흙을 파고, 작물을 만지다보면 시간이 훌쩍 지나간다
"헛되고 헛되도다. 살아가면서 인생의 허무함을 느끼지 않는 사람은 아마 한 명도 없을 것이다. 언제 우리는 이런 허무를 느끼는가?
인생의 전부인 것처럼 매달렸던 일이 보람 실속도 없고 그저 허황하게 여겨질 때 우리는 짙은 허무감을 느낀다.
우리는 도대체 '왜' 사는 것인가? 니체는 "목표가 결여되어 있고 '왜?'라는 물음에 대한 대답이 결여되어 있는 상태"를 허무주의라고 말한다.
(인생교과서 니체, 66쪽)
가을은 타는지 허무함이 인생에 폭풍처럼, 바람처럼 불고 일어났다. 일이 인생의 전부는 아니었다. 아이 양육비용 때문에 나는 (어떤) 일이든 해야 한다는 명분 때문에 일이 전부가 되었다. 그렇게 매달렸던 일이 보람과 실속도 없고 허황되게 느껴졌다. 휘발되듯이 사라졌다. 내 인생의 허무한 순간에 니체를 읽고 있다.
텃밭친구의 추천으로 이진우 작가의 책부터 읽고, 오늘에서야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는 원문을 들려다볼 용기가 생겼다. 10월 퐁당퐁당 연휴에 니체의 원문을 다 읽는 게 목표다.
이진우 작가의 <인생에 한번은 차라투스트라>를 틈틈이 보고 있다. 나는 신은 죽었다고 말한 사람이 니체임을 인지하는 수준에 불과했고, 왜 니체를 이야기하는지 전혀 알지 못했다. 신은 죽었다고 말하는 철학자의 이야길 읽어볼 시도조차 하지 않음에 부끄러웠다.
눈 가리고 아웅했다. 왜 이렇게 인생을 편협하게 살았던 걸까. 니체를 이제라도 알아서 다행이다.
텃밭에 갔다가 이곳이 내 일터였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밭은 일터로 만들면 안되나 싶었다. 지속가능한 식문화 커뮤니티 '벗밭' 같은 그런 걸 하면 밭이 일터가 되려나. 흙을 만지고 텃밭에서 보내는 시간이 (정말) 즐겁다. 혼자 알기 아까운데, 내 가족 먹을 채소만 재배하기도 아깝고. 귀농귀촌은 은퇴 이후에 하는 사람이 많아서 도통 갈피를 못잡겠다.
1시간 알람을 맞추곤 텃밭의 이곳저곳을 가꾸고 돌본다. 이 공간에서 시간은 기본이 2시간이다. 흙을 파고, 작물을 만지다보면 시간이 훌쩍 지나간다. 퇴비함도 뒤적거렸다가 작물 물도 주고, 보수할 곳을 가꾸다보면 시간이 잘도 간다. 비가 오기 전에는 작물 상태를 확인하고, 새로운 작물을 심기에도 좋다. 내일 비예보가 있어서 텃밭에 다녀왔다. 허무한 마음이 심란해서 다스릴 겸 다녀온 이유가 크다.
올해는 무더운 날씨가 계속 이어져서, 상추가 웃자랐다. 웃자란 상추를 회복할 길이 없어서 줄을 묶어줬다. 비바람에 쓰러질까 싶어 임시방편으로 작업했다. 배추도 애벌레 때문에 구멍이 숭숭 났다. 달팽이까지 있다. 금배추가 됐던데 먹을 게 남으려나.
마르쉐장터에서 산 딜과 고수를 심었다. 하늘이 내려주는 보약인 비를 맞고 잘 안착하길 기도했다. 씨앗으로 심은 시금치 싹도 나길 기대하고 있다.
처음으로 청경채도 심었다. 수확은 어떻게 하는 건지 인터넷에서 도움을 받지 못했다. 그래서 상추처럼 청경채 잎을 정리했다. 이렇게 올해 가을도 내 몸에 차곡차곡 쌓이고 있다. 월요일 부암동은 한적했다. 이곳의 상권은 월요일 휴무가 대부분이다. 내일 비가 온 이후로 다시 한 번 들렸다가 퐁당퐁당 연휴를 맞을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