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겹살의 序 작가서문
삼겹살의 시작은 계보학을 내세웠다. 계보학은 원류를 찾아가는 학문으로 쉽게 말하면 족보를 재구성하는 작업이다. 우리나라에서 삼겹살을 언제부터 구워 먹기 시작했는가를 찾아가는 과정이 바로 계보를 만들어가는 일이었다. 이 책을 통해 삼겹살의 개념과 기원, 그리고 전개 과정을 살펴보면서 돼지고기의 계보를 연결했다.
우리나라가 세계에서 가장 많이 삼겹살을 먹는 나라가 되기까지의 과정을 좇으면서 돼지머리, 순대 등의 부산물을 만났고 우리나라에서 언제부터 제대로 된 햄을 만들고 먹기 시작했는지를 찾을 수 있었고 이 과정에서 한국 김밥의 계보와 연결이 됐다. 삼겹살의 계보는 단순히 삼겹살만 있는 것이 아니었고 한 마리의 돼지가 되는 과정이었다.
삼겹살을 언제부터 먹었을까 하는 호기심이 시작이었다.
호기심에 상상을 더하기 시작한 것은 생각보다 삼겹살에 대한 문헌이 부족했기 때문이다. 1년간 돼지고기 관련 자료를 찾았지만, 기록이 없거나 부족한 내용은 상상력을 발휘해야만 했다. 따라서 이 책에서는 삼겹살에 대한 많은 가설만을 세웠을 뿐이다. 음식문화에 있어 정설을 주장하기는 어렵다.
삼겹살 수출이나 돼지사육 등에 대한 논문은 있어도 삼겹살을 왜 먹는지 언제부터 먹었는지에 대해 기록한 책은 없었다. 간혹 음식 관련 문헌에서 간단히 다루거나 신문기사에 언급된 것밖에 없었다.
도서관을 뒤졌고 인터넷을 검색하고 신문기사를 찾아 스크랩하면서 삼겹살의 원류에 접근할 수 있었고 서민의 음식이라는 삼겹살을 찾아가는 과정을 통해 우리나라 양돈산업과 육식 문화의 변천 과정을 계보학적으로 어렴풋이나마 그려낼 수 있었다.
삼겹살을 언제부터 먹기 시작했느냐는 잘못된 질문임을 깨달았다.
삼겹살이라는 부위가 없다가 새로 생긴 부위가 아니기 때문이다. 삼겹살은 1930년대 문헌에 당대의 요리전문가가 돼지고기의 가장 맛있는 부위라고 했을 정도로 예전부터 삼겹살은 존재했던 돼지의 한 부위였기에 그 시작 시점을 묻는 것은 의미가 없다.
그렇다면 우리는 삼겹살을 구워 먹기 시작한 시점과 대중화된 시점에 대해 질문을 해야 하는 것이 맞다. 삼겹살의 대중화는 한국 근현대사 육류 섭취 문화에서 중요한 의의가 있다. 육식이 전면적으로 허용된 조선 시대 이래 쇠고기는 한국인이 가장 좋아하는 고기였지만 삼겹살의 등장 이후 선호도 2위로 밀려났다. 한국인의 선호 육류가 소에서 돼지로 변했다는 것, 그것도 삼겹살 등장 100년 만에 입맛이 바뀐 건 상당히 획기적인 일이기에 의미가 깊다. 입맛이 그렇게 쉽게 변하지 않기 때문이다.
음식문화가 대중문화의 하나의 코드로 자리 잡으면서 음식의 기원이나 문화에 대해 다양한 이야기들이 나오고 있다. 삼겹살도 예외는 아니다. TV, 신문 등의 대중매체를 통해 명성을 얻은 맛칼럼니스트의 이야기와 책들에서 다양한 음식에 관한 정보를 얻고 있다. TV 예능에서 일본에 수출하고 남은 잔여 부위를 먹기 시작한 것이 삼겹살의 기원, 혹은 시작으로 보고 있는 것이 일반적이다.
한국에서 돼지고기를 먹기 시작한 건 그다지 길지 않다. 고기를 먹는 방법도 전통적으로 습열방식, 즉 물에 삶거나 찌거나 국을 끓여 먹는 방식이었다. 1970년대를 기점으로 한국은 건열, 구이문화로 바뀐다.
1970~80년대 신문에 가장 많이 오르는 돼지고기 관련 기사는 식중독이다. 돼지고기를 먹고 식중독에 걸려 사망하는 일이 자주 보도될 정도로 식품위생이 낮은 수준이었다. 또한, 돼지고기 자체가 쇠고기보다 빨리 부패하는 성질을 갖고 있어 돼지고기는 잘 먹어야 본전이라는 말이 생겨나기도 했다. 이런 특징으로 인해 삼겹살 위시한 돼지고기 소비는 6~9월까지 급격히 줄었다가 겨울철에 늘어나는 사이클을 보였다.
삼겹살이 여름철에 가장 많이 소비되는 지금과는 사뭇 다른 모습이다. 돼지고기에 대한 부정적인 속설은 조선 시대에도 있었다.
