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강 - 흰
종달새와 흡사한 높은 음조로 새들이 우는, 울창한 나무들이 무수히 팔과 팔을 맞댄 소로를 따라 걸어나오며 깨달았다.
그러니까 이 모든 것들이 한 번 죽었었다.
이 나무들과 새들, 길들, 거리들, 집들과 천자들, 사람들이 모두.
이 책이 나오기 얼마 전에 「희랍어 시간」이라는 샘플북이 왔었다. 그것을 접하고 작가를 알게 되었는데 며칠 뒤에 이 작가가 맨부커 상을 수상했다는 반가운 소식을 들었다.
어쨌든 「희랍어 시간」에 쓰여 있는 단어와 문장들이 감각적이고 정말로 아름다워서 읽자마자 이 작가에게 관심이 생겼다. 원래는 처음 내 관심을 가져갔던 그 책을 사려고 했으나 「흰」을 예약판매 하는 바람에(심지어 초판 양장) 어쩔 수 없이 이것부터 구매를 했다.
요새 몇 몇 책들이 초판 양장으로 나오던데 조금 치사하게 느껴진다. 돈 더 붙여서 양장으로 팔아도 충분히 살 텐데.
책을 받고나서 깜짝 놀랐던 것이, 사실은 좀 더 두께감이 있을 줄 알았다. 그런데 200페이지도 채 안 되는 얇은 두께에 그다지 많지 않은 글자들.
덕분에 속도감있게 하루도 되지 않아 다 읽을 수 있었다.
어쩌면 이런 방식으로 쓰는 소설을 별로 마음에 들어 하지 않는 사람이 있을 수도 있겠다. 이 책이 오던 날, 다른 책을 읽고 있었기 때문에 친구에게 먼저 빌려줬었는데 그 친구가 절반 정도 읽더니 대뜸 자기 스타일이 아니라고 했던 기억이 난다. 끝까지 다 읽고 나서는 괜찮은 소설인 것 같다고 말하긴 했지만.
자전적 소설 같기도 하고 에세이 같기도 한 이 소설은, 짧게 끊어지는 이야기들이 연작처럼 이어진다. 처음에는 이게 과연 하나의 이야기가 맞나 싶다가도 중간 중간 보이는 어떤 연관성이 내 흥미를 잡아끌었다. 아리송하기도 하고 옅은 안개가 낀 것 같은 소설이 나를 어디까지 안내할 수 있나 내심 기대도 되었다.
나와 그녀의 이야기. 혹은 삶과 죽음.
만일 당신이 아직 살아있다면,
지금 나는 이 삶을
살고 있지 않아야 한다.
지금 내가 살아 있다면
당신이 존재하지 않아야 한다.
이 소설이 내 마음에 더욱 와 닿았던 이유는 나 또한 얼굴도 이름도 모르는 막내 동생을 잃은 경험이 있기 때문이었다. 조산과 낙태라는 점에서 차이를 보이기는 하지만.
상실에서 오는 허전함은 그 일을 겪어본 사람만이 공유할 수가 있다.
내가 살아있으면 그녀는 존재하지 않고, 그녀가 존재했다면 나는 결코 살아있을 수 없는 이 세상. 마치 내 삶이 누군가의 삶을 대신 살고 있는 것 같은 기묘함.
그녀에 대한 고마움, 미안함, 그리움 그 모든 복합적인 감정의 집합체. 흰이라는 소설은 그녀에게 바치는 일종의 진혼곡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죽지 마라 제발.
가느다란 소리로 우는 손바닥만한 아기를 안으며 되풀이해 중얼거렸다.
처음엔 꼭 감겨 있던 아기의 눈꺼풀이, 한 시간이 흐르자 거짓말처럼 방긋 열렸다.
그 까만 눈에 눈을 맞추며 다시 중얼거렸다.
제발 죽지 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