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시 회사 서비스의 긴 실문조사를 두고 팀내에서도 의견이 여러 번 갈렸기 때문이다. 아래는 예시로 재구성한 그때의 상황이다.
· 사용자는 회원가입 즉시 설문조사를 시작하게 된다. · 서비스를 이용하려면 설문조사를 거쳐야한다. · 설문조사를 다 마치려면 평균 5분이 소요된다. · 문항을 더 줄일수는 없다. · 설문조사 결과는 기반 데이터가 되므로, 대충 끝낸다면 사용자 맞춤 서비스를 누릴 수 없다.
너무 극단적인 예시일수도 있지만, 오직 텍스트만 수정할 수 있는 상태의 화면을 넘겨받는 일이 생각보다 많다.
이때 UX 라이터는 어떻게 사용자의 이탈을 막아야 할까?
우선 각 문항을 최대한 간결하게 편집한다. 줄이고 줄이고 또 줄이기라도 해야 기나긴 화면에 사용자가 지치지 않는다(덜 지친다).
그럼에도 5분 정도가 필요한 설문이라면 문항 수가 적지 않을 것이다. 긴 분량을 피할 수 없다면 구조화가 필수다. 화면별 문항은 짧게 다듬었으니 카테고리별로 중간 페이지를 넣는다. 앞으로 어떤 질문이 이어질 것인지, 그 질문에 모두 답했을 때 사용자 본인에게 어떤 이득이 있을 것인지 간결하게 덧붙인다.
문제는 그 다음이다.
아무리 짧고 나에게 도움이 된다해도, 질문이 끝없이 이어진다면 사용자는 결국 이탈하지 않을까?
여기서 세 개의 선택지가 있다.
사용자에게 설문조사 소요 시간을 사전 안내한다
VS
문항 위로 프로그레스 바만 넣는다
VS
아무런 언급도 하지 않는다
첫 번째. 사용자에게 소요 시간을 사전 안내한다면, 사용자는 충분한 시간적 여유가 있을 때 마음의 준비를 한 상태로 설문에 임하게 된다. 시간이 걸린다는 걸 인지했기에 중도 이탈 가능성도 낮을 것이다. 단, 그만큼 진입률이 낮아질 수 있고 서비스 초입부터 반감을 느끼게 만들 수도 있다.
두 번째. 프로그레스 바만 넣는다면 사용자는 본인이 무언가를 하고 있다는 성취감을 시각적으로 느낄 수 있다. 설문에 답할수록 진행률이 높아지니 게임을 하는듯한 재미 요소를 찾을 수도 있다. 하지만 사람마다 느끼는 시간의 정도는 모두 다르기에, 뒤로 갈수록 지루함을 느낄 확률이 크다.
세 번째. 지금에 와서야 하는 생각이지만, 서비스가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면 결론은 두 가지일 것 같다.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게끔 모든 기획과 디자인과 개발 요소가 완벽하게 이뤄져있거나, 사용자가 말없이 이탈하거나.
놀랍게도 의사결정권자는 세 번째 선택지에 힘을 줬다.
'알려주면 하기 싫고, 하기 싫으니 이탈한다'는 것이 그의 의견이었다.
나는 그 의견을 더 강하게 설득할 수 있는 몇 가지 이론을 나중에야 알게 됐다.
예상 대기시간을 알려주는 것은 '싫은 사실'을 명시하는 것이 아니라 사용자의 인식을 관리하고 체감시간을 개선하려는 노력의 일환이다. 오히려 이유가 설명되지 않은, 불확실한 기다림이 더 길게 느껴진다. 우리가 은행에서 장시간 기다리더라도 바쁜 은행원, 북적거리는 대기 의자, 줄어드는 대기번호, 손에 들린 대기표를 보면 조금이라도 더 기다림을 납득할 수 있는 것처럼.
그러니 서비스는 침묵해서는 안 된다. 정확하게 대기 정보를 전달하고, 그럼에도 서비스를 계속 이용할 것인지 사용자가 선택하도록 도와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