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자유전의 원칙을 둘러싼 문제들
농지의 소유구조를 어떻게 봐야 할 것인가는 1945년 해방 이후 농업계뿐만 아니라 사회에서도 첨예한 문제였다. 해방 이후는 소수의 지주가 점유하고 있던 농지를 어떻게 분배할 것인가가 주요한 논쟁이었다면 1980년대 산업화 이후 농지 소유를 누가 할 것인가가 논쟁의 핵심이었다. 그러나 2000년대 들어와서는 농지 보전이 농지법을 둘러싼 새로운 논제로 떠오르고 있다. 소작농의 폐지에서 경자유전, 그리고 농지를 어떻게 보전할 것인가는 한국 농지제도의 흐름을 보여주는 하나의 맥이면서 현재의 농지를 둘러싼 문제와 궤를 같이하고 있다.
지주의 땅을 분배하고 소작제도를 금지하도록 헌법에 명시했지만, 현재 48%의 농지가 임대해서 농사를 짓고 있다. 경자유전의 원칙을 확고히 하기 위해 헌법을 개정했음에도 불구하고 외지인, 즉 비농업인의 농지 소유가 문제가 되고 있고 이는 쌀직불금 부당 수령과 농지의 난개발로 이어지고 있다.
농지를 보전하는 것이 농민에게는 이익일 될 것인가에 대해서도 쉽게 답하기 어렵다. 2000년대 초반까지 대통령 선거에서 가장 핵심 농정공약은 농가부채 해결이었다. 그러나 2007년, 2012년, 2017년 대선에서 농가부채 해결은 핵심공약에 들어 있지 않았다. 농가의 소득이 올라서 농가부채가 줄었기 때문이 아니다. 전국의 농지 가격이 상승하면서 농가부채 상환능력이 높아지면서 농가부담이 줄었기 때문이다.
농지를 보전해서 농사를 짓게 하는 것보다 땅값이 올라서 농지를 파는 게 농민에게는 더욱 좋을 수 있다. 하지만 국가는 국민에게 안정적으로 먹거리를 공급할 의무가 있기에 농지를 보전하는 것은 국가의 책임이고 농지의 보전과 개발은 현재 농지법을 바라보는 엇갈린 시각이다.
무너지는 원칙 ‘경자유전’
1987년 개헌 논의에서 농지는 농민만이 소유해야 한다는 경자유전의 원칙을 합의하고 헌법에 명시했다. 1988년 개정에서는 농지 투기억제를 위한 농지매매증명제도 운영을 강화해 농지구입 시 6개월 사전 거주 의무를 부과하고, 농지취득자가 농지소재지에 전 가족이 주민등록이 되어있고, 실제로 거주한 기간이 6개월 이상일 때 증명을 발급하는 등 농지를 소유하기 위한 법적 요건을 강화했다. 그러나 현실은 달랐고 경자유전의 원칙은 지켜지지 않았다. 1985년 말의 농지임대차 비율은 30.5%로서 매년 증가해 왔고, 임대차료 총액도 5095억원에 달해 농가경제에 영향이 심각했다.
농지 임대가 공공연하게 이루어지면서 정부는 농사 규모를 확대한다는 명목 아래 1990년에 농지임대차관리법을 제정하기에 이른다. 이는 농지의 소유구조가 변하고 있음을 암시하는 대목이다. 특히 이후 농지전용규제와 소유규제가 완화되기 시작한다. 지역별로 농지임차료의 상한을 설정해 농지임대를 허용하고 통작 거리의 제한을 4㎞에서 8㎞, 그리고 20㎞로 완화했으며 훗날 통작 거리 제한은 없어진다.
1994년 농지의 보전 및 이용에 관한 법률, 농지임대차관리법, 농어촌발전특별조치법 등 농지 관련 제도를 하나로 묶어 농지법을 통합해 제정한다. 이렇게 농지법이 탄생했지만 농지법은 소유규제를 점점 완화하는 방향으로 흘러간다. 소유 규제의 완화는 필연적으로 농민이 아닌 사람이 농지를 소유하게 만든다. 비농업인의 농지소유를 부재지주라 농촌에서는 칭한다.
