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유제 Apr 29. 2020

지구가 태양을 돌 듯

아이작 아시모프 「전설의 밤」과 SF 창작론.


「전설의 밤」 1941년에 발표된 아이작 아시모프의 단편 소설이다. 아이작 아시모프가 20대 초반에 발표한 출세작이다. 「전설의 밤」은 아이작 아시모프 만의 속도감 있는 전개가 매력인 작품이며, 그의 창작 방법론이 잘 드러나는 작품 중 하나다. 



일필휘지의 이야기꾼, 아서모프

 아이작 아시모프의 ‘SF론’과 ’SF창작론’ 에세이를 모아 놓은 책 『아이작 아시모프 SF 특강』에서 아이작 아시모프는 그가 아이디어를 떠올린 방법과, 소설을 쓴 방식, 그리고 소설의 서스펜스를 확보하기 위한 전략을 설명하고 있다. 


 아이디어를 떠올린 방법은 그가 더블데이 출판사의 편집주간인 제니퍼 브렐의 요청에 따라 ‘파운데이션’ 시리즈나, ‘로봇’시리즈, ‘제국’ 시리즈가 아닌 완전히 독립적인 시리즈를 쓰는 과정을 통해 볼 수 있다. 먼저 그는 그가 썼던 시리즈에서 행성 간 여행을 문제 삼고 있는 작품이 하나도 없다는 것을 발견한다. 그래서 이번에는 최초의 행성 간 여행을 그려내고 행성 간 여행이 정착되는 과정을 쓰기로 한다. 그러기 위해 그는 태양계 행성 전체에 사람들이 이주, 정착하고 지구가 노화되어 몰락하는 상황을 상상한다. 달 궤도와 소행성에 상당수의 우주 정착지가 건설되었으나, 정착지는 지구와 적대적인 관계다. 이것이 행성 간 여행의 연구를 촉진하게 하고, 태양계를 벗어나 새로운 사회를 건설하려 한다면 어디를 선택할지 생각한다. 논리적으로 생각하면 가장 가까운 항성인 센터우루스 자리의 알파성을 떠올릴 수 있다. 하지만 그건 너무나 논리적이라 재미가 하나도 없다고 아시모프는 말한다. 그래서 아시모프는 태양계와 센터우루스 사이에 또 다른 항성이 있다고 가정하였다. 이런 식으로 생각의 꼬리를 잇는 방식으로 아시모프는 이야기의 배경을 설정하고, 이어서 이야기의 위기와 등장인물을 정한다. 질문에 답을 달고 또 새로운 질문을 이어가면서 만들어지는 아시모프의 이야기는 그렇기 때문에 하나의 결말을 향해 속도감 있게 달려갈 수 있었다. 


「전설의 밤」의 서술 전략.

 아시모프는 예술적이고 현학적인 문장의 작가는 아니다. 짧게 읽히고 쉽게 이해할 수 있는 단문이 아시모프 문장의 특징이다. 이런 문장 덕분에 아시모프의 스토리가 주목받을 수 있었다. 「전설의 밤」에서도 이런 특징을 발견할 수 있다. 「전설의 밤」은 싸로 대학교의 국장이자 천문학자인 아톤77과 신문기자 테레몬762와의 만남에서 시작한다. 그리곤 구체적인 인물 묘사나 주변 설명없이 바로 둘의 대화를 통해 이야기를 전개시킨다. 이런 식으로 빠르게 이야기가 전개된 덕에 「전설의 밤」을 읽는 독자들은 쉽게 이야기 속으로 진입할 수 있다. 


 서사 속 인물 묘사와 상황 설명도 인물의 행동으로 자연스럽게 이루어진다. 아톤77은 “이제 네 시간도 지나지 않아서, 우리가 알고 있는 바로 이 문명은 종말을 맞게 된다네.”라고 상황을 말해주며, 아톤77이 창밖을 바라보는 장면에서, 라기쉬 행성의 여섯 개의 태양 중 베타만 남은 상황을 설명한다. 


 「전설의 밤」은 종말이라는 상황 속에 천문학자와, 기자, 그리고 군중의 모습을 그려낸 소설이다. 아서모프의 에세이에 따르면 아서모프는 태양이 사라져 종말 하는 세상이라는 상황을 먼저 떠올렸을 것이다. 그리고 어떤 인물들을 통해 이 상황을 보여주어야 하는지를 고민하고 천문학자와 기자 그리고 군중을 선택했을 거다. 상황이 독특하고, 환상적이라고 해서 과학 소설이 되는 건 아니다. 과학 소설은 과학적 상상력을 담은 소설이기 때문에 소설적 요소가 필요하다. 특히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지가 중요하다. 아서모프는 어떤 인물들을 등장시키는지를 고민함으로써 자신이 말하고자 하는 바를 이야기에 담았다. 


