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와다 요코 - 용의자의 야간열차
"당신 얼굴, 텔레비전에서 본 것 같은데, 피아니스트였나요?"
상대의 목소리는 여자라면 마음을 끌어당기는 나지막한 쉰 목소리고, 남자라면 맑고 청아한 미남의 목소리다.
그런 꿀빛 만남의 기회를 눈앞에 두고 당신은,
"버스는 대체 몇 시나 돼야 올까요."
라는 시시한 말로 대꾸하고 말았다.
사실 두꺼울 줄 알았는데 의외로 얇아서 깜짝 놀란 책이었다.
원래 책을 사자마자 읽는 타입은 아닌지라 이 책도 방치해 두고 있다가 나중에 읽어야지 했었는데 고작 200쪽도 되지 않는 두께에 용기를 내어 하루 만에 다 읽어버렸다.
읽는 내내 재미있었다고는 할 수 없고 초반에 흥미진진하다가 중반쯤에 좀 늘어지다가 다시 마지막에 가서 흥미를 강하게 끌어올린 작품이라 할 수 있겠다.
다와다 요코라는 작가님은 단어를 낯설게 만드는 작가님 이라고 한다. 이 분 소설을 처음 읽어보는 나로서는 단지 그렇구나, 하는 걸로 끝이지만. 쨌든 그렇다고 한다. 그래서 그런지 눈을 감은 채 수면 위를 부유해 가는 느낌으로 가득한 소설이었다.
처음 읽을 때부터 이상하게 생각했던 사실인데, 이 소설은 처음부터 끝까지 당신이라고 지칭한다. 마치 옆의 누군가가 여행하는 내내 내가 할 말을 대신 해주듯, 당신은 이라는 문장으로 도배되어 있다.
마지막까지 읽고 나서야 왜 그 단어를 대수롭지 않게 넘겼는지 의아해졌다. 하긴 어느 독자가, 이건 작가님이 글을 쓰는 방식이야 라고 생각하지 이건 좀 이상한데? 라고 의문을 품겠느냐마는.
나와 당신의 경계선.
마지막 챕터의 바로 전 챕터, 그 챕터의 마지막 장에 이르러서야 독자는 비로소 이 망할 작가에게 속았다는 깨달음을 얻고 일종의 배신감에 가까운 감정마저 느낄 것이다. 딱히 기분 나쁜 배신감은 아니라는 게 문제겠지만.
각 챕터마다 여행하는 곳의 이름이 적혀 있는 이 소설은 마치 단편 소설과 같다. 단편 소설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어쩐지 기억의 마디가 끊어져 있는 듯한 기분이 든다. 그리고 일부러 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주인공의 정보가 제대로 나와 있지 않다. 「당신」은 일 때문에 여행을 하고 있고 성별도 이름도 나이도 정확히 언급이 되어 있지 않다. 거의 끝에 가서야 이 사람이 누구인가 하는 대략적인 표상이 등장하긴 하지만. 어쩌면 이것도 작가의 계략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용의자의 야간열차」라는 제목은 일본어 유희라고 한다. 해설에 그것에 관해서 나와 있다고 하는데 나는 원래 해설은 잘 보지도 않을 뿐더러 여전히 제목이 무슨 의미인지 정확하게 알지는 못하겠다. 나중에 그 부분을 찾아봐야 하려나.
사실, 새벽쯤에 읽은 책인 데다가 조금 졸면서 읽는 통에 내가 제대로 읽은 것이 맞는지 구분이 되지가 않는다. 다만, 마지막 부분에서 쇠공에 머리를 거세게 맞은 것처럼 강한 충격으로 눈이 번쩍 뜨였다는 것밖에는.
무튼 누군가에게는 느긋한 여행을 하듯 다소 지루한 소설일 수도 있고 누군가에게는 강한 충격을 건네는 소설일 수도 있다. 나중에 천천히 다시 읽어봐야지. 졸리지 않은 시간에.
그날 나는 당신에게 영원한 승차권을 내주고, 그 대신 자신을 자신으로 여기는 뻔뻔한 넉살을 사들여 '나'가 되었다.
당신은 더이상 스스로를 '나'라고 부르지 않게 되어, 언제나 '당신'이다.
그날 이래로 당신은 줄곧 묘사되는 대상이 되어, 2인칭으로 열차를 탈 수밖에 없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