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베르 카뮈 - 이방인
마리가 웃는 모습을 보자 또다시 그녀와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잠시 후, 마리는 내게 자기를 사랑하느냐고 물었다.
나는 그런 건 아무 의미도 없기는 하지만, 아마 아닌 것 같다고 대답했다.
마리는 슬픈 표정이 되었다.
하지만 점심 식사를 준비하던 중, 그녀는 정말 아무것도 아닌 일에 또다시 웃었다.
그래서 나는 그녀에게 입을 맞췄다.
패트릭 모디아노, 「어두운 상점들의 거리」의 첫 문장, "나는 아무것도 아니다."
조지 오웰, 「1984」의 첫 문장, "화창하지만 쌀쌀한 4월의 어느 날이었고, 시계는 13시를 치고 있었다."
두 개 다 내가 특별히 마음에 들어 하는 문장이다. 그리고 카뮈의 「이방인」또한.
오늘 엄마가 죽었다. 아니 어쩌면 어제.
내 마음을 순식간에 강타하는 그런 문장을 발견하면 나도 모르게 시선을 빼앗겨 몇 분 동안이나 입 속으로 곱씹어 보고는 한다. 그 울림이 내 가슴 깊숙히 새겨져 상처로 남을 때까지.
오늘 엄마가 죽었다는 앞 문장 보다는 그 뒤에 나오는, 어쩌면 어제 죽었을 지도 모르겠다는 그 말이 왜 이렇게 내 마음을 울리는 걸까. 그 순간, 지독하게 무심하고 매사에 무덤덤한 그가 나를 강하게 사로잡았다.
이 소설이, 슬프지는 않지만 슬픈 이유가 그것이 아닐까 싶다.
심장을 강하게 울리는 느낌은 없으나 문을 두드리듯 수면에 돌멩이를 떨어뜨리듯 내내 조심스러운 일렁임을 얹어주었다.
요양원에 있던 어머니가 죽었다. 뫼르소는 장례를 치르기 위해 그곳으로 향하고 슬퍼하는 많은 사람들 틈에서 그는 그저 피곤하고 자고 싶다는 생각만 한다. 아무렇지 않게 사람들과 대화를 나누고 커피를 마시고 담배를 권한다. 사람들이 어머니의 나이를 물어도 제대로 대답하지도 못한다. 사람들은 그런 그를 이상한 눈으로 바라보지만 뫼르소는 그저 피곤할 뿐이다. 단지 그 뿐.
장례가 끝나고 집으로 돌아와서도 그는 슬픔조차 느끼지 못하는 사람처럼 내내 무덤덤하다. 연인인 마리와의 관계도, 주변 사람들과도, 마치 그저 머물다 가는 사람인 듯 겉돌기만 한다.
그는 포주 일을 하는 친구와 해변으로 놀러갔다가 우연한 충동으로 누군가를 죽이게 된다. 그 일로 재판에 휘말리고 단지 사람을 죽인 것이 문제이던 그에게 사람들은, 어머니의 장례식에서 무덤덤했다는 것에 대해 죄를 묻는다.
처음부터 끝까지 담담한 어조로 이끌어가는 탓일까 상당히 차분한 기분으로 읽어 내려간 책이었다. 그런 것과는 별개로 어딘가 냉담하다 못해 현실과 괴리감마저 느껴지는 주인공에게 좀처럼 공감을 하지 못했다. 그러다가 줄곧, 자신의 재판에서마저 침착함을 유지하던 그가 한순간 내지르는 폭발과도 같은 감정에, 그를 조금은 이해하게 되었다. 그가 어머니의 죽음에 그토록 무심했던 이유, 자신의 재판을 침착하게 받아들였던 이유.
뫼르소는 사람들이 자신을 이상하게 생각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끝내 그 태도를 바꾸지는 않는다. 그는 그저 자기 자신이기를 원하며 재판의 결과를 받아들인다.
그다지 길게 이어온 인생은 아니지만, 자신의 신념이나 고집을 바꾸지 않고 산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하는 것은 알고 있다. 상황에 따라, 혹은 욕심에 따라 사람은 끝없이 번복하며 결국에는 중심을 잃고 부유하기 마련이다.
뫼르소가 한 짓을 좋다, 나쁘다 평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 다만 그 선택의 결과를 알고 있으면서도 나의 생각을 곧이 곧대로 밀고 나가기란 얼마나 힘든 일인가.
가끔씩 외면하고 싶은 현실을 마주 하게 되면, 문득 뫼르소가 떠오를 것 같다.
담담하고 침착한 어조로 올곧게 진실만을 말하던 그가.
우리가 다시 옷을 입었을 때, 마리는 내가 검은 넥타이를 맨 것을 보고 크게 놀랐다.
그러더니 내게 상중이냐고 물었다.
나는 엄마가 돌아가셨다고 했다.
마리가 언제부터 상을 당한 것인지 알고 싶어 했기 때문에 나는 <어제부터>라고 대답했다.
그녀는 살짝 뒤로 물러섰지만, 더 이상 그에 대해 왈가왈부하지 않았다.
나는 마리에게 그건 내 탓이 아니라고 말하려다 그만두었다.
같은 말을 이미 사장에게도 하지 않았나.
그 말엔 아무 뜻도 없었다.
그리고 어쨌든, 사람들은 언제나 약간씩은 잘못을 저지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