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낮의 그늘 Nov 07. 2023

매주 도서관 가는 일기: 심리학으로 읽는 그리스 신화

23.09.09



그리스 로마 신화,라고 하면 즉시 떠오르는 그림이 있다. 내가 어렸을 때에는 홍은영 작가의 그림을 메인으로 한 그리스 로마 신화가 붐이었다. 덕분에 내 또래 중 그리스 신화 한 구절 모르는 사람은 없게 되었다. 지금도 나와 내 친구들은 그리스 신화의 등장인물에 서로를 빗대거나 대목을 인용하며 농담한다. 오로지 그때 읽었던 만화의 기억으로! 정말 굉장하지 않은지.


그때에는 신화의 내용이 성차별적이라거나 잔인하다는 생각은 안 했던 것 같다. 아. 조금 야하다는 생각은 했다. (엄멈머…) 아무튼 그때 홍은영작가의 만화 이후로는 어떤 방식으로 유럽 신화를 접하건 그때만큼 재미를 느끼지는 못하는 것 같다. 오늘을 제외하고.




<심리학으로 읽는 그리스 신화> 라니! 제목만 보고 이건 분명 재미있겠다, 고 확신한 것은 참 오랜만이다. 어쨌든 거진 알고 있는 이야기에 심리학을 덧댄다는 것이니까. 책은 조금 낡았고 표지는 지루했지만 (죄송합니다) 내용은 충분히 재미있었다.



책은 총 10개의 장으로 나뉘어 어떤 인물을 중심으로 진행된 이야기, 그리고 그 이야기에 얽힌 심리를 분석하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그 과정에서 우리가 일반적으로 알고 있던 신화 속 인물에 대한 오해(?)를 해소시켜주기도 한다.



전반적으로 조금 딱딱하기는 해도 재미있다! 가장 좋았던 부분은 당시 그리스가 억압했던 여성성을 분해해서 재조립한다는 점이었다. 또 ’인간의 성장을 위해서는 소위 남성성과 여성성으로 일컫어지는 두 가지 성향을 골고루 발전시켜야 한다 ‘는 결론을 내는 점도 인상 깊다. 무조건 어느 한쪽 성향만을 편들지 않는 책이 정말 좋다.


10명의 인물 중 가장 재밌게 읽은 부분은 역시 페르세포네 이야기이다.

(우리집에 소박하게 차린 작은 온실엔 데메테르와 페르세포네가 있다. 각각 스킨답서스의 모체와 유묘인데, 하여간 내 식물들에 이름을 붙일 정도로 이 모녀에 대한 나의 사랑은 각별하다.)



아마 나를 포함한 많은 사람들이 데메테르와 페르세포네를 하데스 놈 때문에 생이별당한 가여운 모녀로 알고 있을 것이다. 겨울의 혹독한 기근과 추위까지 모두 하데스 때문이라는 것도. 나 역시 ‘하데스에게 지하세계로 납치당한 가여운 페르세포네’에게 오랜 연민을 갖고 있었다.


그러나 책에서는 페르세포네의 ‘납치’를 ‘가출’, 즉 딸의 독립으로 전환한다. 놀라운 시점이다.



따라서 페르세포네의 유괴는 현실에서 일어난다면 비극적인 일이겠지만, 상징적으로 본다면 천진난만한 소녀가 어른으로 성숙하기 위해서는 어머니의 품을 떠나야 한다는 점을 암시하고 있다. 물론 데메테르 같은 어머니는 딸을 절대로 자신의 품에서 떼어놓지 않는다. 이런 성향을 가진 자식의 독립은 대개 딸로부터 시작되는 경우가 많다.

(중략)

페르세포네의 이야기에서 그녀가 들어갔던 하데스가 다스리는 지하세계는 소녀들이 성장하기 위해 하강해야 하는 공간을 의미한다. 하데스는 페르세포네를 납치해서 자신의 세계로 초대한다. 즉, 지하세계는 남성적이며 거칠고 잔인한 공간이다. 왜 소녀들은 이런 공간에 들어가야 할까?

(중략)

소녀들에게 필요한 것은 바로 지금껏 어머니와 지내느라 발달하지 못했던 남성적인 측면의 계발이다. 단지 바비인형처럼 착하고 예쁘기만 하다면, 아마 남성의 사랑을 받을 수는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의존하는 상대만 어머니에서 남편이나 남자친구로 바뀌었을 뿐 소녀는 인생을 독립적으로 살 수 없다.


