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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준 May 24. 2022

나는 나에게 신호를 보내고 있었다.

넌 그 고통을 이겨내고 이곳에 꿋꿋이 서게 될 거라고.



I had a feeling so peculiar
that this pain would be for evermore.

이상한 기분이 들었어.
이 고통이 영원할 거라는 그런 기분.


칠흑같이 어둡고 깊었다. 내면의 바다 깊은  어딘가 잠겨있었다. 추웠다. 삶이 얼어붙었다. 살갗은  없이 떨려왔다.    잘못 쉬었다간 온몸에 금이  산산조각이   같았다. 그저 숨을  참을 뿐이었다.


한겨울이었다. 사는 게 시렸다. 숨을 쉬어야 하는데 이가 덜덜 떨려서 어떻게 해야 할지를 몰랐다. 몰아치는 눈보라 속이었다. 두려울 정도로 하얀 세상 저 편, 희미한 빛 속에서 누군가를 보았다.


가야 했다. 사람인지도, 누구인지도 모르지만, 그냥 왠지 가야 할 것 같았다. 가야 하는데, 발걸음이 떨어지지가 않았다. 그때 눈 속에 파묻힌 발을 꺼내게 해 준 게 '글쓰기 100일 프로젝트'였다.


글을 썼다. 처음엔 내 발만 멍하니 바라봤다. 막막한 설한 속에서 지금 내가 어디에 있는지 알 수 있었다. 지나온 발자취를 돌아봤다. 어디서부터 잘못된 건지 돌아봤다. 시린 바람에 눈앞이 흐려지도록 돌아보고 또 돌아봤다. 과거의 난 무엇을 위해 여기까지 온 것인지, 아득한 기억 저 편까지 돌아봤지만 발자국은 이미 사라져 있었다.


발걸음을 떼도 될지 하는 망설임 속에서 첫 발자국을 앞으로 뗐다. 더 이상 이곳에 숨 죽이고 있기는 싫었다. 어디로든 나아가고 싶었다. 그래서 나를 위해서 썼다. 또 나를 위해서 썼다. 또 다른 나를 위해서 썼다. 그러다 다른 이를 위해서 썼다. 나와 같이 눈보라 속을 걷고 있을 누군가를 위해서 썼다.


어느새 100번째 글이다. 100번의 발자국을 찍었다. 한겨울에서 한여름이 되었다. 뒤돌아 한 발 한 발 애틋이 찍어온 발자국들을 바라본다. 저 너머에 있는 첫 번째 발자국까지 가만히 바라본다. 저 멀리 휘몰아치는 눈보라 속으로 누군가 보인다. 막막한 설한 속에서도 애쓰고 있는 누군가가 보인다.


그건 나였다. 지난날 숨을 죽이던 나였다. 그제야 알았다. 나는 나를 보고 앞으로 나아왔다는 걸. 내 삶이 난파된 배처럼 산산조각 나던 때에도, 깊은 내면의 바닷속에 잠겨있던 때에도, 희미한 빛을 보고 천천히 발걸음을 옮길 때에도, 나는 이곳에서 나를 기다리며 서있었다는 걸.


끝날 것 같지 않은 고통 속에서 허덕이던 나에게 신호를 보내고 있었던 것이다. 그렇지 않다고. 그 고통은 영원하지 않다고. 넌 그 고통을 이겨내고 이곳에 꿋꿋이 서게 될 거라고.


I swear you were there
내가 확신해, 넌 정말 그곳에 있었어.


글쓰기 100일 프로젝트가 끝이 났다. 더운 숨을 쉬게 하는 한더위 속, 나는 또다시 저 너머의 나를 바라본다. 그런 나를 바라보고 있을 저 편의 내가 신호를 보내온다. 삐걱거리는 발걸음일지라도 그 발을 떼어보라고. 잠시 숨을 고르고 나는 또 나아갈 것이다. 끝이 아닌 시작을 하는 나를 응원하고 있을, 저 너머의 나에게로.


I had a feeling so peculiar.
This pain wouldn't be for Evermore.

이상한 기분이 들었어.
이 고통은 영원하지 않다는 그런 기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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