 아톤77은 종말을 과학적으로 예지한 선지자다. 반면 그의 조수인 비니와 기자인 테레몬762는 종말을 믿지 않는다. 그리고 종말을 주장하여 사회를 혼란시킨 연구소에 군중들은 분노하고 있다. 종말을 확신하는 건 아톤77 뿐이고, 비니와 테레몬762는 종말을 확신하지 못하고 있다. 오히려 군중들의 분노라는 더 가까운 공포에 흔들리고 있다. 상황을 다르게 인지하는 아톤77과 테레몬762의 갈등이 극의 앞부분을 끌어나간다. 


 과학 소설에서 중요한 것은 사실성이다. 여기서 사실성이란 입증된 과학적 사실을 증거로 이야기에 정당성을 부여하는 것이다. 소설에 사실성을 부여하기 위해서는 소설 속에서 어느 정도 과학적 원리를 설명해야 하는 필요가 있다. 실제 과학적 사실과 부합하는 근거가 소설 속에서 작용할 때 독자는 소설의 내용에 더욱 공감할 수 있다. 


「전설의 밤」은 반나절 동안의 일식으로 행성이 종말을 하는 순간을 담은 SF소설이다. 소설에서 중요한 사실성은 일식이 어떻게 발생하는가, 그리고 일식이 어떻게 해서 종말을 야기하는 가에 대한 설명이다. 이 두 가지를 설명하기 위해 아시모프는 몇 가지 장치를 소설에 추가했고, 장치들의 작용을 통해 더 이해하기 쉽게 그리고 구체적이게 과학적 원리를 설명할 수 있었다. 


 아톤77과 쉬린의 연구에 따르면 라기쉬 행성에서는 공전 주기에 따라 주기적으로 태양이 사라지는 현상이 생기고, 그때마다 문명이 종말했다는 것이다. 쉬린은 라기쉬의 위성이 하나 남은 태양 베타를 가리는 상황을 설명한다. 일식은 라기쉬의 전 지역에서 하루의 절반동안 일어나고, 2049년 마다 한 번씩 반복된다. 쉬린은 이런 과학적 원리를 상대적으로 구체적으로 설명한다. 아시모프는 이런 구체적 설명을 대사에 담기 위해 두 가지 장치를 마련했다. 하나는 천문학자인 아톤77이 설명하지 않고, 심리학자인 쉬린이 과학적 원리를 설명함으로써 더 대중 친화적인 용어를 사용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두번째 장치는 독자보다 중력과 천체에 대한 이해가 적은 테레몬762이라는 인물에게 설명을 함으로써 아시모프는 충분히 구체적으로 라기쉬 행성의 종말에 대한 과학적인 원리를 이야기할 수 있었다. 


 테레몬762는 “석기시대는 있었습니까?”라고 물으며 라기쉬 행성의 인류 뮨명이 가진 인류학적인 지식이 어느정도 인지를 드러내고, “그것이 아주 최근의 성과라는 것 외에는 모릅니다. 그리고 아직은 그렇게 잘 정리되지 않았다면서요.”라고 중력에 대해서는 정확히 인지하지 못하는 모습을 보인다. 기자인 테레몬이 석기시대에 대해서는 알면서 중력에 대해서는 정확히 모른다는 것은 라기쉬 행성의 문명도 아직 아톤77의 연구를 정확히 이해할 수 없다는 것을 반증한다. 그리고 독자에게 더 구체적으로 라기쉬 행성의 상황을 설명할 수 있는 장치로도 작용했다. 