책에 따르면 페르세포네가 석류알을 먹으면 안 된다는 사실을 그녀 스스로 몰랐을 리 없다고 이야기한다. 이제 내 안에서 페르세포네는 어머니와 강제 이별하게 된 가여운 소녀가 아닌, 독립성을 쟁취한 기특한 청년으로 바뀌었다. 아마 그녀 자신에게도 좋은 일이 아닐까?


지상에서 페르세포네는 한낱 처녀 신에 불과했다. 하지만 지하에 머물게 되면서 그녀는 지하 세계의 여왕으로 자리 잡게 된다.

 



책에는 더 많고 재미있는 메타포들이 많다. 그냥 메타포의 집합체다. 사람에 따라서는 끼워 맞추기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신화란 늘 그런 것이 아니던가요? 하나만 더 소개해보겠다.



이번에 소개할 신화는 죽은 아내를 되살리기 위해 지하세계까지 떠돌았던 순정남으로 이름난 오르페우스의 이야기이다. 여기에서 ‘진실된 사랑 어쩌고’ 대신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에 대처하는 올바른 방법’을 이야기하는 책은 오직 이 책뿐이라고 자신한다. 정말 짱이에요.


오르페우스는 뛰어난 음악적 능력을 가진 인간이지만, 인간이기 때문에 사랑하는 존재를 잃을 수 있다. 그는 자신의 능력을 발휘해 결국 하데스로부터 에우리디케를 돌려받지만… 지상 세계로 돌아오는 길에 뒤를 돌아보았기 때문에 다시 아내를 잃고 만다.


우리는 모두 살면서 사랑하는 존재를 잃는다. 그런 일을 당했을 때 가장 좋은 방법은 적당한 애도의 기간을 갖고 지나치게 자주 ‘뒤돌아보지 않는’ 것이다. 상실을 받아들이고 건강한 애도 기간을 가져야 한다.


또 하나. 오르페우스를 잔인하게 찢어 죽인 디오니소스의 신봉자들, 마이나데스. 그들이 상실의 슬픔에 젖어있던 오르페우스를 죽여야 했던 이유는 무엇일까? 이 역시 하나의 훌륭한 비유이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고, 어느 정도 다른 사람들과 협조해야 한다. 결속력이 없으면 사회는 해체되기 때문이다. 지금도 협력은 훌륭한 사회적 덕목이지만 당시 그리스에서는 특히 중요한 정의였다고 한다.


그런 의미에서 마이나데스는 오르페우스에게 슬픔을 그만 잊고 자신들(집단)과 함께 축제를 즐기자고 요구한다. 그러나 오르페우스는 오직 죽은 사람만을 생각하고 있기 때문에 이를 거절한다. 결국 마이나데스는 집단의 결속력에 해가 되는 개인을 식별했고, 이에 보복한다.


이런 시각에서 보자면 다소 살벌한 방식으로 오르페우스가 죽임을 당한 이유를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다. 이 신화를 지어낸 사람은 매서운 경고를 하고 있었다.


사회적 책임을 다하지 못하는 자는
죽음을 면치 못하리라.



그 외에도 헤라클레스와 테세우스 같은 영웅 신화를 심리학으로 분석하는 것도 아주 재미있다. 영웅을 영웅으로 만들기 위해 필요한 고난들 모두가 어떤 의미를 담고 있었다. 게다가 영웅들이 행복한 결말을 맞이할 수 있는 방법은 언제나 하나다. 오직 내면의 남성성과 여성성 모두를 성숙하게 다루는 것. 역시 언제나 균형이 진리인 듯하다.


어릴 때 그리스 로마 신화를 읽을 때 느꼈던 미묘한 불쾌감 (왜 헤라는 모르고 강간당한 여자를 공격할까, 여자 신은 왜 수가 적을까, 판도라는 왜 악녀로만 묘사될까)이 해소되기도 하는 책이었다. 당시 그리스가 남성권력중심 사회인 것을 감안하면 그들이 쓴 이야기가 다소 성차별적인 건 어쩔 수 없는 일이니까.


이 책이 2014년에 쓰였다는 점을 감안해 보아도 그런 묘-한 불쾌감을 해소해 주는 좋은 책이었다. 특히 프시케와 에로스의 이야기에서 프시케를 ‘남편을 믿을 줄 모르는 여자’로 표현하지 않고 오히려 에로스를 ‘마마보이’로 낙인찍을 때 더더욱 그랬다. 사실 여자 입장에서는 조금 통쾌하기까지 하다.


나처럼 그 옛날 그.로.신을 좋아했던 여자 아이들에게 꽤 좋은 에필로그가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오랜만에 아주 재미있게 읽은 심리학 책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매주 도서관 가는 일기: 내가 왜 살아야 합니까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