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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선경 Dec 11. 2018

꿈이 있어 불편한 당신에게

그럼에도 불구하고, 꿈꾸는 당신을 위해

 여름에서 가을로 접어들던 9월의 수요일.

 나는 '시니어 일자리 박람회'에서 시니어 강사를 희망하는 분들의 이력서를 접수하고 있었다.

 함께한 배고은 강사와 나는, '많은 분들이 오진 않을 거야. 그간 각자의 강의를 하느라 함께 할 시간이 없었고, 오늘이 적기야! 우리의 드림 보드를 작성할 적절한 날!'이라고 생각하며 키득거리고 있었다.


 그런데 웬 걸. 박람회장 문이 열리자마자 6,70대 시니어들이 우리 앞에 다가오기 시작했고, 다섯 시간 동안 80여 명의 시니어들과 면담이 이어졌다. 그저 '일자리를 찾으러 왔으니 이 부스에도 한 번 내보자.'라는 마음으로 이력서를 제출하는 분도 있었고, 상담 후 기념품으로 드리는 에코백이 필요해서(박람회장에서는 나눠주는 기념품이 많다.) 이력서 한 장과 맞바꾸는 분도 있었다.

     

 하지만, 꿈이 있는 분들은 달랐다.

 나달거리는 서류 가방에서 꺼낸 그들의 이력서는 학교에서 마주하는 학생들의 이력서와는 사뭇 다른 느낌을 전달해주었다. 손으로 하나하나 써 내려간 이력서 속에는 그저 활자가 아닌, 그들의 인생이 오롯이 담겨 있었다. 지금 당장의 일자리도 물론 필요하겠지만 그들의 인생이 걸어온 길은(직업을 불문하고), 보다 나은 자신을 위한 시간을 보낸 사람들이 쓸 수 있는 단어들로 설명되었다.    


 그들은 누구 하나, '내 나이에 사람들 앞에서 얘기할 수 있을지'를 고민하지 않았다. '지난 삶의 행적이 누군가에게 도움이 될 수 있을지'를 염려하지 않았다. 그저 자신의 지난 이야기들도 괜찮다면 많은 이들에게 나의 이야기를 전달하고 싶다며 수줍게 미소 지었다. 그리고 '언제가 되어도 좋으니 연락을 주었으면 좋겠다.'며 마음으로부터 우러나는 기대감을 숨기지 않았다.     


 그들과의 만남 이후
       나의 생각이 달라졌다.     


 마흔 살이 되면서 듬성듬성 생기던 흰머리는 이제 빼곡해져서 염색을 해야 하고, 강의장에서 마주하는 젊은 여강사들의 몸매는 다이어트를 다짐하게 하지만 허기를 감당하기에 주부라는 타이틀은 적절하지 않았다. 장거리 운전을 하면서도 졸지 않는다고 얘기했던 것이 불과 이 년 전인데 이제는 고속도로 위에서 30분만 지나도 눈이 감겨온다.     


 신체의 변화가 가져오는 건, 보이는 것뿐만이 아니다. 나의 마음도 늙어가는지 휴대폰을 바꾸는 일에도 부담감이 들고, 새로운 음식을 먹는데도 결심이 필요하다. 부담되는 강의를 앞두고는 '새로운 강의안으로 다른 방식의 강의를 해봐야지' 다짐하지만, 결국엔 지금까지 해왔던 강의방식을 고수했던 마흔 살 이후의 날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음 한 켠은 늘 불편했다.


 

 나는 더 재밌는 일을 하고 싶고, 나는 더 즐거워지고 싶었다. 보다 나은 나의 모습을 꿈꿨고, "지금도 괜찮아."라고 얘기하는 지인의 얘기에 잠깐은 안도했지만, 그 말이 위안이 될 수는 없었다.      

 

나의 마음 한 켠에는 늘 꿈이 자리하고 있었다.     

 “함께여서 즐거운 사람들과 하루가 즐거운 일을 하자.”    

 

 돈이 되지 않음을 알면서도 즐거운 일을 하고 싶었고, 내가 쓰일 수 있다면 누군가 알아주지 않아도 쓰이는 것에 만족한 날들도 있었다. 그 경험이 언젠가 또 다른 일을 태연하게 해 낼 밑거름이 된다면 기꺼이 나는, 여전히 나는, 내 시간과 재능을 나누어 줄 용의가 있다.     


 이력서를 두고 뒤돌아 보며 미소 짓던 시니어들을 마주하며 나의 꿈이 다시 내 마음을 두드리는 것이 느껴졌다. 나는 꿈이 있는 사람이다. 지금 당장 필요한 일이 아니더라도 나의 꿈은 나를 보다 나은 사람으로 살게 해 주었다.

'함께여서 즐거운 사람들과 함께이고 싶다'는 나의 꿈은 지금 곁에 즐거운 사람들을 남게 해 주었고, '하루가 즐거운 일을 하고 싶어'라고 되뇌던 덕분에 우울한 감정이 치밀어 오르면 다양한 방식으로 긍정 감성을 이끌어내곤 했다.    

 

 하지만, '나이에 걸맞은 꿈이 아니지 않나'라는 섣부른 생각이, '40대는 안정된 모습이어야지'라는 세상의 잣대가, 나를 불편한 마음이 든 채 살게 했다. 70대가 되어서도 자신의 꿈을 이야기하며 해사하게 미소 짓는 인생의 선배들이 '꿈이 있어도 괜찮아'라고 당부하고 떠난 느낌이 들었다.         


  나는 이제 꿈을 꾸기 위해 글을 쓴다.

  나는 함께여서 즐거운 사람들과 하루가 즐거운 일을 하기 위해 글을 써 내려간다.

 

  꿈이 있어 불편한 당신에게 건네는 작은 위로.    

  '꿈이 있어 불편한 당신에게' 이제 시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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