음식문화 측면에서는 전통적인 찜, 수육 등 습열 조리법에서 건열조리법이 대중적으로 자리 잡게 된 것이며 숯불에 갈비를 양념해 구워 먹는 갈비구이의 외식문화에서 다양한 방식으로 고기를 구워 먹게 되는 전환점이기도 하다.
삼겹살이 대중화된 건 수출하고 남은 잔여 부위였기 때문이라기보다는 수출을 하는 과정에서 품질이 고급화되기 시작했고 이와 함께 1970년대 정부 주도로 적극적인 돼지고기 소비 촉진과 함께 1980년대 경제 호황이 맞물려 육류소비가 폭발적으로 증가했기 때문이다.
삼겹살이 본격적으로 등장한 시점도 1980년대이다. 1980년대에 가장 유명한 발명품 역시 삼겹살의 대중화에 한몫한다. 부루스타라고 불리는 휴대용 가스레인지다. 삼겹살은 기름기가 많아 숯불이나 연탄에서 구우면 불과 연기가 엄청나게 발생했기 때문에 구워 먹기 좋은 부위는 아니었다. 하지만 부루스타가 보급되면서 숯불이 없이도 일반 식당에서 두꺼운 철판에 삼겹살을 구워 먹는 것이 가능해졌다.
식당뿐만 아니라 일반 가정집에서도 삼겹살을 구워 먹는 게 가능해졌고 야외 나들이에서도 손쉽게 고기를 구울 수 있게 되면서 삼겹살 확산에 일조하게 된다.
90년대까지만 해도 삼겹살은 가격이 상대적으로 낮아 서민 음식, 서민의 메뉴였다. 1997년 IMF 이후 회사가 부도나거나 명예퇴직자들이 늘어나면서 식당과 같은 자영업에 뛰어드는 사람들이 늘어나면서 삼겹살은 본격적인 외식 메뉴가 됐다. 1990년대 돼지고기와 쇠고기의 부위별 포장판매가 도입되면서 삼겹살의 브랜드가 생겨나기 시작했고 고급화되면서 가격이 상승하기 시작했다.
삼겹살은 소비가 늘어나면서 국내 생산물량만으로는 부족해지면서 수입이 급증하기 시작해 세계의 모든 삼겹살은 한국에서 먹는다는 말도 생겨나기 시작했다. 반면 안심이나 뒷다릿살 같은 부위들은 비선호부위로 저가에 팔리고 있다.
값싼 서민의 고기였던 삼겹살은 어느덧 고급화되면서 비싸졌고 EU와의 FTA로 값싼 삼겹살이 대량으로 들어오면서 최근에는 무한삼겹살집도 생겨났다. 국산 삼겹살보다 값이 훨씬 저렴한 수입삼겹살을 무한으로 판매하는 집들이다. 여기에 배달 대행업체가 활성화되면서 삼겹살도 배달시켜 먹는 시대가 열렸다.
사람이 사는 모든 것이 문화이고 정치이다. 문화인류학에서는 문화를 후천적으로 습득되어 공유되는 지식, 신념, 행위의 총체. 즉 인간과 환경의 상호 작용으로 형성된 생활 양식이라고 정의한다.
우리가 먹는 음식부터 음식의 재료까지 모두 문화다. 다만 문화인류학에서는 재료나 음식 등의 단순 요소가 아니라 재료의 생산과정, 음식에 대한 행위(맛, 유행, 먹는 이유)에 대해서 ‘왜’라는 질문을 던진다.
돼지고기, 그중에서도 삼겹살은 왜 이리 먹게 됐을까에는 단순히 맛있어서, 가격이 싸서가 아니다. 정치, 사회, 문화 등의 복합적 층위가 얽혀 있다.
문화적으로 접근한 삼겹살, 돼지고기에 대한 고찰은 아직 많이 부족한 실정이다. 한국은 음식문화에 대한 인식이 2010년대 이후에 생겨났기에 더 그러하다.
음식문화를 이해한다는 것은 그 문화를 구성하는 사람들의 먹거리와 건강문제까지도 알게 된다. 즉 음식 그 자체가 맛을 추구한다면, 음식문화는 사람들의 삶에 대한 깊은 성찰을 추구한다.
돼지고기를 왜 먹게 됐는지 돼지의 부산물들은 우리나라에서 어떤 음식문화를 만들었는지 총괄적으로 접근하고 싶었지만 공부가 많이 부족했다. 부족할 수밖에 없는 공부에 글쓰기마저도 모자라 제대로 된 내용이 담겨 있는지 읽기에 불편하지는 않을지 여전히 걱정된다. 시간에 쫓겨 작업했다는 핑계를 덧붙인다.
끝으로 이 책을 집필하는 데 도움을 주신 협동조합 농장과 식탁의 하광옥 이사장님과 임직원분들에게 감사드리며 1년여의 세월을 거치면서 삼겹살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며 책의 기초를 다져주시면서 함께 글을 쓰신 김태경 박사에게도 감사의 말을 전한다.
연승우 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