이를 입증한 것은 쌀 직불금 부당 수령이다. 경자유전의 원칙에 따라 쌀직불금은 농지 소유주가 아닌 직접 농사를 짓는 사람에게 지급하도록 법에 명시돼 있지만, 세금 혜택 등을 위해 농사를 직접 짓는 것처럼 위장해 직불금을 수령하는 사례가 속출했기 때문이다. 2008년 이명박 전 대통령(현재 구속 수감 중)의 취임식 직후 구성한 내각에서 보건복지부 차관으로 임명된 이봉화 내정자는 직불금 부당 수령 의혹에 휩싸였다.
감사원이 2006년에 실시한 직불금 감사 결과에 따르면 2006년 쌀 직불금 수령자 99만8000명 가운데 비료나 농약 구매실적이 없고 농협 수매에 참여하지 않은 사람들이 약 28만명이며 감사원은 이들을 직접 농사를 짓지 않는 비경작자로 추정했다. 28만명 중 직장을 가진 사람은 ▲회사원 9만9천900명 ▲공무원 4만400명 ▲금융계 8천400명 ▲공기업 6천200명 등으로 이들이 농사를 짓고 정당하게 직불금을 받았다고 보기 어렵다.
현재 농업인이 아닌 사람이 얼마나 농지를 소유하고 있는지는 정확하게 집계돼 있지 않다. 이러한 부재지주를 양성한 것은 통작거리 제한을 폐지하면서 농지 소유규제를 완화했기 때문이다. 경자유전의 원칙이 무너진 것은 사실 법적 또는 제도적 소유완화보다 임대차에서 문제가 심각하다. 소작제도를 금지한 것은 농민에게 농업경영의 독립성과 지주의 불로소득을 차단하기 위해서이지만 현대에 들어와서 임대차라는 이름으로 바뀌었을 뿐 소작은 존재한다.
현대판 소작제도 ‘농지임대차’
1990년에 제정된 농지임대차관리법이 제정됐다는 것은 소작제도의 부활을 뜻한다. 하지만 기존의 소작제도와는 달리 대규모 지주와 비싼 임대료 문제는 없다. 하지만 언제 계약해지가 될지 몰라 장기간의 투자나 안정적인 농업경영은 어려울 수밖에 없는 구조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의 ‘농지의 효율적 이용을 위한 농지임대차 관리방안’ 보고서에서 농지의 합리적 이용 질서를 확립하기 위해 농지임대제도의 필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헌법에 경자유전의 원칙이 명시돼 있어 법적으로 농지임대가 금지돼 있지만, 1996년 농지법이 제정되면서 예외적인 경우에만 임대를 인정하고 있다. 이처럼 법으로 임대가 허용되지 않지만, 농지임대는 꾸준히 증가하는 추세다. 이에 따라 농지임대에 관해 관리가 필요하다는 것이 농경연 보고서의 주장이다. 농경연 조사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전체 농지면적은 167만 9000ha에 달한다. 그중 51%는 임대차 농지이며 나머지 49%는 자경 또는 휴경 중인 농지이다. 임대차 농지 중 42~57%는 비합법적 임대차 농지로 추정된다.
현행 농지법대로 전체 농지의 40%에 달하는 비농업인의 농지 소유를 부정하고 ‘경자유전’ 원칙을 고수하게 되면 법률에 어긋나는 임차농지와 휴경면적의 증가 등의 부작용이 발생할 것으로 보고 있다. 전체 농지의 50%가 넘는 임대차 농지의 관리와 휴경 등 농지를 비효율적으로 이용하는 것을 막기 위한 대책으로 농경연 보고서에서는 농지임대차관리법을 제안했다.
임대차관리법은 농지 임대인과 임차인 모두를 보호하며 보다 효율적인 농지관리를 위한 농지 임대차관리제도에 대한 필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즉 ‘상가임대차 보호법’이나 ‘주택 임대차보호법’ 같이 임대인의 보호를 강화하는 법률 목적보다는 농지의 효율적 유동화에 초점을 두고 있다. 임대차관리법에는 ▲농지임대차 계약방식과 절차 ▲임대차 계약 기간 ▲농지임대차 등록 ▲ 임 대인 및 임차인의 권리와 의무 등을 명시함으로써 임차인과 임대인의 분쟁을 줄이고 임대 기간을 정해 합리적인 농지이용이 가능하도록 했다.
