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번째. 홍보팀 직원들을 향한 연대와 위로의 프롤로그
회사글. 적당한 용어를 찾기 위해 갖가지 방법을 동원했지만, 딱 떨어지는 말을 찾을 수 없었다. 대체 회사글이란 무엇인가. 물론 표준어도 아니며 위키백과에도 없다. 괜히 이걸 주제로 삼았나 싶은 생각이 들었지만 그만큼 유니크하다고 자위하기로 했다. 각설하고 회사글을 나름 좀 쉽게 풀어쓰면 대충 아래 정도로 설명할 수 있겠다.
[회사글 : 회사의 사업 영위에 관여된 내부 또는 외부 구성원을 대상으로 각종 정책수립·변경, 행사 기념, 위기관리 등 다양한 공무에 관한 해설, 공표, 설득을 목적으로 작성된 회사의 공식 입장글]
(오 신이시여. 진정 이 디파인을 제가...)
저 문장을 쥐어짜는 동안 세명의 팀원이 결재를 받아 갔다. 정리하면 회사글이란 회사에서 (무게감 있게) 다루는 장르불문의 탑다운 스트레스 부스팅 다큐먼트를 뜻한다. 영어 문법이 맞니 안 맞니 따지지 말자. 회사글 너머 차오르는 천불 앞에선 무의미한 논쟁일 뿐이다. 그뿐인가. 회사글은 잘 계획된 일정 속에 찾아오지도 않는다. 매번 이런 식이다.
제발 그놈의 미안한데 좀 붙이지 말자. 그리고 이놈의 숙제는 보통 아래의 루틴에 따른다.
- 왜 퍽하면 나한테만 쓰라고 하는지 빡침이 몰려온다. 이런 건 너님들이 써야 하는 거 아닌지 한심할 뿐이다.
- (옆에 다 들리라고) 한숨 한번 크게 내쉬어 준다. 허나 딸깍딸깍 마우스 소리만 들린다. 분명 다들 놀고 있음이 틀림 없다.
- 일단 쓴다. 키보드를 두들긴다.
- '안녕하십니까.' 까지는 썼다. 순간 내가 이러려고 토익에 복수전공에 어학연수에 알바에 학자금 대출에... 깊은 자괴감이 든다.
- '에라이 ㅂㅅ들아!'를 속으로 딱 세 번 정도 외친뒤 검색한다. 대충 80~90년 냄새가 짙은 샘플을 고른다.
- 젠장, 원본을 받으려면 결제를 하란다. 어쩔 수 없다. 구글링이다. 기왕 온 거 좀 더 레트로하고 인더스트리얼한 text 파일을 확보한다. 대부분의 것들엔 앙망, 혜량 등 삼국지 게임에서나 본 듯한 이름이 가득하다. 아득하다.
- 대충 주어와 단어만 갈아 끼고 출력한다. 쩐내 솔솔 결재판에 이쁘게 크리핑한다. 인상만 쓰고 있는 팀장에게 들고 간다.
- 고요한 사무실. 맞는다. 시원하게 비를 맞는다. 늘 그렇듯 수순이다.
- 약 10회가량 무한반복 공정에 착수한다. 수정~출력~보고~한숨~첨삭, 수정~출력~보고~한숨~첨삭, 수출보한첨 수출보한첨 수출보한첨...
- '아니 밥도 안 주고 일을 시키나'라는 생각에 울컥한다. 용기를 내어 의자에 기대 기지개를 쭈욱 필 즈음... 한줄기 은혜로운 목소리가 들려온다. 광채가 나는 듯 하다.
- "에이 됐어, 김대리! 쓰던 거 멈추고 그냥 내 이메일로 보내! 들어 가라고! 아니 무슨 글을 대체..."
- 퇴근한다. 이 시간 근처서 아직 술 먹는 동료가 분명 있을 것이다. 카톡을 뿌려본다.
쓰고 보니 슬프다. 위 상황을 두어번 이상은 경험했을, 회사에서 글 좀 쓴다고 말을 듣는 당신을 생각하며 연재를 시작한다. 오늘부터 다룰 글들은 십사 년 직장생활에 비춘 나를 위한 위로이기도 하다. 또한 지금도 회사글에 쩔어있는 당신을 위한 연심이다. 비루하고 일천하지만 나름의 경험들을 더미로 만들어 더 쉽고 시원한 회사글 쓰기 공략집을 만들려 한다. 생각해 놓은 꼭지는 십 수 가지지만 글로 표현될 것들은 열 가지가 될지 스무 가지가 될지 모르겠다. 일단 써보면서 (과연 있을지 모를) 독자들의 의견을 듣고 분량도 양식도 조정해 보려 한다. 어차피 서로 위로받고 토닥거리자고 하는 짓인데 몇 마디라도 거들어준다면 심히 감사할 것이다.
