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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예람 Jun 29. 2016

환상과 현실의 경계선에서

막심 고리키 - 은둔자

내가 아내에게 진지한 표정으로 이렇게 물어보곤 했다.

"공증인들이 자유분방할 수 있다는 걸 당신은 확신할 수 있어요?"

그러면 그녀는 잘못했다는 듯 슬픈 표정을 지으며 대답했다.

"오, 아뇨. 난 그럴 능력은 없답니다. 하지만 계란 반숙으로 코끼리를 키우는 일이 말도 안 된다는 건 확신하고 있지요!"


막심 고리키의 단편 소설들을 엮은 책이다. 가장 기대했던 것은 제목부터 마음에 든 「은둔자」였지만 다른 소설들도 기대 이상의 재미를 줘서 읽는 내내 무척 즐거웠다.


막심 고리키의 책은 이것으로 처음 접해 보았는데 어렵지도 않고 분위기도 마음에 들어서 이 작가의 다른 책들도 한 번 읽어보고 싶어졌다.

읽는 내내 든 생각이, 문장을 참 예쁘게 쓰는 작가라는 것이었다. 단어들이, 문장이 정말로 아름다워서 부드러운 호수 속에 내 몸을 온전히 내맡긴듯한 기분이 들었다.


내가 좋아하는 작가들 중에서 구병모 작가님이랑 언뜻 비슷하게도 느껴지는데 그 작가님은 기괴하면서 어딘가 일그러진 동화 같은 소설을 쓴다면 막심 고리키는, 설화나 우화를 읽는 것 같은 기분을 느끼게 만든다. 아름답고 몽환적인 분위기가 차마 눈을 뗄 수 없게 만든다.


판타지적인 요소는 거의 전무하면서도 판타지적인 느낌이 묘하게 풍겨 나오고 딱 한 마디로 정의하기는 힘든, 그런 유의 소설이었다.


그 중 가장 마음에 들었던 단편은 「이제르길 노파」였다. 흡사 나이 든 사람에게서 옛이야기를 듣는 기분을 느끼게 만든 소설이었다. 아닌 게 아니라 소설 속에서는 이제르길 노파라는 늙은이가 자신이 과거에 겪었던, 들었던 일들을 하나씩 말해준다. 그 모든 것이 진실이든 거짓이든, 중요한 것은 한 사람을 완벽하게 옭아맬 수 있을 정도로 힘을 가진 이야기를 풀어낸다는 데 있다. 소설이 끝을 맺고 나서도 노파에게서는 아직 나오지 않은 이야기들이 많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와 동시에 책장 뒤편으로 가라앉아 영원히 듣지 못할 그 이야기들이 나는 무척이나 듣고 싶었다. 그래서 더욱 아쉬운 마음이 깊었는지도 모르겠다. 서운한 감정이 들 정도로.


한편,「거짓말하는 검은 방울새와 진실의 애호가 딱따구리」는 진짜 딱 우화라고 할 만한 이야기였다. 상당히 짧은 소설이었지만 그 이야기를 다 읽고 나서도 한동안은 곰곰이 생각해 보게 만드는 그런 힘을 가지고 있었다. 

역시 이 소설 또한 어느 것이 진실이라고는 딱히 단정하기 힘들다. 하지만 만약 나라면, 앞에 뭐가 있든 한 걸음 정도는 내디뎠을 것 같기도 하다. 진실은 누구도 모르는 거지만.


고리키의 이야기는 전체적으로 속에 무언가를 품고 있는데 이야기 자체는 읽기가 참 수월하면서도 그 안에 내포된 무언가를 찾기가 힘든 것 같다. 설령 찾는다고 할지라도 그것을 말로써 입 밖에 내놓기에는 어딘가 적절하지 않다는 판단이 든다. 정확한 단어를 찾을 수 없달까.


뭔가 잡히는 게 있는 것 같으면서도 물 위에 떨어진 잉크처럼 한순간에 흩어져 버린다. 하지만 그러니까 더욱 읽을 가치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직 완벽하게 막심 고리키라는 작가를 이해한 것은 아니지만 훗날 다시 이 책을 집어들었을 때, 그 때는 또 다른 무언가를 건져 올릴 수 있기를 기원한다.

그녀는 러시아 망명자들에 대해서도 많은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그녀의 말투에서 나는 항상 그런 사람들에 대한 경멸의 미소가 숨어 있다고 느꼈다.
때로 그녀는 몹시 진실한 나머지 아주 순박한 냉소주의에 빠지기도 했다.
그럴 때면 그녀는 고양이처럼 뾰족한 장밋빛 혀로 입술을 맛있게 핥았고 두 눈은 특히 반짝거렸다.
때로 나는 그녀의 말 속에서 순결함의 불꽃이 반짝인다고 생각하기도 했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내 눈에 그녀는 인형을 가지고 저 혼자서 재밌게 노는 소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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