임대차 계약 기간은 농지의 유동성을 해치지 않는 범위인 3년으로 정하고 있다. 3년보다 장기의 임차지 보호가 필요한 과수나 시설원예 등의 경우 재산세 감면 등의 인센티브 방식을 활용하여 5년 이상의 장기 임대를 유도하도록 했다. 임차인 보호에 치중하면 임대농지의 공급물량 감소를 일으킬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임대차 계약을 위한 표준임대차계약서 등을 활용하고 이를 의무적으로 신고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신고한 계약만 주택임대차 관리법상의 권리와 의무를 갖는다. 이는 직불제 등 인센티브와도 연결되어 있다. 신고 제도를 통해 정보 부족 문제를 해소하고, 제도 개선 및 농지 임대차를 체계적으로 관리하려는 의도이다. 보고서에서는 농지의 효율적인 이용을 위해 농지 임대차를 허용해야 하며 농지소유에 대한 규제 완화를 해야 하지만 농지의 다른 용도로 전용을 막을 수 있는 강력한 규제도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한편, 이 연구는 농지임대차 관련 법안 도입뿐만 아니라 임대차 허용 대상과 농지유동화를 위한 정책들도 함께 제시했다.
농지 유동성 강화를 위해서는 고령화된 농촌 현실을 반영하여 65세 이상, 8년 이상 자경한 농업인은 은퇴 전 농지임대를 허용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또 지자체 농지이용계획과 연계된 지역은 모든 농지임대차를 허용해 들녘 단위의 농지이용 효율화를 도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아울러 기존의 자경 농지 양도소득세 감면 제도를 개선해 농지임대 시에도 감면 혜택을 부여해 농지 유동화를 촉진하는 방안도 제시했다.
또한, 한국농어촌공사의 농지은행을 통해서만 가능한 비농업인 소유 농지 위탁경영을 확대하는 방안도 필요하다. 지역·품목 농협의 위탁경영(농작업 대행 서비스 가능)도 허용해야 한다는 것이다. 농지임대차를 합법적으로 시행하게 되면 많은 장단점이 나타날 것으로 보인다. 이점으로는 초기 시설투자가 많이 투입되는 시설 농업이나 다년생 작물인 과수원 등에서 농지이용의 안정성을 확보할 수 있다.
또한, 휴경 등 비효율적 이용면적이 감소해 효율을 높일 수 있으며, 최근 증가하고 있는 귀농·귀촌인들에게 비용 절감 효과를 줄 수 있다. 아울러 임차료 통제를 통해 영세민의 임차료 부담을 완화할 수 있으며 소득 재분배 효과 발생시킬 수 있다.
보고서는 농지임대차관리제도 도입이 지나치게 임차인에 대한 보호로만 작동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임대차기간을 너무 길게 유지하거나 임대차 가격을 제한하는 것은 농지임대차 시장을 왜곡시킬 수 있다는 것. ‘한 번 농지를 빌려주면 다시는 되돌려 받지 못한다’는 농민들의 인식이 강해져 임대차 공급물량 감소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김완주 국회의원은 토론회에서 "농지임대차관리법과 농지법 제정 당시에는 엄격한 기준으로 소유를 제한했지만, 농지법은 점차 농업회사법인의 농지 자격 요건을 완화하고 있다"라며 "농지법의 완화는 업무집행권을 가진 자의 농업인으로의 비율 완화를 초래하고, 대표자가 농업인이어야 하는 제한마저 폐지해 비농업인은 농업회사법인을 통해서 자유롭게 농지를 소유할 수 있는 길이 열렸다"고 지적했다.
사라지는 농지들
농지를 보전하기 위한 제도는 1972년 농지의 보전 및 이용에 관한 법률이 시작점이다. 당시 이 법률에 따라 절대농지와 상대농지를 지정해 농지를 보전하도록 했다. 1990년 농어촌발전특별조치법이 제정되면서 절대농지는 농업진흥지역으로 상대농지는 농업진흥지역외 농지로 전환됐다.