 쉬린은 테레몬762 에게 커튼을 닫게 하고, 테레몬762는 어둠 속에서 길을 더듬으며 점점 공포에 질린다. 테레몬762는 “벽들이 제게로 다가오는 것 같았습니다.”라며 어둠의 공포를 구체적으로 설명한다. 쉬린은 ”이건 그냥 암실에 지나지 않네.”라고 말하는데 암실에서도 느낄 수 있는 어둠의 공포가 전 행성이 암흑이 된 순간 확대될 가능성을 말한다. 쉬린은 2년전 있었던 정글러 시 백 주년 박람회에서 수수께끼의 터널을 만들어 암흑에 대한 공포를 실험한 이야기를 덧붙인다. 단지 15분 동안 암흑의 터널을 지나오는 놀이기구일 뿐이었는데도, 사람들이 죽는 사고가 발생했고, 그뿐만 아니라, 건강하게 나온 사람들도 건물 안으로 들어가려고 하지 않는 심리적 장애를 보였다. 이런 설명을 통해 아서모프는 라기쉬의 일식이 어떻게 문명의 종말을 야기할 수 있는지 설명하고 있다. 아서모프는 쉬린이라는 심리학자를 등장시키고, 아톤77을 퇴장시킴으로서 심리학적 원리를 설명할 수 있었으며, 천문학적 원리도 상대적으로 더 쉽게 설명할 수 있는 장치로 활용했다.


 태레몬은 쉬린의 설명을 듣고도 라기쉬 행성의 종말을 이해하지 못한다. 이런 테레몬의 의문은 독자의 의문과 닿는다. 기존에 생명체의 대 멸종의 이유로 설명된, 운석 충돌이나, 대 홍수와 같은 친숙한 상황이 아닌, 일식으로 인한 암흑이 단지 반나절 발생하여 종말이 야기된다는 것은 쉽게 이해되지 않는다. 테레몬이 종말을 이해하지 못하는 덕분에 쉬린은 더 구체적으로 종말의 방식을 설명한다. 


 암흑 속에 있게 되면 다른 어떤 것보다도 사람이 원하게 될 것은 빛이다. 그렇기 때문에 사람들은 뭔가를 불태우게 될 것이고, 도시와 모든 나무들이 화염에 뒤덮일 것이라고 말한다. 잠시동안의 일식이 빛을 갈구하는 인간의 본능을 자극하고 사람들은 어디든 불을 질러 문명의 종말을 야기한다는 결론이다. 아시모프는 쉬린의 입을 통해 종말의 상황을 구체적이고 설득력 있게 담아냈다. 


 쉬린은 종말을 의심하는 테레몬을 이해시키지만, 아모트와 파로24가 쉬린의 연구를 반박하는 실험결과를 들고 옴으로써 소설에 긴장감이 조성된다. 파로24는 직접 거대한 암실을 만들고 스스로를 그곳에 있게 하였지만, 둘 다 미치지 않았다. 쉬린의 예상이 빗나가는 것은 군중을 선동한 대가를 치르게 될 것이라는 뜻이다. 종말이어도, 종말이 아니어도 모두 심각한 상황이 초래하는 긴장감속에서 침입자가 등장한다.


 쉬린과 연구소 사람들이 침입자에 정신을 쏟고 있는 사이, 테레몬은 일식이 시작되는 것을 목격한다. 빛이 사라진다고해서 종말이 올 거라는 쉬린의 말을 믿지 않던 테레몬도 일식이 시작하면서 공포를 느낀다. 테레몬을 따라 반나절 동안의 암흑이 종말을 야기한다는 과학적 설명에 의심을 품었던 독자들도 실제 일식이 진행되고부터 벌어질 상황에 주목하게된다. 여기서부터 상황이 급격하게 전개된다. 테레몬은 “이 상황에 적응할 수 있게 시간을 좀 주십시오. 교수님은 두 달, 아니 그 이상 준비해 오시던 일 아닙니까?”라며 당황한 심정을 드러낸다. 


 일식이 이뤄지는 붉은 빛의 행성, 두려움에 떨고 있는 테레몬, 종말을 예언하는 컬트교의 묵시록을 외우는 컬트교도들의 이미지는 세기말적인 분위기를 만들어내고 대피소로부터의 연락을 통해 도시가 아수라장이 되어가고 있다는 소식이 전달된다. 공간은 점점 어두워지고, 기온은 내려간다. 쉬린은 “암흑 속에서 인간의 마음은 빛이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이라고 느끼게 된다네, 빛에 대한 이러한 환상 때문에 별들이 실제로 존재한다고 믿게 되는 것이지. 다른 말로 하면,” 이라고 말하면서, 별은 광기의 결과이지 원인이 아니라는 말을 한다. 결국 종말은 일식이 원인이 아니라 사람들의 광기가 원인이라는 것. 아서모프는 종말에 대한 새로운 접근을 통해 과학적 사실을 바탕으로한 현상과 종말이라는 재난을 연결했다.


