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예람 Sep 20. 2016

양심없는 욕망의 결말

김이은 - 11:59PM 밤의 시간

아이들은 그 자체가 불완전의 상징이기 때문에 그래서 저토록 예쁘고 완벽할 수 있는 거다.

원래부터 완벽했던 것들은 계속해서 망가지는 일밖에 더 있겠는가.


어느 날 메일 창을 열었는데 이상한 메일이 하나 날아왔다.


뭐지? 하고 클릭했다가 너무 강렬한 색감과 자극적인 문장들에 누군가 악의 섞인 장난을 치는 줄 알았다. 옛날에 심술궂은 아이들이 고의로 무서운 영상이나 사진을 보여줬던 것처럼.

살짝 화가 나다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것에 압도되어 마지막까지 내리고 나서야 어떤 소설의 서평단을 모집하는 메일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메일을 보는 내내 공포와 두려움 때문에 심장이 두근두근 뛰었는데 서평단 모집이라는 문구에 심장이 더 크게 뛰었다. 이미 그 광고 자체에 압도 되었는데 무슨 말이 더 필요할까. 


이 책은 무조건 읽어야 돼, 라는 일념으로 신청했고 운 좋게 책이 나에게로 오게 되었다.


예전에 「악의 연대기」라는 영화를 본 적이 있다. 그 영화를 보며 악은 어디서 탄생해서 어떻게 끝이 나게 되는가, 생각한 적이 있는데 이 책을 보면서 똑같은 생각을 했던 것 같다. 다만 영화에서는 슬픔과 안타까움을 느꼈다면 소설에서는 단지 소름과 허탈함을 느꼈다는 것 정도가 다를까.


흔히들 그렇게 말하고는 한다. 

돈에는 눈이 없다.
돈에는 도덕이 없다.

욕망이라는 것은 돈과 권력, 그 밖에 사랑이라거나 기타 등등이 있을 수 있겠지만 여하튼 크게는 돈과 권력을 바탕으로 한다. 그러니까 욕망 또한 도덕과 그리 친하지 않은 단어일 수밖에 없다.


인간이 순수하게 이기적일 때 상황은 어떻게 변해갈까.


소설은 초반부부터 어딘가 삐걱거린다. 긴장감을 유발하는 캐릭터들이 나오고 불안함을 가중시키는 상황들의 연속.

일단은 주인공부터가 묘하다. 이중인격자같은 면모에 자신의 경제 능력과 걸맞지 않는 커다란 욕망, 잔인한 말과 생각들. 주인공을 보고 미친 건 아닐까 고민하다가 그 딸을 보고는 말 그대로 경악했다. 그리고 그런 딸의 생각을 고쳐주기는커녕 오히려 부추기는 엄마라니.


사실 그 때까지만 해도, 엄마와 딸이 조금 이상하고 아빠 쪽 가족들이 아들과 딸을 차별하는 것 말고는 그런대로 평범한 가정이라 할만 했다. 차별받는 것에 질투를 느낀 누나가 동생을 계단에서 밀어버리기 전까지는.

이 일은 소설 초반부에 벌어지며 아들의 죽음에 오열하던 엄마는 겁에 질린 딸의 모습을 보고 이것은 전부 어른의 잘못이라고 죄를 전가해 버린다.


그녀는 아마 그 일이 아니었어도 언젠가 어떤 이유를 들먹이며 죄를 범했을 거라 생각한다. 과거에 그랬듯.

원래 모든 것은 처음이 어려운 법이며 두 번, 세 번부터는 아주 손쉬워진다.


그녀는 베일에 싸인 어떤 조직을 알게 되고 본격적으로 사건을 저지른다. 자신의 죄에 100g의 무게 추를 더해가며.


양심이 있는 인간이라면 누구나 죄책감을 느끼기 마련이다. 각자 양심의 크기에 따라 미세할 수도 있고 엄청 거대할 수도 있지만, 어쨌든 아무리 극악무도한 살인마라도 아주 조금의 죄책감 정도는 느낄 거라고 생각한다.

그건 여기의 주인공도 마찬가지라서 그녀는 티끌만큼의 죄책감을 느낄 때마다 중얼거린다.

나는 잘못하지 않았어.
단지 행복하게 살고 싶을 뿐이야.

마치 양심을 억누르려는 듯이.


아무렇지 않게 누군가를 살해하고 그걸 통해서 자신과 자신의 딸이 행복해질 것을 믿어 의심치 않는 그녀를 보는 내내 혀를 내둘렀다. 악이라는 건 어째서 이토록 자기기만을 일삼는 건지.

동시에 그녀의 마지막이 어떨지 직접 눈으로 확인해 보고 싶어졌다.


내가 이 소설에서 무엇을 바랐는지는 잘 모르겠다. 뭘 확인하고 싶었는지도 더 이상은 알 수가 없어졌다.

다만 마지막 장을 덮고 나서 느껴지는 이 허망함을 뭐라 설명해야 할까.


소설은 처음부터 긴장감을 유발하며 끊임없이 나를 몰아붙였다. 눈을 뗄 수 없게 만들며 읽는 내내 조금의 지루함도 느끼지 못했다. 책의 어둡고 불온한 분위기가 나를 잠식해 와서 하루 정도 텀을 두고 읽어야 했다는 게 단점이랄까. 하지만 그마저도 누군가를 온전하게 사로잡는 매력을 지녔다는 뜻일 테니.


한 가지 걸리는 것은 초반부에 접속사가 너무 많이 들어갔다는 것. 개인적으로 접속사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데 접속사를 쓰지 않아도 될 문장에 굳이 접속사를 집어넣으니 읽는데 좀 불편한 기분이 들었다. 아무래도 작가님의 스타일인 듯싶다. 그렇지만 나중에는 전혀 신경이 쓰이지 않을 정도로 책 자체는 재미있게 읽었다.

선택받은 이들은 애초에 안전하며 그 어떤 불안이나 공포로부터도 보호받는다.
그리고 그 선택은 과거에 신에 의해 집단적으로 행해진 것과 달리 지금은 순전히 개인의 능력에 따라 개별적으로 이루어진다.
그리고 그 선택은 모든 시스템에 의해 존중받는다.
동반자 클럽은 스스로를 선택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춘 사람들에게만 모든 것을 제공한다.
그러므로 구원이란 일종의 서비스다.
선택받을 수 있는 사람인가를 구분하는 방법은 간단하다.
이러한 구원을 탐욕이라 말하는 사람들, 그들이 바로 선택받지 못한 사람들이다.


작가의 이전글 나를 집어삼키는 망령의 그림자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