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시 현자가 되는 시간, <퍼스트맨>
깊고 장대하다. 달을 딛는 첫 발자국, 그와 함께 카메라는 하염없이 지평선을 응시한다. 그대로 한참 동안. 데이미언 셔젤은 <라라랜드>에서 뻔한 얘기를 뻔한 감정 그대로 사람을 미치게 만들었다. 그러나 이번 역시 같은 뻔한 얘기지만 그 '어떤 것'을 거부한다. 진부한 장치들은 죄다 컷-아웃 된 느낌이다. 예상되는 다음 장면, 이쯤되면 깔려야 할 OST, 뜨겁게 마무리 되는 환호와 갈채는 처절히 거세되었다 외면되었다. 아예 없다. 세계 최고 브레인 NASA의 고도화된 끈기와 집념, 공산주의 소련과 맞장을 떠야하는 평화수호자 미국의 결단, 인류 최초의 달착륙을 위한 라이언 고슬링의 눈물겨운 사투, 달표면 위 오케스트라가 장엄히 연주해야 할 성조기, 무사 귀환과 감동의 키스. 기대하지 마라, 그 어느 것도 없다.
데이미언 셔젤은 철저히 ’있는 그대로에’ 집중한다. 달을 향해 가는 노정은 얼마나 고된지 '날 것'으로 소리친다. 지금 당신이 앉아 있는 장소가 푹신한 극장 소파가 아니라 이제 곧 질식사 할 우주선 실내라고 호소한다. 사랑하는 아내와 자식들, 따뜻한 식탁, 꼭잡은 손과 미래...그게 다 무슨 소용인가. 이놈의 우주복은 왜 이렇게 무거우며, 우주선 입구는 뭣하러 좁아 터지게 만들었으며, 알아 먹지도 못하는 경고장치는 뭘 알고 만들기나 한건지, 흔들리고 흔들리고 또 흔들리며 이 숨막히는 우주선은 당장 10초 후에 펑하니 터질 지도 모르는데 니가 만든 휴머니즘 따위가 뭔 의미겠는가. 이 격정의 과정은 달 표면의 적막과 병치되며 '삶'이라는 질문으로 관객을 몰아 넣는다. 부끄럽고 겸허해지는 순간이다.
가장 인상 깊었던 장면은, 달에서 보는 지구의 모습이다. 마치 지구에서의 초생달과 닮아 있다. 달에서 보는 지구, 저 별 것 없는 행성 안에서 얼마나 많은 인간들이 부질없는 욕망의 카니발을 찍어내고 있는가. 내 옆의 사람은 누구인가, 나는 저 지구 안에서 무엇하며 살고 있는가, 오늘 아침에 좋은 책을 읽었는가, 한 끼 점심을 허기의 사료로 대하진 않았는가, 넌 참 좋은 사람이라는 얘기를 해줬는가, 농담이라도 지겹지만 사랑한다고 얘기해 보았는가, 자려고 누우면 발끝부터 뿌듯함이 몰려오는가. 존윌리엄스가 <스토너>에서 윌리엄을 통해 물어봤던 말, 난 무엇을 기대했나. 5초 남짓한 장면에서 난 잠시 몽크가 되었다.
그리고 마지막 장면이다. 스포일이 될 거라 얘기하진 못하지만 몇 년 새 영화 중 단연코 최고의 엔딩이다. 절제된 감정을 절제된 스타일로, 유리면의 손자국과 함께 담백히 서술한다.
엔딩과 함께 사무치게, 아내가 사무치게 보고 싶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