 아서모프가 처음부터 인간의 광기로 인해 과학적 현상이 종말을 이끄는 이야기를 떠올렸는지, 아니면 일식으로 인한 종말을 먼저 떠올리고, 이에 대한 설명을 하는 과정에서 인간의 광기를 말하는 것인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종말을 예언하는 아톤77과 쉬린, 그리고 그들에게 계속해서 의심을 품는 테레몬762의 대화를 통해 구체적으로 새로운 종말 이야기를 만들어냈다. 


한계

 소설에서 군중들이 연구소로 몰려오는 가장 극적인 상황은 47페이지 중 41페이지에 등장한다. 이야기의 5분의 4에 해당하는 지점이다. 하이라이트가 오기에 적절한 위치이지만, 그 전까지의 이야기가 전부 테레몬과 교수들의 대화라는 점이 흥미롭다. 그들이 대화하는 사이에도, 연구원들이 새로운 실험 결과를 가져오거나, 컬트교도들이 침입하거나, 계기 일식이 시작되는 등의 사건이 발생하기는 한다. 그러나 이야기를 전개하는 주된 동력은 테레몬762와 쉬린이 종말의 가능성에 대해 논박하는 것이다. 다소 정적이면서도 구체적인 둘의 대화는 아서모프식 글쓰기의 장점이자 한계라고 할 수 있다. 


 아서모프는 자신의 에세이를 통해, 상황을 설정하고, 자신이 생각하는 적합한 인물을 주인공으로 삼아 빠르게 이야기를 전개한다고 말한다. SF소설은 과학적 사실성을 보장하기 위해 과학 원리에 대한 설명이 필요하며, 독자가 충분히 이해할 수 있어야 한다. 「전설의 밤」에서 아서모프는 이런 설명을 하기에 적합한 인물로서 기자 테레몬762를 주인공으로 설정했다. 사회 현상과 과학적 논리를 비판적으로 수용하는 테레몬 덕분에 다른 등장인물들로 하여금 독자의 의문점을 모두 설명할 수 있었고, 이야기에서 가장 극적인 순간으로 빠르게 전개할 수 있었다. 여기에 아서모프의 읽기 쉬운 문장과, 인물 묘사, 배경 묘사등 불필요한 설명은 오히려 과감히 생략하는 단순성을 통해 독자가 더 쉽게 과학적 현상에 대한 논쟁에 참여할 수 있게 만들었다. 


 그러나 과학적 현상과 그에 따른 사회의 모습을 특정 인물을 통해 관찰하는 서사는 이야기를 진부하게 만들었다. 소설은 심리적 갈등을 중심으로 전개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공상과학적인 사건들이 소설에서 효과적으로 작용하지 못했고, 소모적으로 나열되었다. 또한 주인공 테레몬762가 적극적으로 행동하는 모습이 없이 질문을 하고 공포의 감정을 느끼는 대서 그쳤다. 


 소설의 결말 또한 앞에서의 전개와는 조금 엉뚱하다. 일식으로 태양의 빛이 완전히 사라지자, 그동안 보이지 않았던 360개의 반짝이는 별들이 보인 것이다. 연구원들은 자신의 행성이 거대한 성단의 한 가운데에 있었던 것을 그제서야 알 수 있었다. 여섯 개의 태양 빛이 너무 강해서 우주의 별이 여섯 개뿐인 줄 알았던 라기쉬 행성의 과학자들이 알 수 없었던 사실이었다. 흥미로운 상상력이었지만, 앞에서 서술된 테레몬과 쉬린의 논쟁, 그리고 암흑의 공포와는 조금 떨어진 결말 같았다.


 아서모프의 소설 「전설의 밤」은 라기쉬행성에 일식이 도래하여 암흑이 되고, 행성의 과학자들이 종말을 예언하는 이야기다. 일식이 종말을 야기한다는 상상력과, 여섯 개의 태양이 떠 있는 밤이 없는 라기쉬 행성의 설정과 서사가 재치 있고 흥미로웠다. 또한 아서모프는 기자인 테레몬과, 심리학자인 쉬린 등의 장치를 통해 더 구체적이고 쉽게 과학적 원리에 대해 설명하였다. 다만 과학적 현상을 관찰하는 인물의 관찰로 그려낸 이야기는 다소 직선적이고, 마치 지구가 태양을 돌 듯 목적 없이 공전하는 듯한 느낌이 아쉽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