글은 이렇게 쓸 수도 있고 저렇게 쓸 수도 있다. 누구는 제품을 만들고 가격을 잡으라 하지만 누구는 가격을 잡고 제품을 만들라 한다. 이는 타겟, 컨셉, 차별화 따위의 전통적 방식 위에서 극히 ‘개인적인 경험’을 관여시켜 '그럴싸한 식견’으로 둔갑시키는 전형적인 꼰대 프로세스다. 회사글에 있어선 나 역시 꼰대다. 미리 밝힌다. 내가 다룰 글들 모두 내 경험에 기초한 이야기이며 글로 다듬다 보니 좀 더 '있어' 보이기 위해 적당히 야료가 섞일 것이다. '이 양반은 이렇게도 쓰는구나.' 딱 이 정도면 만족한다. 글은 결국 개인이 쓰는 것 아닌가.
오늘 1회 차는 내가 앞으로 다룰 글들의 룩앤필 정도로 준비했다. 다시 말해 앞으로 연재될 글들을 미리 엿보는 어설픈 썰 정도다. 다음의 2회 차는 회사글 쓰기 압축판이라 보면 되겠다. 사실 별거 없다. 당신과 나 모두 매우 익숙한 구석인데 이제까지 회사글의 프레임에서 진지하게 다루지 않았을 뿐이다. 글쓰기에 늘 도움을 받았던 강원국 씨나 유시민 작가가 이 분야는 아직 건들지 않았다. 모르겠다. 일단 시작해 보자.
[상황 설정]
압축판의 이해를 돕기 위해 가상의 회사를 아래와 같이 설정해 본다. 웃지 마시라. 당신 주위의 흔한 현실이기도 하다.
회사 개요 : 법인명 (주)밋츠(MITZ, 밀레니엄 아이티 테크놀로지 존), 2000년 설립(창립멤버 5명, 자본금 0.5억), 2017년 말 기준 연매출 1,500억(영업이익 140억), 전 직원 140명 규모 강소기업
업종 : IT 솔루션 개발 및 에이전시, 최초에는 미쿡의 RITZ 크래커와 같이 '쉽고 맛있게 손이 끊이지 않는' 검색 포털을 만들자라고 시작했다가 초반 Daum의 한메일 역공에 처참히 무너짐. 이후 외주를 대량 당겨와서 월급이라도 나눠갖기 위해 개발 수주 사업을 시작했다. 당장 캐쉬가 부족해 닥치지 않고 이것저것 다 하다보니 2005년부터 급격히 사세가 커져 현재는 업계 2위 IT 솔루션 개발사가 되어 있음
대표이사 : 기형돈 대표, 1970년 개띠, 대학 졸업 후 2번의 사업을 말아먹은 뒤, 벤처 붐이 일어나던 2000년대 초반 정부지원금을 토대로 31살에 창업함. 4명의 선후배 지인들과 의기투합하여 창업하여 밤낮으로 달렸으나 현재는 그중 1명만 남아있음(男, 전무, 3살 아래 동향의 직속 과후배, 회사에서 밋순실로 불림). 이명박근혜 시대에는 심심하면 종북척결을 부르짖다가 정권교체 후 영화 <1987> 관람 뒤풀이에서 눈물을 흘리며 전대협 진군가를 부르는 전형적인 감정 충동파 (리더가 아닌) 보스. IT기업인데 경영학과 출신이라 전문적인 지식은 없음. 올림픽 모토를 경영에서 십분 강조함. 더 빨리 더 높이 더 멀리...
소속 조직구도 : 마케팅 본부 산하 홍보팀. 본부장은 밋순실, 팀장은 1년 새 2번이 바뀌고 현재 공석. 채워도 못 버틴다고 보는 게 맞음. 팀원은 차장 1명, 과장 1명, 그리고 나. 차장은 팀장 공석인 틈을 타 일주일에 4~5번은 기자 미팅을 핑계로 사무실에 없음. 과장은 뭐든지 나에게 넘기는 전형적인 토스맨. 각종 글쓰기는 나와 밋순실의 직대면으로 이뤄짐. 항상 그런 날에 토스맨은 '미안한데...'로 시작해서 어린이집에 아들을 데리러 간다며 튐.
이번에 써야 할 글 : 창립 20주년 기념사, 등기부등본 상 회사 설립은 2000년인데 기순연대(기대표-밋순실) 주장에 따르면 1999년 3월 기대표의 하바나 선언(불광동의 하바나라는 지하 bar에서 창립멤버끼리 도원결의 했다고 함) 이후에 사업을 시작했으므로 실제 창립은 1999년이라고 함. 하여 올해 햇수로 20년 차가 되니 무조건 20주년 기념식을 해야 한다고 우김. 어쨌든 하명을 받들어 기념사가 나와야 함
자 미션은 던져졌다. 20주년이 아니지만 20주년으로 생각하며 20주년 기념사를 써야 한다. 일단 책상 위를 깨끗이 치우고 A3 한 장, 볼펜을 준비하자. 스케치부터 시작하자. 일단 쓰자. (왜 A3 인지는 나중 다른 꼭지의 글을 통해서 다루도록 한다)
[To Be Continued]
[2회 차 글 안내] : "(주)밋츠 20주년 기념사 기똥차게 써보자!"
1. 인터뷰를 반드시 한다
2. 강력한 도입부로
3. 세 가지, 네 가지 이렇게 몇 가지로
4. 글 쓰기 전에 핵심 주제어(에센스 워딩)를 만든다
5. 퇴고의 목적은 줄이는 것. 최대한 짧고 단순하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