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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천만장자 홍사장 Jun 17. 2021

다 행복하자고 하는 건데...

오전 10시는 항상 와이프에게 전화가 걸려온다. 아침에 아이들을 챙겨 첫째는 유치원을, 둘째는 어린이집에 등원을 시키고 집으로 돌아와 안전한 복귀를 신고하는 하는 셈이다. 어제도 어느 날과 다를 바 없이 와이프에게 전화가 왔다. 그런데 등원 임무완성의 기쁨보다 흐느끼는 소리가 전화기 넘어 들려오는 것이었다.


 "여보, 나와 함께 있어줘서 고마워. 자기는 먼저 가면 안돼…"


 흐느끼며 말하는 그녀의 말이 처음에는 무슨 말인지 몰랐다. 하지만 이어서 하는 말을 듣고는 나 역시 가슴이 먹먹해지며 울컥한 마음에 눈시울이 불거졌다. 우리 아이들의 친구 아버님께서 어제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을 전해 들었다. 그렇게 많은 교류가 있었던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함께 식사도 하고 웃으며 이야기를 나눈 사이였기에 더 가슴이 아팠다. 특히 와이프는 매일 아침에 아이들 등원 시간에 아버님을 마주치며 인사를 나누었기에 충격이 더 컸다.


 소식을 듣고 난 후 하루 종일 마음이 편치 않았다. 친구의 아버님이 돌아가셨을 때도 이렇게 먹먹하지는 않았던 것 같다. 세상일은 정말 모르는 일이라고, 나에게도 어쩌면 발생할 수도 있는 일이겠구나 생각을 하니 가슴이 찢어질 듯 아팠다. 어쩌면 그분의 죽음보다 남겨진 이들의 아픔이 더 신경 쓰이는 것인지 모른다.


 문득 2017년 4월에 찾아왔던 사고가 머릿속에 떠올랐다. 지금 내가 이렇게 가족들과 함께 있을 수 있고 열심히 일하고 있을 수 있음에 감사함을 다시한번 상기기 시키기에 딱 좋은 기억이었다.


 그 사건이 일어나기 전만해도 나는 술에 대한 자신감 하나는 누구 못지 않았다. 술을 잘 마신다고 떠들고 다니진 않았지만, 누군가 승부를 걸어오면 묵묵히 이겨줄 자신은 있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에게 재야의 고수라고 알려져 있었고, 스스로도 인정하며 뿌듯함을 느끼고 있었다. 하지만 이러한 자만심으로 인해 인생을 살아오면 수많은 사고들이 있었다. 수능 100일 주랍시고 친구들과 정신없이 먹은 술이 횡단보도에 누워있는 나를 경찰서로 끌려가게 하였고, 밤새도록 마신 술로 인해 마음속 깊은 악마를 끄집어 내어 결혼 전 와이프에게 심한 말을 하게 했고, 심지어 첫째를 임신 중인 와이프가 새벽에 연락이 안되는 나를 응급차를 타고 찾아다니게까지 한 적이 있었다. 하지만 스스로 깨닫지 않으면 소귀에 경 읽기가 되듯 그럼에도 불구하고 술이란 놈을 멀리하지 못하고 주구장창 술을 퍼마시고 다녔었다.


 그러던 어느 날 평소와 같이 지인들과 술자리를 가졌었다. 소맥으로 호탕하게 오픈 식을 치루고 주구장창 술 꽃을 피우며 몽롱한 세계로 빠져 들고 있었다. 솔직히 2차를 한다고 자리를 옮기고 난 후부터가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중간중간 내가 힘들어 한 것 같은데, 약한 모습을 보이기 싫어 버티고 버텼던 것 같다. 그때부터 사고가 날 징조가 보인 것이다. 중간의 기억은 없지만 마지막 한 장면은 어렴풋이 기억이 난다. 지인들이 술에 취해 정신없는 나를 택시에 밀어 넣는 장면 말이다. 그리고 난 뒤 내가 눈을 떴을 때는 사방이 하얀색으로 둘러싸인 공간이었다. 그리고 뒷통수가 따금거려 눈을 뜨고 머리를 들려고 하니 위에서 다급한 목소리가 들리는 것이었다.


 "환자분 머리 들면 안되요. 지금 머리 꿰메고 있어요. 환자분!"


 그때도 술에 쩔어 있는 상태라 얼떨떨했지만 분명히 기억하는 건 내가 응급실에 누워 있었고, 베개는 붉게 물들어 있었다. 그리고 오른쪽 팔이 잘 펴지지 않았고 얼굴은 계속 따끔거리는 것이 어딘가에 갈린 것 같았다. 의사 선생님께서 응급치료를 다 하셨는지 뒷통수의 따끔거림이 사라지고 난뒤 나는 다시 잠이 들었던 것 같다. 그리고 번쩍 눈을 뜨고 정신을 차려보니 새벽 4시였다. 내 몸상태를 보니 머리카락을 피에 떡이 져있고, 얼굴은 양쪽이 갈려 상처가 나 있으며, 오른쪽 팔꿈치 쪽은 부러졌는지 움직이지 못하였다. 가방을 뒤져보니 휴대폰은 깨져있지만 지갑은 그대로 남아 있었다. 어떻게 된 일이지 도무지 알 수 없었다. 일명 '퍽치기'를 당했나 싶었지만 그렇다고 하기에 소지품이 너무 그대로 보존 되어 있었다. 그럼 인사불성된 택시 기사가 나를 어딘가 버려두고 가버렸는가? 그리고 비틀거리고 걸어다니다가 차에 치였는지...