농업진흥지역은 농업진흥구역과 농업보호구역으로 구분된다. 농업진흥지역은 농업의 진흥을 도모해야 하는 지역으로서 농업진흥지역관리규정에서 정한 규모로 농지가 집단화돼 농업 목적으로 이용할 필요가 있는 지역, 농지조성사업 또는 농업기반정비사업이 시행되었거나 시행 중인 지역으로서 농업용으로 이용하고 있거나 이용할 토지가 집단화되어 있는 지역, 위 지역 외의 지역으로서 농업용으로 이용하고 있는 토지가 집단화되어 있는 지역이다.
농업보호구역은 농업진흥구역의 용수원 확보, 수질 보전 등 농업환경을 보호하는 데 필요한 지역으로 농지법에 따라 지정된다. 농업진흥구역은 농지가 2ha 이상 집단화된 지역이며 농업진흥구역 안에서는 농수산업과 직접 관련되지 않는 토지이용행위는 원칙적으로 할 수 없다. 또 농업진흥지역 농지를 전용할 경우, 이를 대체하는 농지를 마련하는 대체지정제도가 있었지만 2008년에 폐지된다.
농촌경제연구원의 연구에 따르면 식량자급률을 지키기 위해서는 70만~78만ha의 농지가 필요한 것으로 나타났다. 즉 안정적인 식량 공급을 위해서는 한반도에 70만ha 이상의 농지가 있어야 하고 이를 보존하는 것은 국가의 의무이다. 따라서 농업진흥구역은 개발을 막고 농지로서의 기능을 할 수 있도록 지원해야 한다. 농업진흥지역 농지의 전용면적이 매년 3천-5천ha에 달한다. 전용은 대규모 개발사업에서 많이 이루어지고 있다. 2004년 이후 최근 5년간의 대규모 개발사업에서 사업부지의 절반이 농지인데, 이 중 60% 이상이 농업진흥지역 농지이다.
1975년부터 2011년까지 없어진 농지는 54만ha이다. 2006년부터 2015년까지 사라진 농지는 여의도 면적의 550배가 넘는 16만495ha이다. 전용된 농지 가운데는 우량 농지인 농업진흥지역이 14만5266ha로 91%이다. 전용된 농지를 유형별로 보면 공공시설이 6만7541ha로 가장 많고, 주거시설(2만8679ha), 광·공업시설(2만1512ha), 농어업시설(9717ha), 기타(3만346ha) 등이다. 지역별로는 경기가 3만9721ha로 가장 많이 전용됐고, 충남(2만1480ha), 경남(1만6566ha), 경북(1만5711ha), 전남(1만5146ha), 충북(1만4125ha), 강원(1만1119ha) 순이었다.
매년 사라지는 농지를 어떻게 지킬 것인가 또는 얼마만큼의 농지가 필요한가에 대한 사회적 합의를 도출하고 이를 지키기 위한 지원을 해야 한다.
농지를 지키는 마지막 보루
농업의 다원적 기능을 헌법에 명시해야 한다는 의견이 농업계에서는 팽배하다. 농업의 다원적 기능은 농업이 공공재로서의 역할을 하고 있다는 것으로 농업을 보존하기 위한 각종 지원의 근거가 된다. 농지는 농사를 짓기 위한 필수조건이다. 사람과 농지가 없으면 아무리 좋은 종자와 비료, 농약이 있어도 무용지물이다. 또한, 농지를 보전함으로써 얻는 다원적 기능도 가치는 식량안보 기능이 연간 1조9893억원, 환경보전 가치 6조376억원, 농촌 경관 기능의 가치 1조3059억원 등 연간 9조3328억원이라는 연구결과도 있다.
헌법에서 경자유전을 존속하느냐 마느냐보다 더 중요한 것은 농지를 어떻게 얼마만큼 보전할 것인가에 대한 합의이다. 경자유전은 현실에서는 원칙으로서 존재가치를 잃은 것은 사실이지만 우리가 선언적 의미로 받아들여야 한다. 원칙으로서의 경자유전이 아닌 농업의 공익적 가치와 농지의 중요성에 대한 선언적 의미로서의 경자유전은 농지를 지키기 위한 마지막 보루가 아닐까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