요한 것이었다. 나는 지금까지 내 인생을 살아왔다고 생각했지만 사실은 엄마의 가치관을 내면화해왔다는 것이다. 마치 영화 매트릭스의 주인공처럼 그동안 본인이 경험한 세상이 진실이라고 믿고 있었지만 사실은 모두 가짜였던 것처럼, 그동안 열심히 살아왔다고 생각한 내 인생이 송두리째 부정당하는 느낌이었다.


엄마의 입장에서는 당신이 우리 집안의 실질적인 가장이었고 아빠는 경제적으로 무능력했고 엄마 입장에서 나는 그저 세상 물정 모르는 철부지 딸이 이었던 것이다. 엄마도 얼마나 힘들고 외로우셨을까. 우리 가족은 엄마가 없었다면 지금까지 유지되지 못했을 것이며 엄마도 이를 알고 있을 것이다. 문제는 엄마에게는 내가 성인이 되어도 어린아이처럼 보인다는 것이었다. 종종 엄마는 나에게 네가 할 줄 아는 게 뭐가 있냐고 말씀하신 적이 있다. 그때마다 나는 내가 아무리 열심히 살아도 엄마에게 딸로서 인정받지 못한다는 사실에 괴롭기도 했고 엄마의 그 말들을 나 스스로도 무의식적으로 수용해왔기 때문이었을까? 나는 뭘 해도 자신감이 없고 자존감도 낮고 불안하고 두려움도 많았다.


모든 게 완벽한 줄 알았던 엄마와 나를 사람 대 사람으로 분리시키고 나니 그제야 나를 완전한 객체로 바라볼 수 있게 되었다. 그동안 엄마와 이어져있고 의지해왔던 모든 것들로부터 자유로움을 경험하게 되었다. 그 누구보다 가장 혐오하고 미워하던 나를 이해하고 받아들이자 나와 진정한 화해를 할 수 있게 된 것 같다.


엄마의 기대를 만족시키지 못한다고 해서 결코 네가 가치 없는 사람은 아니라고. 너는 그 자체 만으로도 소중한 사람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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