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일] 세상에 없던 사람
10개월의 임신 대장정을 마치고 드디어 출산을 했다. 자연분만을 바라던 나의 바람대로 아이는 순조롭게 자궁문을 열고 나와주었다. 순조롭다 했지만, 고통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사람이 사람을 낳는 것이 이렇게까지 아파야 하다니. 나에겐 그 고통이 제법 충격이었다. 조물주가 조금은 원망스러워지는 순간이었다.
누가 자연분만을 선불이라고 했을까. 싫어하는 것을 미루고 미뤄서 마지막에 하기보다는 얼른 해치워놓고 여유를 즐기는 것을 선호하기에 출산도 고통이 후불인 제왕절개보다는 선불이라는 자연분만을 선호했다. 산고의 고통을 견딘 후 아이가 세상으로 나와 우렁찬 울음소리를 냈을 때 나는 이제 드디어 고통이 끝났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것은 나의 착각이었다. 끝이라고 생각한 이후에도 여러 과정이 제법 남아있었다. 겪기 전에는 몰랐지.
후처치 후 입원실에서 이리 눕고 저리 누워도 불편한 몸을 지닌 채 시간을 보내고 있는데 기쁜 소식이 하나 전해져 왔다. 신생아실 면회가 가능하다는 소식이었다. 입원실까지도 간호사님이 밀어주시는 휠체어에 의지해 이동했는데 어디서 그런 힘이 난 건지 아기를 보러 가려고 스스로 일어섰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끙끙대며 힘들어하던 사람이 걸어가겠다 하니, 남편은 걱정이 되었나 보다. 갈 수 있겠냐는 남편의 걱정스러운 물음에, "당연히 가야지!"라고 답하며 씩씩하게 발걸음을 내디뎠다.
누군가가 이렇게나 보고 싶었던 적이 있었을까. 출산 직후 잠시 내 품에 안겼던 아이를 나는 어느샌가 그리워하고 있었다. 깨끗하게 씻기고 속싸개에 꽁꽁 싸인 아이를 신생아실에서 만나게 되었다. '저 아이가 내 아이라고? 내가 저 사람을 낳았다고? 내 뱃속에 10개월간 있었던 존재가 이 아이라고?'
10개월간 내 몸에서 함께했지만, 너무나도 새롭고 낯선 존재가 내 눈앞에 있었다. 생경함과 동시에 알 수 없는 새로운 감정이 밀려들었다. 사랑스러움, 감사함, 경외로움, 신기함, 신비함, 존경심, 감탄스러움. 무슨 단어로 그 마음을 설명할 수 있을까. 세상에 없던 새로운 존재가 태어났듯, 내 세상에는 없던 새로운 감정이 생겨났다. 이 마음을 표현할 새로운 단어가 필요한 듯하다.
조금 전 아이를 보고 입원실로 돌아왔는데 또 보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언제쯤 또 만날 수 있을까.' 데이트 후 헤어진 연인을 그리워하듯 아이를 그리워했다.
10개월간 임신을 하면서 이미 아이의 존재를 알고 있었지만 우린 서로 아직 얼굴도 못 본 사이였다. 누군가의 얼굴을 마주 보고 존재를 인식한다는 게 이렇게나 큰 일인 걸까. 아이의 얼굴을 마주 보고 존재를 확인한 이후부터 아이에 대한 나의 감정은 달라졌다. 새로운 감정이 생긴 것이다. 세상에 없던 존재가 이제 이 세상에 함께한다. 너의 탄생을 축하하고, 너의 존재를 환영해 아가.