 나중에 확인해보니 나는 누군가가 쓰러져 있는 것을 확인하고 119에 신고하여 응급실에 실려 온 것이었다. 4월 아직 추운 계절, 만약 그때 그 누군가에게 발견되지 못했다면 나는 그냥 삶을 달리 했을 것이다. 출혈로 인해서든 추위에 얼어서 든 말이다. 그때 내가 어떤 일을 당했는지, 누가 그랬는지, 왜 그랬는지 도저히 알수 없었다. 처음에는 궁금했지만 나중에는 나를 이렇게 만든 사람들에게 화가 나서 미칠 지경이었다. 함께 술 마신 사람도 미웠고, 나를 태운 택시기사를 의심했으며, 심지어는 나를 구해준 응급대원들에게도 비난의 화살은 날라 갔다. 하지만 지금 생각하니 다 부질없는 감정인 것이다. 다만 중요한 건 지금 내가 여기에 있다는 것. 사지 멀쩡하게 하루하루 삶을 즐길 수 있다는 것. 그것 하나만으로도 너무 감사해야 하는 것 뿐인 듯하다. 그 이유가 무엇이든 살아서 가족과 함께 할 수 있음에 감사한다. 나를 죽음에서 구해준 그분에 인사드리고 싶었지만, 연락처를 알려주지 않아 표하지 못한 그 고마움의 빚을 계속 안고 살아가며 갚아야 할 것 같다.


 이 사건이 일어난 이 후에는 나의 삶은 완전히 달라졌다. 그냥 생각이 바뀐 것이 아닌, 인생을 바라보는 시각 자체가 180도 달라졌다고 할 수 있다. 죽음까지 갔다 왔다 말할 순 없지만, 죽었을지도 모를 사건을 맞이했었기에 모든 관점을 1인칭 시점으로 옮길 수 있게 되었다. 나 자신, 내 가족, 내 인생, 내 행복, 내 삶, 내 꿈. 모든 것이 나를 중심으로 해서 살아야 겠다는 다짐을 하게 되었다. 한번 뿐인 인생 즐기자 가자라는 것이 아닌 한번 뿐인 인생, 다른 것에 끌려가는 것이 아닌 스스로 이끌어가는 삶을 살아보자 결심한 것이다. 사람들하고 어울리기 위해, 사람들에게 인정받기 위해, 더 높은 곳으로 가기 위해, 남들에게 무시당하지 않기 위한 것에 더 이상 시간과 나의 에너지를 낭비하지 않겠다고 말이다. 술에 대한 개념도 완전히 달라졌다. 술 따위 때문에 내 인생과 내 가족의 삶을 완전히 망쳐놓을 뻔 했다. 아니 술에게 빠진 내 자신이 그렇게 만들 뻔 한 했다. 그 전까지는 가족을 제외한 우선순위에는 술자리가 확고하게 자리를 잡고 있었다면 지금은 술이란 것을 가장 나중에 만나는 수단으로 빼놓았다. 그렇게 지금의 나에겐 술이란 최후의 수단일 뿐이다. 술이라는 것을 무조건적인 악이라 여기는 것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예전과 같이 나를 술에게 맡기는 일은 다시는 없을 것이다.


 내가 만약 이 사건으로 인해 삶을 달리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떠난 사람은 그렇다치고, 남아 있는 가족들은 무슨 잘못인가? 아들 둘이나 낳아놓고 덩그러니 와이프만 남겨두고 간다면 이 고통을 어떻게 감당할 수 있을까?


 나는 좀더 책임감 있어야 했고, 좀 더 정신차려야 하며, 좀더 건강해야 했다. 하지만 예전의 나는 단지 철없는 아이와 같았다. 자신의 흥을 위해 자신의 책임은 무시한 채 항상 아슬아슬한 외줄 타기를 하고 있었던 것이다. 언제 떨어질지도 모른다는 위험을 알고서도 말이다. 하지만 지금의 나는 그 외줄에서 내려와 살고 있다. 남들이 만들어놓은 외줄에 의지하고 매달려 있기 보다는 늦을지도 모르지만 스스로 조금씩 하나씩 계단을 만들어 앞으로 나아가고자 하고 있다.



 우리는 정말 하루하루 열심히 살아간다. 특별나게 잘 살고자 하는 것보다 평범하게 남들과 같이 살아감에 행복을 느끼는 이들도 있을 것이다. 각자만의 행복을 위해 나름 노력과 열정을 하루에 하나씩 꺼내 사용하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누군가의 죽음을 맞이하면서 나는 다시 한번 다짐해본다. 이 삶은 그 누구의 것도 아닌 자신의 것이라고. 언제 떠날지 모르는 인생, 하지 못했다는 후회보다 그래도 나는 해봤다라는 안도를 더 가질 수 있도록 말이다.


 "지금부터 10년 뒤 여러분은 잘못해서 후회하는 일보다 하지 않아서 후회하는 일이 더 많을 것 입니다. 밧줄을 던져 버리고, 안전한 항구에서 벗어나 멀리 향해 하십시오." - 마크 트웨인 - 상자밖에 있는 사람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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